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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의 어릴 적 피아노를 소환하다.

#글쓰기에 이어 어린 시절 나를 소환한 피아노

by 굿이너프 Mar 26. 2025



 나는 7살 때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피아노를 쳤다. 피아노는 내 세계의 중심이었고, 내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이기도 했다. 뭔가 남부끄럽지 않게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하나였기에, 어린 시절의 나는 자연스럽게 피아니스트를 꿈꿨다. 사실 그 꿈이 아주 구체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피아노를 치다 보니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콩쿠르도 나가봤다. 하지만 결과는 늘 장려상 정도였다. 나는 일등이 아니었고, 그게 그 당시에는 힘들었던 것 같다. 점점 피아노가 실패의 집약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실력이 부끄러웠고, 재능이 부족한 나 자신이 참담하기도 했다. 좌절감, 압박감, 불안함, 스트레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감정들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속상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은데, 자존심 때문에 울 수 없는 그런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피아노를 포기한다는 건 내 7년을 부정하는 것 같아서 쉽게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피아노도 마무리했다. 누군가의 강요나 압박 없이, 나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한 선택이었다. 그때의 시원섭섭함은 참 쓰라리면서도 좋았던, 복잡한 감정이었다.


 그 시절의 나를 돌아보면, 엄마 아빠가 그저 묵묵히 바라봐 주셨다는 게 새삼 떠오른다. 그때는 따뜻한 위로나 격려를 받지 못해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지금은 그저 지켜봐 주셨던 것이 얼마나 큰 지지였는지 알 것 같다. 나에게 선택할 시간을 주셨고, 내 감정을 방해하지 않으셨다. 덕분에 나는 피아노를 놓는 과정까지도 온전히 내 감정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피아노를 초등학교 이후로는 사실 쳐다도 보기 싫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할 때까지 단 한 번도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나의 가슴 쓰라린 실패를 마주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잊고 있던 피아노를  다시 치게 된 계기는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계기와 좀  비슷하다.

(누군가 자꾸 어릴 적 나를 소환..)


몇 년 전 내 동생이 갑자기 가족 단톡방에 영상을 하나 올리며

"누나, 어릴 때 피아노 잘 쳤었네~" 하고 말하는 게 아닌가.


영상을 열어 보니 아빠가 캠코더로 찍어준 내 콩쿠르 영상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13살) 때 전도 콩쿠르 대회에 나가 피아노를 치는 영상이었는데 내가 봐도 헉! 하고 잘 치는 게 아닌가 그리고 마지막에는 장려상에 내 이름이 있었는데 등수로 따지면 10등 정도였다.


또다시 머리에서 종이 울렸다.


'내가 이렇게 피아노를 잘 쳤다고?'

'장려상이지만 등수로 따지면 제주도 전체에서 10등 정도잖아? 생각보다 잘했는데?'


그에 이어


'이렇게 잘했는데 피아노 다시 한번 쳐볼까?'



그렇게 나는 어린 나를 보며 다시 피아노 앞에 앉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치는 피아노

이제는 그 시절을 추억하며 편한 마음으로 피아노를 취미로 치고 있다. 어릴 적 치던 피아노가 부담이 아닌 멋진 취미가 된 것이다.


예전처럼 치열하게 연습하지 않아도, 실수를 해도, 그저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 시간이 나를 많이 성장하게 해 주었다. 내 감정을 좀 더 세심하게 들여다볼 줄 알게 되었고, 그것이 나를 깊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 같다.


지금은 그 모든 경험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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