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먼저, 나를 바라봐 주는 법
살면서 늘 열심히 살아왔다고 믿었다. 하지만 문득 뒤를 돌아보니, 그것이 진짜 ‘나를 위한 삶’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아이들을 먼저 챙기고, 가족을 위해서 움직였다. 아이엄마니까, 아이들만 잘 돌보면 된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하루를 버텼다. 정작 내 마음과 몸은 돌보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괜찮아지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견뎌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마치 ‘혼이 빠진 육체’로 살아왔던 것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웃던 내가, 어느새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워졌다. 내 안의 진짜 나는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어했지만, 나는 그 마음을 꼭 눌러가며 감췄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싫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변했을까.”
그 질문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울렸다.
그런 나에게,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큰 변화를 가져다준 순간이 있었다.
회사로 향하던 어느 아침, 길가에 연보라색 작은 꽃이 피어 있었다. 도심 한켠, 아무도 관심 두지 않을 만큼 작고 초라했지만, 눈길을 끌 만큼 예뻤다. 며칠을 오가며 그 꽃을 바라보았다.
비바람이 불어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저 작은 꽃은 어떻게 이렇게 피어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내 안에서도 뭔가 조금씩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이 아이처럼, 내 자리에서 피워낼 수 있을까?’
그날부터 조금씩 마음을 다잡았다.
먼저,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섰다.
처음엔 눈을 마주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동안 나를 얼마나 외면했는지, 내 얼굴이 낯설 정도였다.
그러다 한참을 바라보다 결국 울고 말았다.
“미안해… 너를 너무 오랫동안 놓고 살았구나.”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나서야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눈물 뒤에는 묘한 따뜻함이 남았다.
거울 속의 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고생했어. 괜찮아, 이제부터 다시 해보자.”
그 한마디가 참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려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거울 보는 시간을 조금씩 늘렸다.
아침에 세수를 하며 “오늘 하루도 잘 해보자”라고 중얼거리고, 잠들기 전에는 “수고했어, 오늘 하루도.”
그렇게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힘든 날이 많다.
회사 일, 아이들 돌봄, 쌓여가는 집안일… 달라진 건 크게 없지만,
이제는 ‘나’를 완전히 잃어버리진 않으려 한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 10분,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꼭 가지려 한다.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거나, 하늘 한 번 올려다보거나, 내 손등을 쓰다듬으며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
그 짧은 순간들이 내 하루를 다르게 만든다.
예전에는 하루를 ‘버텨내는 시간’으로 여겼다면,
지금은 하루를 ‘나를 다시 피워내는 시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비록 초라한 자리일지라도, 나는 내 자리에서 조금씩 다시 꽃을 피우고 있다.
그리고 그 꽃을 가장 먼저 봐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