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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니 Nov 06. 2023

비울수록 단정해지는 집

여전히 1일 1 비움을 하고 있다. 주도적으로는 내가 하고 있지만 남편과 아이들도 동참하여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자신의 공간에서 물건을 비워내고 있는 중이다. 비우는 방법으로 가장 쉬운 것은 버리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거나 수명을 다하여 사용하기가 어려운 물건들을 중심으로 버림으로써 비워낸다. 두 번째 비우는 방법으로는 주위 이웃들에게 나눔을 하는 것이다. 주로 아이의 작아진 옷과 신발, 책을 위주로 나눔 한다. 아이를 키워보니 옷과 신발을 물려받을 곳이 있는 것이 참 감사하고 좋았다. 그런데 비울 때 역시 물려줄 데가 있는 것이 그렇게나 감사하고 안도가 된다.

(상) 가방류를 살 때마다 받았던 더스트백을 잘 모아두었지만 사용할  데가 없어서 비웠다. (하) 아이의 작아진 겨울슬리퍼와 신지 않고 보관만 했던 나의 여름슬리퍼를 나눔 했다.

비움의 마지막 방법으로는 이제는 전 국민의 온라인 중고마켓인 당신 근처의 마켓, 당근마켓을 이용하는 것이다. 원래도 당근마켓을 잘 이용해서 물건을 잘 판매했다. 여러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 이사 갈 집에 맞지 않는 가구나 물건들을 당근으로 판매하면서 기분이 좋았는데, 최근에도 비움을 하며 당근마켓을 잘 이용하니 물건을 무작정 버리지 않고 필요로 하는 분들께 갔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9월부터 시작하여 11월 초인 지금까지 10건의 거래를 했으니 부지런하게 움직여서 거래를 한 편이다. 판매가도 높지 않게 책정하고 깨끗하고 쓸만한 물건들을 내놓았더니 거래 후기도 좋아 어깨가 으쓱한 건 덤으로 얻는 기쁨이다.

당근으로 9월부터 판매한 물품들

비움을 계속하다 보니 비우기만 했을 뿐인데 공간이 생겨나고 깨끗해지는 기분과 함께 집도 정리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더불어 나의 소비습관도 되돌아보면서 비움이 일으키는 긍정적인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 필요할 것 같아서, 예뻐 보여서, 편리할 것 같아서 등의 '같아서'의 이유를 대며 여기저기서 야금야금 구입한 물건들이 처음에는 조금씩 공간을 점령해 나가다가 여러 물건들이 합쳐지니 더 큰 공간을 점유하게 되었다. 그 물건들을 배치하고 관리하느라 진이 빠지고 피곤해지는 것을 모른 체 살고 있었다. 당근으로 비운 물건들이 대표적으로 그러했다. 예쁘고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 구입한 유리볼은 원래 잘 쓰고 있는 가볍고 관리가 쉬운 스텐볼에 밀려 주방 수납장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귀엽고 예쁜 스니커즈는 막상 구입해서 신어보니 평소에 내가 즐겨 신는 슬립온과 달리 끈이 있어 발을 쓱 넣고 뺄 수 없어 잘 신게 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구입했지만 정작 다른 이유들로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보면 반성이 저절로 되었다. 비우지 않았으면 한 공간을 점유하게 둔 채 그대로 방치했을 법한 물건들이었다. 그나마 당근으로 판매를 하게 되니 어찌나 다행이던지.


비움을 계속하다 보니 알게 된 점이 또 하나 있다.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취향과 스타일들을 비워지는 물건을 통해 명확하게 알게 된 것이다. SNS의 광고와 오픈마켓의 핫딜을 통해 지금 꼭 필요하진 않아도 쟁여두었던 물건들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여전히 핫딜과 신박한 물건들을 보면 '어머, 이건 사야 돼!'를 외치며 손가락이 드릉드릉 움직이려고 하지만 1일 1 비움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좀 더 신중하게 구입을 고려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지간한 물품이 아니면 쟁여두려는 욕심 또한 비우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비움의 긍정적인 효과가 실제 생활과 내면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집을 정리하고 싶어서, 공간을 좀 더 넓게 쓰고 싶어서 시작했던 비움인데 이제는 삶의 방향성까지 고민하게 될 정도로 삶의 많은 부분이 변화되고 있다. 무분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소비습관이었는데 비움을 진행하다 보니 무분별한 소비의 결과물이 툭툭 튀어나와서 당혹스러웠다. 어떠한 기준으로 어떻게 구입하고 구입한 물건을 잘 사용할 것인지 곰곰이 따져보고 생각해 보게 했다. 그리고 소중한 돈과 시간,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지혜롭게 소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도 집구석구석과 창고를 뒤져 보면 비울 물건들이 어디서 그렇게 숨어 있었는지 까꿍 하며 튀어나오곤 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세제도 있고,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들, 쓸 것 같아서 남겨둔 물건들이 여전히 있다.  1일 1비움을 꼭 실천하려 하지 않아도 정리하다 보면 나오는 물건들에 의해 저절로 1일 1비움이 실천되고 있다. 그 비움이 나눔으로 연결되는 날이면 더욱 기쁘기도 하고 말이다. 더욱 기쁜 것은 비움을 통해 정리할 공간이 생기니 저절로 깨끗해 보이고 여백의 미가 살아나는 단정한 집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잡지와 SNS에서 볼 수 있는 훌륭하고  화려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집은 아니지만 우리 가족이 살기에는 깨끗하고 알맞은 집으로 가꾸어 나가는 기쁨이 쏠쏠해서 비우고 정리하는 삶을 멈출 수가 없다. 비울수록 단정해지는 집을 꿈꾸며 말이다.


* 대문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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