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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주말을 여는 첫걸음

드리퍼에 대하여

by 글은

주말 아침, 커피는 나의 하루를 여는 첫걸음이다. 드리퍼를 꺼내고 물을 끓이는 시간은 나만의 의식처럼 느껴진다. 그 과정 속에서 한 주간의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집에 다양한 드리퍼가 있지만 대부분 별생각 없이 하리오 드리퍼로 내린다. 유명하기도 하고 깔끔한 맛이라서 내리기 쉽다고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어서 이다.


하리오는 기대했던 깔끔한 맛과 산미가 분명히 느껴졌지만, 항상 무언가 지나치게 도드라졌다. 원두 자체의 산미가 강해서인지, 커피가 지나치게 날카롭고 ‘신맛’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날따라 다른 드리퍼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같은 원두로 블루보틀 드리퍼를 사용해 봤다. 놀랍게도, 그 강렬했던 산미가 적당히 부드러워졌고, 바디감도 어느 정도 살아나 커피의 밸런스가 맞아떨어졌다.


그 순간 깨달았다. 커피의 맛은 단순히 원두나 추출 방식에만 달린 게 아니라, 드리퍼라는 작은 도구가 그 맛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이후로, 내 커피는 원두와 드리퍼의 관계를 탐구하는 여정이 되었다.

내가 가진 드리퍼 세 가지는 저마다의 개성을 지니고 있다. 하리오는 역시나 깔끔하다. 입안에 남는 잔여감 없이 부드럽게 넘어가는 커피의 산미는 하리오만의 특별함이다. 깔끔하다는 건 입안에 잔여함이 없고 쓰지 않고 가볍게 마실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는 건 깔끔할수록 바디가 낮아지고 원두의 산미가 도더라진다는 걸 뜻한다.

블루보틀 드리퍼는 하리오보다는 물빠짐 구멍이 좁다. 그래서 이와 달리 하리오와 칼리타의 중간쯤에서 맛을 잡아준다.

마지막으로 칼리타는 묵직한 바디감과 스모키 한 풍미를 가장 잘 살려낸다.


정리하자면 드리퍼는 하리오 블루보틀 칼리타 순으로 깔끔한 맛이 추출된다.


산미가 강한 싱글 오리진 원두를 하리오로 내리면 그 산미가 너무 도드라져 마치 ‘신 커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칼리타나 블루보틀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칼리타는 묵직한 바디감을 더해 커피의 밸런스를 잡아주고, 블루보틀은 적당히 깔끔하면서도 지나치지 않은 산미를 만들어내어 마시는 사람에게 거부감을 줄여준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 같은 드리퍼라도 원두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지고, 원두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적합한 드리퍼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의도가 어우러질 때 비로소 최고의 한 잔이 탄생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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