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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양 Jun 28. 2020

The Color Of Life

[Modern Black : 029]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스치듯 지나가는 그 잔상은 분명 익숙한 것이지만 이름이 떠오르질 않는다. 다시 눈을 감고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몇 번을 되뇌어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간은 어느새 이십 여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옆 집의 문 여닫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늘 일정한 시간에 하루도 빠짐없이 울리는 그 소리는 묘하게 안정감을 준다. 또 하루가 이렇게 시작되는 구나라고.
베란다에 잘 말려둔 외투와 이어폰을 챙기고 눈만 뜬 채로 집을 나선다. 시간은 아직 5시 반이지만 내리쬐는 햇볕보단 동 틀 무렵인 이 시간이 딱 알맞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볼륨을 최대한 낮추고 피아노의 선율에 집중해본다. 그러는 동안 주변의 풍경은 수면 위 펼쳐진 녹음 사이로 철새들이 흘러가는 고요한 순간으로 이끌린다.
저 다리와 저 나무, 저 풀꽃과 지나치는 강아지와 사람들. 각자의 이름과 유독 떠오르지 않는 그 잔상의 이름. 고작 몇 주의 시간이 몇 달이 훌쩍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는 마법.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걸까?
그런 순간이 있다. 분명 나는 대상을 앞에 두고 보고 있지만, 설령 닿아본다한들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 그럴 때마다 나는 존재하는 허상과 존재하지 않는 실제 그 어딘가에서 발길을 멈추고 서성인다. 의식은 한 걸음 물러선 채로 그 모든 것들을 관찰하고 있다.
지금 틀어져 나오는 삶의 트랙은 몇 번째 반복되고 있을까. 마음속 어딘가 지루함의 테이프가 늘어져 나오는 동안 무의식은 그 익숙함과 낯섦의 중간 지점을 찾고 있다.
생각을 내려놓는 동안, 몸은 입력된 동작 그대로를 행하는 동안 마음은 의식을 넘어 하루 중 유일하게 자유로운 시간, 잠이 깬 직후의 산책을 즐기고 있다.
해가 떠오를 무렵, 잔상은 점점 또렷해지고 산책을 다녀온 마음은 운을 띄운다.
“그 이름은____...”


ⓒ 美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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