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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Sep 24. 2022

제20화; Rest in Peace

본격 탐사 판타지 <지구인들> 제 1부 ; 좀비는 아니지만 쉽게 죽을 수는 없지    


제20화; Rest in Peace        



세월은 도깨비 인간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세상은 살벌해져 갔고 민심은 흉흉해졌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고 좋은 시간이 오기를 바랐으나 상황은 더 나빠졌다. 기상이변은 상시적이 되었다. 

무엇 하나 예측이 불가능했다. 집값이 폭락하면서 경제 시스템도 붕괴되기 시작했다. 

사소한 즐거움으로 그날그날을 살아가던 서민들의 꿈은 물풍선처럼 부서졌다. 불과 몇 달 사이에, 갑자기 시작된 일이었다.     


이곳저곳에서 알 수 없는 작은 싸움이 벌어졌다. ‘무공 높은 괴한들이 사람을 때려눕히고 뇌수를 채취해 간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너도 나도 두툼한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실제로 거리에서는, 깔끔한 정장의 요원들과 모자를 쓴 사람이 쫓고 쫓기며 싸우는 광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점점 모자와 마스크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요원들이 검은 안경을 쓴다는 게 알려지면서 모자와 마스크와 검은 안경은 패션의 정석이 되었다.

도깨비 인간들의 노력이 없기야 했겠는가? 어쨌든 상황은 점점 나빠져 갔고,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는 끝나가는 듯 보였다.   

   

뜬금없이 ‘RIP’, ‘Rest in Peace’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죽은 사람에게 쓰던 말을 멀쩡히 살아있는 상대방에게 사용했다. 

‘호모 사피엔스여, 고이 잠드소서!’라는, 인류 전체에게 보내는 조사처럼 들리기도 했다. 

    

사실 이러한 유행은 도깨비 인간들이 의도한 결과였다. 도깨비 인간들은 태양인과의 싸움을 표면에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다시 말해, 싸움을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려 했다는 말이다. 어디나 싸움터였고, 누가 싸움의 주인공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과정을 통해 자칭 ‘쿠팡 안전국 요원’ 등 태양인 세력만 도드라지게 나타나 보였다.     

이것은 삼시충 인간들의 지리산 33인 비상회의에서 백면이 제시한 방책이기도 하였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는 말로 대표되는 행동지침은 도깨비 인간들의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개별 SNS나 유튜브 등에서 조금씩 변형 유통되면서 퍼져나갔다. 

애초부터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우스개 소재로 포장되면서 급속히 유행하기 시작했다.  

   

“잘 가세요.”

“편히 쉬세요.”

“RIP.”

“부디 평안하시길.”

“영면.”

“안녕히 주무세요.”

“안녕히 죽으세요.”    

 

죽음을 떠올리는 말들이 일상적인 인사가 되어갔다. 

물론 처음에는 장난스럽게 시작한 것이겠지만, 불평등한 세태에 대한 혐오와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그러한 인사에 구체적인 죽음의 그림자를 덮어씌웠다. 

모자와 마스크와 검은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는 패션은 그런 분위기를 더욱 가중시켰다. 가히 죽음의 시대라 부를 만했다. 곧 다가올 미래를 예견한 것일까?     


그 과정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우리가 아는 그 사람, 재림이었다. 

처음 재림이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황인경이 올린 동영상 때문이었다. 

처음 재림이 이적을 보여주던 장면을, 앞부분은 놓치고 뒷부분만 찍었지만, 휴대폰으로 찍어 자신의 SNS에 올렸는데 그게 약간의 화제가 되었다.      

재림이 손바닥 위에 빵과 주스를 만들어내는 장면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벼운 속임수라고 생각했으나 어쨌든 재미있어 했다.   

  

“이것은 나의 피요 살이다. 나는 나의 살과 피로 님들을 먹일 것이다. 

부디 내 말을 믿고 따르라. 마음대로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자신을 죽이고 나를 따르면 내가 끝까지 보호하리라. 

다시 한 번 간곡하게 이르노니, 님들아! 부디, 제발, 아무 것도 하지 마라. 아무 것도!”  

   

‘예수 흉내’ ‘연기 잘하네’ ‘소년 예수 등장이요!’ 등의 댓글이 달리더니 점점 추종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에 자극을 받은 황인경이 적극적으로 재림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재림, 다시 온 예수?>라고 제목을 달았다.     

 

“왜 예능을 다큐로 받아?”라는 말이 있다. 이 경우는 특이하게도, 다큐를 찍었는데 예능으로 받아들이다가 그 예능을 다시 다큐로 확대해 수용하는 과정을 겪는다. 

이 과정을 통해 재림은 전국구 스타로 자리 잡았다.    

