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안나 94
바쁜 화요일 아침이다. 식사를 하다가 뚜왈렛이 와서 먹는 것을 중단하고 임무 수행을 했다. 머리까지 말려 드리고 다시 남은 식사를 끝마쳤다. 나도 머리를 감고 간단히 기초화장을 했지만 오전엔 나갈 생각이 없었다. 밤새 비가 내리더니 낮엔 날씨가 꽤 좋아 보였다.
할아버지와 언니께서 오늘 중국 마트에 가신다고 하셨는데 화요일이라 청소 아주머니도 오시고, 언어 교정사와 마사지사가 올 것이기에 나는 집에 있기로 했다. 그런데 점심을 먹으려고 나가니 할아버지께선 외출하신 상태였고 언니는 오늘 중국 마트에 안 갈지도 모른다고 했다. 어쨌든 밥을 다 먹고 내 방 청소를 간단히 한 뒤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청소 아주머니께서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들려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나는 내 할 일을 했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내가 매일 보는 것들에 대해 공부했다. 작은 책자처럼 만들면 좋을 것 같다. 프로젝트도 구상 중에 있다. 저녁을 먹기 전에는 영화를 보았다. ‘우리 동네’라는 스릴러였는데 아무래도 소재가 연쇄 살인이다 보니 쓸데없이 잔인했다. 연출도 조금 엉성하여 영화에 몰입하기가 힘들었고 나중엔 졸리기까지 해서 그냥 결말을 보지 않고 꺼버렸다.
저녁은 파스타로 간단히 해결한 뒤 야경을 보기 위해 나갔다. 하루에 사진 10장 이상 찍기를 지키기 위해서 하루 종일 방 안에만 처박혀 있을 수는 없었다. 킥보드를 끌고 나갔는데 점점 해가 지고 있었다. 에펠탑은 벌써 조명이 켜져 있었다. 정말 예쁘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앙발리드를 지나니 금세 하늘이 어두워졌고 거리의 가로등을 비롯해 건물들에도 조명이 켜졌다. 어두워서 길바닥이 잘 안 보였지만 킥보드를 타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잔디밭에선 축구부인지 럭비부인지 하는 운동부 사람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어두워서 그런지 더 멋있어 보였다.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어둠 탓인지 다들 멋져 보였다. 나는 거리 곳곳을 사진 찍고 감상했다.
이런 멋진 곳에서 살고 있으면서 매일 밤 방 안에 처박혀 인터넷이나 두들기고 있었다니. 그동안의 내 모습을 반성했다. 밤바람도 시원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 반짝였다. 알마 다리 밑에서 조금 쉬다가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 문득 지갑을 두고 왔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결국 8시 30분쯤 자리에서 일어나 열심히 달려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관광객은 별로 안 보였고 시민들도 많진 않았다. 조금 어둡고 무서운 마음이 들어서 휴대폰으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씽씽 달렸다. 랜덤 재생이었는데 마침 ‘삐딱하게’가 흘러나와서 정말 신나게 달린 것 같다. 집에 도착하니 땀이 뻘뻘 났다. 다행히 9시 전에 들어왔고 열 시가 조금 넘어서 임무 수행을 완료했다.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부터 시작되는 10월의 하루를 정말 알차게 잘 보내야지! Bonne Nu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