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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고래 Oct 19. 2021

신생아 중환자실, 기적이 일어난다

NICU 의사, 간호사 선생님 모두 감사합니다. 

 2013.03.08

세 쌍둥이가 태어났다. 나오기 전부터 이런저런 스페셜한 이벤트가 있었지만, 막둥이 누리의 뇌수막염이라는 클라이맥스를 찍고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냥 곱게 100일을 맞이하게 둘리가 없었다. 참.. 숨 돌리기 급급했다. 마지막 메인이벤트로 막둥이 누리의 후유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뇌수막염의 후유증이란 세균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 누리의 뇌수막염 세균은 폐렴 연쇄구균이었다.


 페렴연쇄구균 후유증은 청력 상실과 뇌성마비가 가장 큰 것이다. 그런데 때마침 아기들 청력 검사 기간이라 하게 된 것이다. 아라랑 마루는 정상이었다. 누리가 문제였다. 일상생활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수 있는 정도로 청력에 문제가 있었다. 예상했던 바이지만 그래도 피가 후욱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 아예 안 들리는 것도 아니고 보청기 끼면 될 거야. '

라고 속으로 혼자 되뇌었다. 주문처럼 계속 되뇌었다.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며...


 그렇게 집에 와서 하루 종일 폭풍 검색 밖에 할 수 없는 나를 또 반성하던 중 아가들이 태어난 지 100일이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100일 상을 준비하고 싶었지만, 집에는 마루 혼자였다. 까맣게 타들어 가서 더 이상 아플 것 같지 않던 속이 또 아팠다. 풍선도 불고, 케이크도 불고, 사진도 찍고 그런 평범함이 나에겐 너무 간절했다. 지금 생각하니 또 울음이 올라온다. 셋은 뱃속을 나와서 하루도 함께 있지 못했다. 자기들도 얼마나 그리웠을까? 아직도 꼬맹이들은 똘똘뭉쳐자는데 말이다. 


 부랴부랴 짝꿍이 회사에 돌릴 100일 떡을 준비하고, 삼신 상을 차렸다. 실체 없는 미신일지라도 100일 동안 고비를 넘기며 돌봐주셔서 감사했다. 아가들 담고 있던 인큐베이터한테도 감사한데 당연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병원 식구들에게 드릴 떡도 준비했다. 누구보다 감사한 분들이었다. 아무것도 못하고 막막한 나에게 희망을 주신 분들이다. 행복을 찾아주신 분들이다. 기적을 만드는 분들이다.


 신생아 중환자실, 갓 태어난 아가들이 여기에 들어온다는 것은 희망보다는 절망이다. 여기에 아기를 맡긴다는 것은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된다. 그 감정과 몸의 반응, 그것을 어찌 말로 표현이 되겠는가. 결코 다시는 겪고 싶지 않고 다시 태어나도 모르고 싶은 일이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얼마 전 드라마에 아기가 너무 작아 수술실로 못 옮기고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수술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게 가능한 일인지 의아한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이다. 실제로 그렇게 수술, 시술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중환자실이라는 곳은 언제나 죽음과 마주하고 있다. 신생아라는 새 생명과 중환자실이라는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 신생아 중환자실. 그곳의 선생님들은 누구보다 따뜻했고 누구보다 멋진 의사셨으며, 간호사셨다. 3교대는 기본이고 자신이 담당한 아이가 아플 때면 교대 시간이 지나도 가질 못하시더라. 마음이 항상 엄마였다. 그런 마음으로 자신의 아이처럼 모든 아기를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기들이 잘 자라서 부모의 품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닌 경우도 보았다. 면회를 하기 위해 밖에서 대기를 하던 중, 한 아기가 끝내 별이 되었다. 모두 울고 있었다. 누구 하나 내 아기를 보여달라고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그날 면회 대기실은 소리 없는 통곡의 바다였다. 


 100일 떡을 챙겨서 병원으로 가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후회도 있었고 기쁨도 있었고 슬픔도 있었다. 암튼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많았다. 병원에 도착했는데 웬걸 나보다 선생님들이 더 들떠 계셨다. 심장에서 몽글몽글 따뜻한 무언가가 퍼졌다. 면회시간이 되어 들어갔는데 눈이 휘둥그레졌다. 100일 상을 직접 만들어 주신 거다. 폭풍감동이 이런 것이었다. 

손수 꾸며주신 백일상

아라                                                                                                                 누리


 우리 아기에겐 엄마가 많았다. 행복한 아기들이었다. 100일은 내 맘과 같이 보살펴 주신 엄마가 10명도 넘었다. 준비하시며 눈물이 나셨다더라. 잘 커줘서 너무 고맙다고. 가장 고마운 건 나인데 이렇게 진짜 이벤트까지 해주시고 엎드려 절을 했어야 하는데, 어리둥절해서 못했다. 그렇게 나의 슬픈 마음을 달래듯이 해주신 깜짝 선물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병원은 어디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 특히 응급실과 중환자실엔 더 그 끝에 있는 곳이다. 그곳에 이런 분들이 없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기댈 것인가? 안 가면 좋지만 병원에 가게 되거든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건네자. 수고 많으시다고. 감사하다고.


 그들은 그 보이지 않는 무언가 사명으로 자신보다, 자신의 가족보다 더 환자를 돌보는 분들이다. 기적을 만드는 분들이다. 기적은 신이 일으키지만, 그 기적이 있기까지 그 앞 문 턱까지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이 있어야 기적도 일어나지. 세 쌍둥이는 나한테 올 때도 그랬고, 내 품에 안길 때도 그랬다. 사람이 하지만 사람의 영역이 아닌 일. 그걸 만드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는 날이다.


 혹시나 이 글을 보실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 힘내시고, 좋은 하루되세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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