 

그 타이밍이 절묘했다. 

‘아무 것도 하지 마라.’는 재림의 선언 이후 비슷한 멘션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중요하지도 않고 따질 필요도 없다. 

33인 비상회의에 참가했던 도인들이 각자의 자리에 돌아가 열심히 ‘아무 것도 하지 마라!’를 주문처럼 퍼뜨렸고, 우울하고 불안한 사회 공기를 타고 급속히 퍼졌다.      

도깨비 인간들은 물밑에서 열심히 움직였지만 재림은 독야청청 드러내놓고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하니 홀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크고 작은 소란도 벌어졌다. 어떻게 알았는지 사람들이 재림의 거처를 찾아내고 모여들었다. 

그러나 재림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자리에 머물라.’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도깨비집의 입구를 폐쇄했으나 사람들은 물러가지 않고 근처에서 야영을 하며 살기 시작했다.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림에게 우호적이었으나 소수 적대적인 사람들도 세력을 형성했다. 

일부 신흥 예수교 신자들은 대형 십자가를 가져와 ‘재림 예수를 십자가에!’ 라며 구호를 외쳤다.      

지지자들이 그들을 쫓아내려 하자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 싸움은 경찰이 출동해서야 겨우 진정되었다.


도깨비집의 사람들이 식재료 구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일부 추종자들이 자신들이 준비한 음식과 재료를 집 입구에 가져다 놓았다.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같은 일이 계속되고 이내 음식이 상하자 재림은 음식 반입을 허락했다. 식재료는 받지 않고 조리된 음식만 소량 걷어 들였다.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식사 전에, 마치 부처님 공양 올리듯, 재림에게 공양을 올렸다. 

도깨비집 사람들은 아침과 저녁 두 번 식사를 했기 때문에 공양 역시 아침 7시와 저녁 5시에 올리게 되었다.     

봄이 한복판에 접어들어 이런 저런 꽃들이 아우성치며 솟아올랐다. 세상은 심란하고 어지러웠으나 자연은 변함없이 스스로의 시간을 펼쳐나갔다.      

어느 비 오는 저녁, 사람들은 똑같은 일과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따로 ‘그분’(사람들은 재림을 그렇게 부르곤 했다.)께 드리는 음식을 챙기고 있을 때 갑자기 사람들이 흔들리고 웅성거렸다.  

   

“오신다! 그분이 오셔!” 

    

누군가가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일부 감정이 앞선 사람들은 벌써 울먹이며 감격에 겨워하기도 했다. 

수백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도깨비집 입구로 모여들었고, 천천히 재림 일행이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재림의 왼쪽으로는 태민과 미완법사가, 오른쪽으로는 호남과 지혜가 서있었다. 황인경은 열심히 상황을 찍고, 우택(아! 우체국 택배를 하던 택배기사를 그렇게 불렀는데 그게 그냥 이름이 되었다.)은 전방을 주시하며 일종의 경호원 역할을 하는 듯했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막상 재림이 사람들 앞에 서자 모두 조용해졌다.      

비가 내리고 있었으나 아무도 우산을 쓰지 않고 비를 맞았다. 처음에 두세 사람 우산을 쓴 사람이 있었지만, 재림 일행이 비를 맞는 것을 보고 슬그머니 우산을 접어 숨겼다. 

재림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그윽한 미소를 지었다.   

  

“사랑하는 내 님들아!”   

  

재림이 낮은 목소리로 사람들을 불렀다. 

바로 앞의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작은 소리였으나 맨 뒤의 귀 어두운 사람에게도 똑똑히 들렸다. 마치 각각의 사람들에게 직접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무협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아하! 이게 전음입밀(傳音入密)이라는 거로군!’ 하고 생각할 법도 했다.  

   

“님들이 지금 왜 여기에 있는가? 

이곳은 님들이 있을 자리가 아니다. 님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님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이곳은 나의 자리이다.”

“그 자리에 함께 하겠습니다.”    

 

앞줄에 서있던 중년의 남자가 다짐하듯 말했다. 

분명히 그 말을 들었을 텐데도, 재림은 아무 대꾸도 없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여기는 ‘나의’ 자리이다.” 

    

재림이 ‘나’라는 말에 살짝 힘을 주어 말했다.   

  

“내가 죽을 자리이다. 

코끼리가 자신의 죽음에 이르러 안식처를 찾아가듯, 발 없는 새가 단 한번 죽기 위해 땅에 내려앉듯, 나는 죽기 위해 여기에 왔다.”

     

호남이 그 말에 슬쩍 재림을 쳐다보았다. 물론 비유적 수사겠지만, 아들의 입에서 죽는다는 말을 듣는 엄마의 기분이 좋을 리는 없다. 

