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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e Apr 09. 2022

길 위에 선 스리랑카

Queuing for present and  future 

스리랑카에 입국한 게 2021년 1월이니 이제 이곳에서 산지도 1년 3개월 남짓 되어간다. 작년 입국할 땐 코로나 상황이 워낙 심각했던지라 정말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PCR 테스트를 하고 군이 수송하는 버스를 타고 2주간 지정된 호텔 격리를 했다. 또 4월 이맘때쯤 싱할라 타밀 새해엔 민족 대이동으로 팬데믹이 창궐하면서 5월부터는 거의 두 달간 통행금지로 집 밖을 나오지 못했다. 그 무렵 스리랑카 인근 해상을 지나던 컨테이너선에 불이 나면서 화학물질과 기름이 바다에 유출됐고 해양생물들과 어부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내가 본 스리랑카는 이렇듯 매 순간이 비상상황이었다. 하지만 부처님의 나라인 덕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랑카는 언제나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수많은 풍파 속에서도 지평선 너머 타들어가는 인도양의 석양처럼 한송이 연꽃을 피우는 나라였다. 그런 랑카가 위태로이 흔들리고 있다. 그동안 쌓이고 쌓인 것들이 이제 한계에 도달한 것이겠지만 반정부 시위 격화로 2019년 부활절 폭탄테러 때 발동됐던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사람들은 거리로 몰려나왔다. 

그리고 그중 가장 약한 사람들이 길 위에 서있다.

일년의 반을 격리 속에 보낸 랑카생활
거리를 가득매운 시위대 그리고 피어나는 불꽃

랑카는 지금...


올해 초부터였던 것 같다. 스리랑카 보유 외환이 바닥이 나면서 해외 연료 수입이 어려워진다는 뉴스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툭툭 기사들은 미터요금이 흥정 요금을 흥정하고 수수료가 붙는 우버는 번번이 취소당하기 일쑤였다. 가스, 휘발유 및 기름 공급대란이 점점 심각해지면서 주유소 근처는 필수 연료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인근 차도는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주차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곧바로 기본 생계를 위협받기 시작한다. 수입품뿐 아니라 필수 식량인 우유, 계란 가격이 폭등하지만 그마저 물건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폭염주의보 속에 기름을 구하려고 하루 종일 줄을 서다 열사병으로 사람들이 죽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기름을 사려고 대기를 하면서 싸움과 갈등이 잦아지자 각 주유소에는 군경이 배치되어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하기까지 한다. 전국에 순환 단전조치가 계속되면서 하루 13시간 전기 없이 버티는데 단전과 단수는 일상이고 수도인 콜롬보에서도 온 가족이 양초 하나로 하루를 버틴다고 한다. 그야말로 중진국을 향해가던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시대의 역주행이 아닐 수 없다.

군경이 배치된 주유소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Queuing


의식주 그 무엇도 보장받지 못하는 이곳에 인권은 없다.


인간의 기본권인 교육권도 박탈당했다. 학교에선 종이가 모자라 시험을 못 치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것도 가장 잘 사는 서부주에서 종이 부족과 잉크 가격 상승으로 시험지 인쇄가 어려워 고등학생 진급 여부를 결정하는 기말고사가 연기됐다.  결국 시험지 부족으로 전국 450만 명 학생의 3분이 2 가량이 학업에 영향을 받았고 앞으로 새 학기 교과서 인쇄도 불투명하고 한다. 한국만큼이나 교육열이 높은 이 나라의 상황이 도대체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는지 가늠조차 되질 않는다.

4월 초 늦은 기말고사를 보는 학생들


이방인의 시선...


얼마 전 돌고래 투어를 위해 북서부 칼피티아로 이동하는 길. 상황이 지금처럼 심각해지기 전이었지만 차창 밖 길 목마다 기름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눈에 밟혔다. 가만히 보니 그중 한 가족은 집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통을 다 가지고 총출동했다. 그리고 엄마 품에 안긴 아이 손에 들린 빈 500ml 페트병... 

그래... 스리랑카 내수경제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소비하는 것이 결국 이 나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주문을 외우며 기름이 가득 든 모터 배를 타고 돌고래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집으로 오는 길에도 그리고 잠들기 전에도 그 페트병을 꼭 쥔  아이의 여린 손가락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현재 거주하는 아파트엔 자체 발전기가 있어 나는 정전을 자주 경험하지도, 기름을 구하러 줄을 서지도 않는다. 그저 방관자이고 싶지 않아 이렇게 생각을 기록하지만... 이곳에 온전히 속하지 않는 낯선 이방인의  3인칭 시점이 어쩌면 그들에겐 또 다른 폭력일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국민이자 국외 부재자로서 공관의 안전 지침을 따르고 위험상황과 사회적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라 물리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나는 그들의 아픔에 감응하는 마음으로 이 상황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을 멈추지 않기로 했다.


길 위에는 이제 야당이 주도하는 시위대가 아닌 팻말을 들고 선 학생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콜롬보 대교구 말콤 추기경님을 필두로 한 주교단 그리고 교구의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거리로 나섰다. 글을 쓰는 날인 오늘 (22.4.6) 기준 국가 비상사태는 해제되었지만 정부는 총리를 제외(?)한 내각 장관 사임, 각 정당에 장관직을 나눠주며 현 국면을 타계하려는데 급급할 뿐이다. 하지만 모든 원인을 외부적 악재로 돌리기 전에 먼저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책임을 통감할 수는 없는 걸까?  길 위에 내몰린 사람들이 그 온화한 미소를 거두고 목소리를 높이기까지 그 속마음을 들으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랑카에게 결코 내일은 없다.

평화롭게 진행 중인 학생들의 피켓 시위 
세상의 신음에 침묵하지 않는 콜롬보 대교구 성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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