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두루미의 천국 순천만 습지에 가다.
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봇대를 다 뽑았다? 새들에게 모이로 주기위해 벼농사를 유기농으로 짓고, 그 벼를 새들에게 전량 공급한다‘라고 하는 놀라운 사실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순천만으로 달려갔다.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안습지인 순천만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인천에서부터 한걸음에 달려 순천 만에 가보니 수만 마리의 온갖 철새들이 요란하게 저마다의 목청을 가다듬으며 노래하고 있다. 전 세계에 1만 6천마리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 Ⅱ급인 흑두루미가 무려 8,000여마리나 순천만으로 찾아왔다. 수 천마리의 흑두루미들이 모이로 사람들이 뿌려준 벼를 먹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순천만에는 흑두루미외에도 기러기, 오리등 수 백여종의 철새들 5만마리가 겨울을 나고 있다. 2009년도에 순천만에 찾아오는 흑두루미가 80여마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듣고나니 지금의 순천만의 모습은 거의 기적과도 같았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변화가 가능했을까. 어느날 갑자기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대로 자연적?으로 두었다면 습지는 농경지로 바뀌고, 도심주거지 확장으로 습지 배후 지역도 도심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실제로 순천시는 1992년 순천만 동천하구 모래 채취사업을 계획했고, 1996년에는 하천 직강화 사업을 추진했다. 만약 자연스럽게 순천시의 정책을 그냥 두었다?면 순천만은 기적은 커녕, 생태가 죽은 오염된 평범한 습지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순천만을 지켜낸 데에는 시민들의 ‘운동’이 있었다. 순천의 환경활동가와 시민들, 그리고 전국의 환경단체가 연합하여 순천만 지키기에 나섰다. 전국 35개 환경단체가 나서서 골재채취의 허가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했음을 밝혀 감사원에 신고하고, “제1회 순천만 갈대제”를 여는 등 반대운동을 펼쳤다. 하천 직강화 정책에는 순천만의 갈대가 오염된 하수를 정화처리하는 자연 정화처리 기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처음에는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람사르 습지 지정을 반대하던 지역 시민들도 하나둘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순천만의 모래를 채취해 돈을 벌어야한다던 주민들도 순천만의 생태복원이 더 가치있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귀한 세금을 들여 전봇대를 지하화하고 세금으로 벼를 사들여 두루미 먹이로 주는 일이 지역경제에도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009년부터는 순천만 인근의 논을 ‘두루미영농단지’로 지정하고 농약을 쓰지 않는 100% 유기농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농사지어 거둔 벼를 흑두루미 벼로 공급한다. 순천시가 세금으로 농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국민의 혈세를 새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에 순천시민들이 동의하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인근 주민들은 ‘흑두루미지키미’란 단체를 만들어 흑두루미 보호에 적극나서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환경을 파괴하고 몇푼 이익을 위해 동물들의 삶터를 망가뜨리고 있는 일이 빈번한 한국에서 순천만의 사례는 기적과 같은 일이다.
자연과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순천의 시민들이 알게되었고 그것을 위해 실천하고 있다. 흑두루미를 비롯한 철새들도 이런 시민들의 변화에 화답해 순천을 자신의 삶터로 삼고 꾸준히 방문하고 있다.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활동가들의 노력이 있었고, 시민들의 마음이 움직이자 행정이 함께 움직여 민관협력의 거버넌스(Governance) 의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
얼마 전 인천 갯벌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2단계 등재가 무산 되었다. 인천 갯벌중 가장 넓은 구역을 포함하고 있는 강화군이 등재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갯벌을 둔 기초자치단체의 참여의향서가 필수인데 필수요건을 갖출수 없게 된 것이다. 강화군은 ‘주민 반발’ ‘중복 규제’등을 이유로 등재에 동의하지 않았다. 순천만의 기적을 비추어보면 정말 씁슬한 상황이 아닐수 없다. 국내에서 신안다음으로 큰 갯벌이 강화갯벌인데, 그 강화의 주민들이 찬반으로 갈려 지자체도 눈치 행정을 펼친 것이다.
생태환경을 지키는 일도 결국 설득을 통해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먼저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얼마전 동네 아파트 단지 가로수들이 앙상하게 전지된 것을 보았다. 살아있는 생명의 소중함을 모른는 사람들의 만행이라 여겨진다. 그 나무들은 얼마나 아팠을까? 풍성한 나뭇가지와 나뭇 잎사이에 앉아 쉬고 노래하던 새들은 어디에서 지친 날개를 쉬고, 먹이를 구할 것인가. 나무하나, 풀잎하나, 새 한 마리를 볼 때 느껴지는 생각들이 참으로 다름을 느낀다. 어떤 이들은 새들의 존재를 귀하고 고맙게 여기고, 아끼는 마음을 갖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새들이 없어져야 새똥이 없어져 거리가 깨끗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 가깝지 않은 생각의 거리를 어떻게 좁힐수 있을까. 순천만의 기적을 보며 내내 마음 속에 무겁고도 큰 숙제를 갖게 된다.
(한겨레 21 2024년 3월 ‘비주얼 담당’ 흑두루미가 어디든 날아가도록 (김양진기자, 류석우기자)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