호남의 생각이 전이되었는지 중간에 있던 중년여자가 퉁명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죽긴 왜 죽어? 아직 새파랗게 젊은데. 살 생각을 해야지! 잘 살 생각.”

“나는 님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한다. 

여기 오면 안 된다.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이다. 이 자리, 내 자리 말고, 님들의 자리에서 죽으라는 말이다.”  

   

재림이 한 번 숨을 쉬고 ‘죽으라’고 말하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뭔가 강력하게 반발의 기운이 솟아올랐지만 아무도 그걸 드러내지는 못했다. 

몇몇은 ‘무슨 뜻일까?’ 궁금했고, 몇몇은 맞받아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재림의 옆에 있던 지혜가 사람들을 살펴보더니 갑자기 머리끈을 풀었다가 다시 질끈 머리를 묶었다.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재림을 보호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꽃이 핀다고 다 봄은 아니다. 

봄을 노래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다가오는 겨울을 각오해야 한다. 

이제 시련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님들은 님들의 자리에 가서 시련을 감당할 준비를 해야 한다.”

“죽는다는 것은, 맞서 싸우라는 뜻인가요?”     


처음에 ‘함께 하겠다’고 말했던 중년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재림이 그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싸움은 이길 수 있을 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될 싸움에서 님들은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이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아니다. 

집주인과 세입자의 싸움 같은 것이다. 오너가 나가라고 하면 월급쟁이 직원은 나가야만 한다. 

님들은 이 지구에 세 들어 살던 월급쟁이 직원이다.”


“회사서도 짤렸넌디 또 짤린다고? 고렇게는 못 허지.”

“심판의 날이 온다, 뭐 그런 소린가?”

“때가 온 거지. 아마겟돈 전쟁의 때가.”

“죽겠어서 도망쳐 왔더니 기껏 하는 소리가 돌아가라네?”

“말을 좀 막하네, 어린 것이.”

“우리가 그딴 소리 듣자고 이렇게 비 맞고 있었던 건 아니구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쟈도 아닌가베.”     


아까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웅성거림이 위로 올라왔다. 노골적으로 삿대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재림은 전혀 흔들리는 기색이 없었다.     


“믿음이 없는 자들아. 이제 그만 욕망의 빨판을 거두고 돌아가라. 

가서 님들의 보금자리에 안주하라. 편히 쉬어라. Rest in Peace... 

왜 꼭 죽어서만 평온을 얻으려 하는가? 현재를 부정하려는 저들의 술책에 넘어가선 안 된다.

죽은 사람처럼 쉬어라. 아무 것도 하지 마라. 

살기 위해 일하지 마라. 그건 저들의 앞잡이 노릇에 불과하다. 

살기 위해 노력할수록 님들의 영혼은 허약해진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죽음을 사랑하라. 

죽을 수 있다는 것은 님들의 자랑스런 권리이고 축복이다. 

죽으면 다시 살아난다. 걱정할 일이 아니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납니다. 존재가 사라지니까요.”     


중년이 다시 말했다. 여전히 웅성거림이 있었지만 다시 경청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그것 좋지 않은가? 다시 시작하면 된다. 

죽을 수 없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 

그러나 죽으면 지키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살고, 죽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겸손한 마음과 감사하는 자세만 있으면 된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그래도 여전히 두렵습니다.”

“저들의 계략에 말려든 것이다. 

두려움과 죄의식은 저들이 님들의 마음에 심어둔 해충이다. 

그 벌레를 삼시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삼시충은 나를 온전히 나로 살지 못하게 하고, 오늘을 충만한 오늘로 살지 못하게 한다.”

“삼시충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가 죽으면 삼시충도 소멸한다. 

삼시충을 없애려면 나를 죽여야 한다. 인타스타 카시오!”     


재림이 갑자기 목소리 톤을 높여 주문 같은 것을 외쳤다. 

대부분은 그저 의아해하는 바였으나, 일부 예민한 사람들은 겁에 질려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안타스타 카시오!”     


여기저기서 주저앉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재림의 주문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안티스타 카사네!”     


한두 사람이 웃기 시작하더니 차츰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뭔가 재미있는 일을 겪은 사람들처럼 모두 즐겁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중년남자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재림의 다음 행동을 주목했다.     


“님들은 조종당하면서도 알지 못한다. 삼시충을 제압하지 않고는 님들에게 자유란 없다! 

삼시충을 죽여야 한다. Rest in Peace.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어라. 

그것이 삼시충을 죽이고 님들이 사는 길이다.”     


그제야 사람들은 자신들이 재림의 주문에 농락당했다는 것을 알고 소름이 끼쳤다. 

저런 간단한 말 한마디에 조종당하는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나’라고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은 삼시충의 장난에 불과하다니! 

