[바다옆방] 에드워드 호퍼
호퍼의 바다
몽글한 거품과 빛으로 반짝이는 바다, 구름과 손잡은 희미한 지평선, 날이 좋은 날엔 먼 이국섬까지 보이는 곳. 나는 부산에 살고 있다. 나의 딸은 백일 무렵부터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살았으니 바다가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어색할 지도 모른다. 딸을 키운 지 이제 24개월 무렵이 되었다. 이제 돌맘을 넘어서 두 돌 맘이 되었고 어린이집도 다니기 시작하여 드디어 숨통이 트이나 싶은 시간이 온 것이다.
그간 나를 위한 여러 번의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였으나 모두 이뤄내지 못했다. 결혼 전처럼 다이어리에 내가 목표로 하는 것들을 적어보고 그에 맞는 계획, 실천방법들을 적어봤지만 그것들은 결국 ’ 적음‘ 단계에서 끝난 것이다. 가령 다이어트목표를 예로 들자면, 저녁식사를 거르고 필라테스를 다니며 하루 두 번씩 스쾃와 스트레칭을 하는 것 등을 적었다. 하지만 아기를 돌보느라 소진한 체력 탓에 저녁을 먹어야 했고 아기를 돌봐줄 사람이 없기에 필라테스수업을 결석해야 했으며 아기가 안아달라고 하는 바람에 스쾃 따위는 엄두가 안 났다. 물론 사람에 따라 이것은 핑계일 수도 있다. 어떤 아기엄마들은 충분히 날씬하고 자기 관리도 철저하니 말이다. 요지는 계획을 세워도 그것을 달성하기 힘든 것이 아기엄마의 삶이라는 것이다.
결혼 전의 하루는 3개월 다이어리에 나의 매일, 매주, 매달, 3개월, 1년, 중기, 장기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적고 피드백을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공부와 일, 창작을 병행하는 삶에서 꿈은 나름 컸고 목표도 많았다. 하지만 2년여의 육아를 하면서 점점 그것들은 낮아지고 적어졌다. 어느덧 다이어리를 펼치면 뭘 써야 할지 한참을 생각해야 했고 어느 순간 다이어리를 꺼내는 것조차 귀찮아졌다. 그렇게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일과를 귀찮아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하나의 자괴감으로 다가왔다. 매시 매초, 매일의 바다를 바다 보며 자신의 답보상태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부산이라는 도시에 내려와 해안가에 가정을 꾸리게 된 이후 나는 매일 바다를 마주했고 푸르른 바다가 마냥 야속했던 것은 아니지만 여러 명암과 대비로 조화를 이루는 바다의 표면이 요동치는 순간마다 내 마음도 울렁였다.
그래서였는지 부산에 내려와 집에 걸어둔 첫 그림이 에드워드 호퍼의 바다옆방이었다. 바다를 소재로 한 그림과 사진은 무수히 많았지만 이 그림에서 느껴지는 정서가 나의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너무나 반짝이는 물결을 담아낸 작품, 혹은 크게 아우성치는 파도를 그린 작품은 내게 닿는 부산의 바다와는 달랐다. 나의 일상에서 느껴지는 바다는 부서지고 요동치는 와중에도 고요했다. 스스럼없이 고독을 드러내고 부끄럽 없이 외로움을 내비쳤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도 여전히 잔잔하고 우아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언제든 손이 닿을 듯했고 발이라도 닿을라치면 바로 부드러운 파도가 감쌀 듯했다. 그게 나의 첫 부산이었다. 이 그림은 그런 나의 감정과 생각에 가장 맞닿은 그림이라 할 수 있었다. 호퍼의 그림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받는 이유는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곧장 스며드는 고독이라는 정서가 너무나도 큰 위안이 된다. 매일 그림을 보고 바닷가를 거닐며 위로를 받은 수많은 시간들을 지나며 나는 마음의 안식을 누림과 동시에 한편으론 내 개인의 생활에서는 점점 무뎌지고 있었다.
다시 글을 쓰기로 한 담담한 육아의 시작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향에서 솟아올랐다.
4개월 전 우리 가족이 거제도로 여행을 가던 날, 친정의 단체카톡방에 엄마의 메시지가 떴다.
'긴급상황, 아들 뇌출혈'
남동생이 뇌출혈로 쓰러진 것이었다. 동생은 갑작스레 의식을 잃었고 그렇게 위급한 상황에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여행을 가던 중에 연락을 받은 터라 먼 곳에서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도 못하고 거제도에서 연락만을 기다렸다. 기대하던 여행은 무거운 마음과 두려움으로 가득했고 초록과 파랑으로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행히 그날 동생은 무사히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입원을 했다. 의식이 여전히 없던 터라 깨어날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부모님은 불안감으로 매일을 눈물과 함께 하셨지만 이 먼 곳 부산으로 터를 잡은 나는 아기와 남편을 돌보고 챙겨야 했다. 난 마음을 다잡아야 했고 내 할 일 해야 했다. 하지만 부모님과 통화할 때마다 불안해지는 마음과 두려움, 슬픔이 올라왔고 나는 내 멘탈을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나의 치유의 공간은 도서관이었고 내가 감정을 풀어내는 방식은 글이었다. 그렇게 나는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육아를 하면서 매번 글에 대한 갈증은 있었지만 그림에 대한 글을 쓸지, 책에 대한 글을 쓸지. 시작도 하기 전에 소재에 대한 고민들은 아기 비눗방울 마냥 떠올랐다 다 터져버렸다. 하지만 그날을 겪고 난 후 내가 알게 된 것은 그저 내가 현재 나의 일상과 내 마음에 담고 있는 것들을 풀어내는 것이 가장 명확할 것이라는 것이다. 현재 나의 동생은 의식을 차리고 재활병원을 거쳐 재활요양원에서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며 재활을 하고 있다. 동생에게 남겨진 건, 이전보다 떨어지는 인지와 보이지 않는 눈.
나 자신의 '멈춤'에 대한 위기의식보다도,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보다 더욱 나를 솟아오르게 만드는 건 가족의 아픔이었다. 가족이 흔들리자 나는 우뚝 서야 했고 그러기 위해 나를 쏟아내야 했다.
이제 호퍼의 그림은 없다. 안타깝게도 나의 아기가 물을 쏟았고 그림이 젖으며 테라스로 옮겨지다 결국엔 버려졌다. 하지만 나는 다시 글을 쓰게 되었고 호퍼의 그림을 마음에 그리며 그와 같은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한다.
오늘도 바다는 찬란함이 가득하다. 무수히 쏟아지는 빛과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결, 바위와 방파제에 부딪히는 물결의 조각들. 담담하고 담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