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청명했고 햇빛은 눈부셨다. 학교 운동장은 오랜만에 사람들로 북적였다. 교문 근처에서는 학부모회에서 준비한 스낵 코너 설치가 한창이었다. 운동장 가장자리에 설치된 차양막 아래로 일찍 와서 자리를 차지한 엄마들이 상기된 얼굴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드문드문 아빠나 조부모들로 짐작되는 분들이 보였다. 아빠들은 대부분 망부석처럼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고, 조부모들은 어색하게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아이들이 언제 나오나 출입문 쪽을 힐끔거렸다. 그중 동규 할머니의 백발은 유난히 빛났다. 구부정한 허리 아래로 들고 있는 보따리는 내려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옛날 운동회를 떠올리며 장만했을 보따리를 보는 이마다 그 속이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어 운동장으로 아이들 행렬이 쏟아져 나왔고, 때맞춰 이벤트 업체의 사회자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신나는 음악소리에 맞춰 아이들이 질서 정연하게 팀별로 이동하는 동안 학부모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우스꽝스러운 복장의 사회자는 재치 있는 입담으로 스포츠데이의 시작을 알렸다.
청백팀으로 나뉜 아이들은 운동장이 떠나갈 듯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해맑은 얼굴로 열심을 다해 경기하는 1학년 아이들의 첫 경기는 모두에게 웃음을 안겨주었다.
"얘들아, 조금 있다가 우리 학년 경기야. 세 명씩 한 줄로 맞춰."
경기종목에 따라 참여하게 되는 인원수가 달라서 같은 팀 안에서도 그때그때 자리를 정렬해야 했다. 미선은 청팀에서 5학년 아이들을 지도하며 마음이 분주했다. 첫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5학년 아이들은 느슨해졌다. 운동장 바닥에 손그림을 그리는 아이, 옆친구와 손가락놀이로 키득이는 아이, 경기에는 관심도 없이 수다를 떨고 있는 아이가 눈에 띄었다.
"얼른 세 명씩 줄 맞춰!"
1반 선생님의 목소리가 살짝 커졌고, 아이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선생님이다. 그 와중에 영민이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어 미선이 다가갔다. 현수와 동규, 영민이 같은 조로 서 있었다.
"왜 그래? 영민아."
미선이 다가가 물었다.
"아, 선생님. 조를 좀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영민이 말했다. 영민은 유순해 보여도 자기 할 말은 하고, 손해 보는 짓은 안 하는 아이였다.
"이유가 뭔데?"
미선이 다시 물었다.
"그냥요. 불편해요."
영민의 말에 미선은 잠시 뜸을 들이다 앞쪽에 선 다른 조 아이들에게 물었다.
"혹시 영민이랑 자리 바꿔줄 수 있는 사람?"
미선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이들 세명은 꼭 붙어 "안 돼요!"하고 말했다.
미선은 영민을 바라보며 안 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쩌지? 별다른 이유도 없고, 바꿔주겠다는 친구도 없어서 안 될 것 같아."
미선의 여지에 잠시 기대했던 영민은 안 된다는 말을 듣자마자 짧은소리로 탄식을 뱉었다. 그것이 같은 조에 있던 현수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을 리 없었다. 미선이 현수와 영민의 표정을 살피기도 전에 1반 선생님이 이동을 지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