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포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사랑 #감정 #비밀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늘 인간사를 부유한다. 아마 그 모든 일들의 발생은 '내가 나 자신을 다 알지 못한다'는 자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헤더가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이해하는 로버트에게 이끌렸듯이, 우리는 때로 누군가로부터 나의 연원을 찾는 진기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결핍 투성이인 인간 존재는 또 다른 결핍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다.
헤더의 남자 친구 콜린은 결핍 따위를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하고 강인한 존재다. 이에 비해 로버트는 젊음의 혈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으며 아내와도 별거 중인 힘없는 노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콜린과 비교되는 로버트의 연약한 모습이 헤더에게는 따뜻한 일렁임을 안겨준다.
연약해 보였던 로버트는 헤더와 결핍을 공유함과 동시에 함께 결핍을 벗어나는 동반자로서 존재로 지위가 옮겨진다. 드러내지 않았지만 헤더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로버트에게도 발생했기 때문이다. 둘을 이은 결핍의 원인은 ‘나를 이해하는 누군가’의 부재다. 그래서 두 사람이 서로의 대화로부터 결핍의 해방을 느끼게 되는 일은 너무도 치명적이다. 이후 둘은 각자에게 심어진 같은 욕망을 조심스레 살피게 된다.
그렇다면 그 둘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아무리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존재한다 해도, 이러한 유형의 만남과 사랑이라는 외피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금기로 여겨진다. 결국 현실에 적을 둔 두 사람 모두, 서로의 감정과 관계를 설명해야 할 의무를 느낄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채워줄 수 있다거나 당신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 추정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나는 콜린과의 관계에서 그런 식의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다만 그가 나의 일부, 나의 중요한 일부를 채워주고 있고, 로버트 역시 똑같이 나의 중요한 또 다른 일부를 채워주었다고 믿을 뿐이다.
로버트가 채워준 나의 일부는, 내 생각에, 지금도 콜린은 그 존재를 모르는 부분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만큼 쉽게 파괴도 시킬 수 있는 나의 일부다. 그것은 닫힌 문 뒤에 있을 때, 어두운 침실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제일 편안하다고 느끼는, 유일한 진실은 우리가 서로 숨기는 비밀에 있다고 믿는 나의 일부다. 로버트는 내가 거의 십 년 동안 콜린에게 숨긴 비밀이다.
혹자는 빛과 물질이 다르듯이 사람을 사랑하는 다양한 감정이 있다고 한다. 헤더에 의하면 로버트는 콜린의 '대안'이 아닌, '콜린이 아닌 모든 것'이었다고 한다. 이 말인즉슨 두 남자에 대한 헤더의 사랑은, 애초에 다른 모태를 가진 감정이며 따라서 '양립 가능성'을 논할 필요가 없는 별개의 것이라는 뜻이다.
헤더와 콜린은 두려운 사랑을 공유한다. 헤더는 그에게 향하는 강인한 사랑을 지녔지만, 로버트의 존재로 인해 두려움을 느낀다. 충직한 콜린과 그의 사랑은 헤더를 포기하지 않으며 그녀의 추락을 허락하지 않는다. 비록 그녀가 흔들리고 의심스러운 행동을 보일지라도 말이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헤더의 손을 잡고, 벽에 기댄 그녀에게 키스한다. 그의 두려움은 행동으로 안식을 얻는다.
반면 로버트는 헤더에게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 둘 사이에는 말을 넘어선 교감이 존재했으며, 이는 둘의 삶에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로버트는 헤더 그 자신보다 그녀를 더 깊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의 부드럽고 깊은 사랑은 헤더가 찾아다녔던, 삶의 퍼즐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녀는 그의 눈에 담긴 자신을 바라보며 '따뜻한' 충동을 느낀다. 단 한 번이었던 둘의 키스는 부드러웠고, 유일했다.
현실은, 로버트에게서 헤더를 앗아갔다. 서서히 형성되어가고 있던 헤더의 삶은 그녀를 의사의 아내로 안착시켰다. 둘은 볼티모어로 떠났고 로버트는 헤더를 다시 보지 못한 채로 죽는다. 두 사건의 사이에는, 처음 삼 년 동안 둘이 나눈 편지만이 남는다. 그러나 글은 둘의 관계를 전혀 담아내지 못했다. 결국 편지는 무뎌져 갔고 둘은 서로의 삶에서 형체를 잃었다.
그리고 로버트의 죽음은 헤더와 콜린에게 '우연히' 맞닥뜨려진다. 죽음의 대면이 우연일만큼 로버트와 헤더는 멀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극은 그 우연한 죽음이 헤더가 잊고지낸 공허의 무게를 알게 한다는 것이다. 헤더는 통곡했으며 콜린은 자신을 짓눌러온 감정의 형체를 목격한다. 둘의 사랑은 몇 년의 걸친 침묵과 어둠을 마주하고 만다. 콜린은 분명 헤더의 일부일 것이다. 그러나 충직은 결핍을 채우지 못한다.
빛은 물질에 튕겨 사방을 비춘다. 물질은 그저 존재함으로 의미를 이룬다. 빛과 물질의 비유는 '헤더'라는 세상을 채우는 두 남자를 상징할 것이다. 두 존재는 각자의 방법으로, 그리고 어쩌면 양립하여 세상을 채운다. 그러나 존재 그 자체가 본질인 물질에 비해 타인을 비추는 빛의 본질은 연약하다. 둘이 대치할 지라도 빛은 물질에 굴절될 뿐, 관통하지 못한다. 끝내 로버트를 넘어서지 못했던 콜린의 존재를 생각하게 된다.
- 앤드루 포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문학동네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