잠깐 사람들을 흔들어놓고 재림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이것만은 말해야겠다. 

이때까지 지구를 관리해오던 저들이 새로운 계획을 채택했다. 인간들은 버려질 것이다. 

인류의 시대는 끝났다!”


“오, 주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세요.”

“당신은 우리의 구세주입니까?”

“아무도 님들을 구해줄 수 없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 봄을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봄에 죽으나 여름에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왜 굳이 뜨겁고 긴 여름을 기다린단 말인가? 

이 좋은 봄날에, 레스트 인 피스... 님들이 누릴 가장 평온한 휴식 속에서 죽어 가시라.”

“그럴 수 없는 저 같은 사람은 어찌해야 할까요?”     


갑자기 구석에 있던 남자 하나가 일어나 크게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워낙 커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버지를 찾아 천지사방을 헤매고 다닙니다. 

어떻게 편하게 쉴 수 있으며, 자식이 어찌 아버지를 두고 죽을 수 있을까요? 

하나도 모르면서 둘을 안다 말하고, 한 사람의 고통은 무시하면서 열사람 백사람의 아픔을 위로하는 척! 

위선과 가식의 탈을 쓴 당신은 즉시 가면을 벗고 정체를 공개하라!“     


재림이 물끄러미 남자를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다소 남자에게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비를 막기 위해 눌러쓴 후드 티의 모자 속에서 두 눈만 번쩍 빛나고 있었다. 

재림이 남자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람은 모두 가면을 쓰고 산다. 가면을 벗을 수 있는 건 죽음뿐이다. 

아버지는 가면을 벗었는데, 아들은 왜 가면을 벗지 못하는가? 돌아가서 님의 자리를 찾으라.”     

“나는 내 자리를 찾으러, 내 자리를 찾아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찾아야 합니다!”     


남자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얼굴을 가린 후드 모자를 벗었다. 

빗방울이 반갑다는 듯 그의 드러난 얼굴에 달려들었다. 그는 바로 서명근이었다. 

그동안 아버지를 찾아다니느라 힘들었는지 핼쑥해진 얼굴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어느 때보다 반짝거렸다. 

당신을 얼마나 간절하게 찾아 헤맸는지 아세요? 그런 호소가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 

명근을 쳐다보는 재림의 입가에 아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미세하게 웃음기가 흘렀다.      


“당신을 찾아서 여기까지 왔어요. 아버지, 나의 아버지.”     


사람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40 나이의 남자가 20도 안된 소년에게 아버지라고 간절히 부르고 있다. 마치 예수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듯이...     


“아들아! 나의 아들아! 이제 내 곁에 머물며 안식하라. 이런 말을 듣고 싶은가?

그러나 님아. 그건 현재가 아니다. 과거를 사는 것이다. 

언제까지 떠난 아버지의 자식으로 머무르려 하는가. 

이젠 님이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야 하지 않나? 내게 오지 말고 그에게 가라.“     

“하지만...”     


명근이 뭐라고 반박을 하려 하자 재림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러더니 다시 사람들을 둘러보며 약간 소리를 높였다.     


“저녁 드실 시간이다. 편히 맛있는 식사하시라. 오케스타 파사레!”     


재림이 두 팔을 넓게 펴서 공중에 올리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내리던 빗방울들이 정지하더니 다시 공중으로 빨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치 영화의 화면이 되감기하는 것처럼 빗줄기가 주르륵, 공중으로 올라가 사라졌다. 

그리고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내려와 사람들을 축복했다.     


“나는 님들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님들과 함께 죽으러 왔다. 

나는 님들보다 먼저 죽을 것이므로, 님들의 죽음을 조금은 늦출 수 있다. 그러니 일단 안심해도 된다. 

잠시 좋은 햇빛 아래에서 밥을 먹고, 님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라. 

가서, 그 자리에서 머물러라. Rest in Peace!”     


재림이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사람들은 방금 벌어진 일이 믿어지지 않는 듯, 아무 말도 못하고 쳐다보기만 했다.      


“봤어? 하늘이 비를 빨아들였어.”

“비를 멈추게 하다니! 기적이야.” 

“저분이야말로 재림 예수시다! 구세주 예수가 재림하신 거야!”

“아버지! 잠깐만요! 제 애기 좀 들어 보세요!”     


갑작스러운 기적을 직관한 사람들이 놀라 웅성거렸고, 명근의 절박한 외침은 그 소리에 묻혀버렸다. 

재림 일행이 멀어져 감과 함께 사람들의 소란도 점점 커져갔다. 

명근이 급히 재림을 따라가려 했으나 제지당했고, 사람들은 재림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제20화 끝)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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