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는 삶이 아니라 느끼는 삶
잘살고 싶었다.
정말 그랬다.
요즘 SNS를 열면, 세상은 반짝거린다.
누군가는 고급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는 새로 장만한 차 앞에서 미소 짓는다.
반듯한 인테리어의 집, 아이들이 입은 명품 옷,
그 모든 것이 너무나 ‘괜찮은 삶’처럼 보였다.
그런 화면들을 스치듯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비교했다.
나는 왜 이렇게 허덕이고 있을까,
왜 나는 저만큼 가지 못할까.
물론, 나는 게으르지 않았다.
아침엔 아이들 등원 준비로 분주했고,
낮엔 공장에서 일했고,
밤에는 집안일로 하루가 끝났다.
그렇게 숨 가쁘게 달려도
내 통장엔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버텼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나도 언젠간 여유로워질 거야.’
그 믿음 하나로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지쳐 있었을까?’
잘살고 싶었는데,
그 욕심이 나를 옥죄고 있었다.
가족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여유 한 줌 허락하지 않은 채.
깨끗한 집, 좋은 차,
남들 눈에 보기에 괜찮은 삶.
그게 ‘잘 사는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마음은 비워져갔다.
통장 잔고는 줄었고,
몸은 무거워졌고,
아이들과 함께 웃는 시간이 줄었다.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잘 산다는 건 보여주는 게 아니라, 느끼는 거구나.
아침 햇살이 부엌으로 들어올 때,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 하며 달려올 때,
그때 느껴지는 따뜻함.
그게 잘사는 순간이었다.
누구에게 자랑하지 않아도,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아도,
그 순간의 나는 분명히 ‘행복’했다.
잘 산다는 건 이제 나에게 이렇게 바뀌었다.
돈이 많고, 물건이 많은 삶이 아니라
마음이 가벼운 삶.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덜 불안한 삶.
내가 스스로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삶.
SNS 속 화려한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다.
하지만 나는 이제 거기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누군가의 완벽해 보이는 하루 뒤에도
분명 나처럼 지친 얼굴이 있을 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내게 주어진 하루,
아이들의 웃음소리,
밥 짓는 냄새,
저녁 노을이 비치는 창가,
그 모든 것들이
‘잘사는 이유’가 되었다.
예전엔 단조로운 일상이 답답했는데
이젠 그 단조로움이 내 삶의 온기를 지탱해준다.
커피 한 잔의 여유보다
아이들과 나누는 짧은 대화가 더 따뜻했고,
새 물건보다
낡았지만 손에 익은 그릇 하나가 더 고마웠다.
이제 나는 안다.
잘산다는 건 비교하지 않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걸.
조금 부족해도 괜찮고,
남들보다 늦어도 괜찮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견뎠다면
그것만으로도 잘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불안한 날에도 나를 다독이고,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며,
그저 조금씩 나아가는 법을.
그렇게 천천히,
조용히,
내가 진짜 ‘잘 사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