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안나 66
아침 8시, 뚜왈렛이 왔다. 잠이 덜 깬 상태로 간호조무사를 돕는데 그녀가 나에게 머리를 감기냐고 물었다. 화요일마다 할머니의 머리를 감는 것을 깜빡 잊었다. 임무 수행을 마치고 할머니의 머리를 말려드린 뒤 아직 덜 깬 정신을 붙잡으며 아침을 먹었다. 어젯밤에 짜장면을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혹은 내 불룩한 배를 본 충격 때문인지 식욕이 없었다. 빵은 생략하고 언니가 깎아두신 사과를 먹고, 따뜻한 커피만 마셨다.
그리고 오늘부터 숀리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운동 매트가 없어서 예전에 돗자리로 쓰려고 샀던 천을 깔고 했는데 바닥이 딱딱해서 무릎이 아팠다. 오랜만에 하니 정말 힘들었다. 오늘따라 핸드폰 타이머도 말을 듣지 않아 1분씩 시간을 재는 것은 포기하고 속으로 30을 세면서 했다. 간단한 동작들을 1분 간 반복하고 총 3가지의 동작들을 5세트씩 하는 건데 너무 힘들다. 따지고 보면 15분인데 말이다. 시작하자마자 포기할 뻔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살만 쪄서 돌아갈 수는 없었기에 나름 열심히 했다. 운동을 끝내고 머리를 감은 뒤 준비를 했다.
오늘은 점심을 먹고 장을 보러 갈 거다. 하루 한 단어 공부도 하고, 점심 먹기 전 시간이 조금 남아서 스카이프 계정을 만들어 친구와 영상통화를 시도했다. 처음으로 하는 영상통화는 왠지 조금 쑥스럽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좋았다. 배불리 점심을 먹고 어제 택배로 받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분명 한국에서 넉넉하게 맞았던 허리 27인치짜리 바지가 꽉 껴서 너무 슬펐다. 정말 살이 찌긴 쪘구나. 그래도 오랜만에 조금 높은 굽을 장착 하니 자신감이 샘솟는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싶었지만 역으로 가는 노선이 안 보여서 그냥 지하철을 탔다. 6호선 공사가 끝나서 조금 더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오랜만에 오까베 앞에 있는 구제 숍도 구경하고 오샹으로 장을 보러 들어갔다. 내가 필요한 휴지와 바디로션, 섬유유연제를 골랐다. 2층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1층으로 내려갔는데 조금 후회했다. 맛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빵 코너로 가 보니 달콤한 디저트들을 묶음으로 아주 싸게 팔고 있었다. 한 박스 사갈까 싶었지만 집까지 들고 갈 것이 걱정되어 그냥 포기했다. 알록달록 마카롱도 사고 싶었는데 꾹 참아냈다. 결국 다시 2층으로 올라가 계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조금 걸을 심산으로 앙발리드에 내렸는데 해가 너무 뜨거웠다.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는 정도였다. 힘들게 그늘로 찾아 들어가 쉬다가 예쁜 풍경 사진도 찍고 다 좋았는데 너무 힘들었다. 조금 덥기도 했고 다리도 아팠다. 잔디밭에는 젊은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놀고 있었다. 부러웠다. 화장실도 급했고 다리도 아파서 한껏 인상을 찡그린 채 집으로 갔다. 들어가니 할머니만 누워 계셨다. 우선 급한 화장실부터 해결하고 일어나려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조금이라도 늦게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 얼른 바지를 추켜올리고 준비를 했다.
오랜만에 케빈이 왔다. 임무 수행 도중 할아버지와 언니가 장을 보고 오셨다. 수월하게 일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었다. 영상통화를 짧게 한 번 더 하고 나는 저녁시간까지 침대에서 쉬었다. 생각해보니 살이 찔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밥 먹고 금방 침대에 눕거나 의자에 앉기 일쑤인데 집 안에서 움직임이 별로 없으니 당연히 먹은 것들이 지방으로 가는 거겠지. 그래도 이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으니 조금이라도 더 움직여 보려고 노력해야겠다. 그나저나 오늘 지하철 안에서 졸려 죽는 줄 알았다. 분명 여덟 시간 이상 푹 자는데 뭐가 문제지? 오늘은 조금 더 일찍 자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