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안나 96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다. 웬일인지 매일 혈당 검사를 하는 키 작은 여자 간호사가 오늘은 뚜왈렛까지 하더라. 그전에 화장실을 쓸 수 있냐고 물었는데 처음엔 불어로 말해서 못 알아들었고(정확히는 ‘화장실’만 알아들어 무작정 “Oui” 했다.) 내가 멍한 표정을 짓자 다시 영어로 물어보기에 대충 뜻을 이해했다. 아직은 불어보다 영어를 더 쉽게 알아듣는다.
아무튼 화장실로 그녀를 데려다주고 임무 수행 준비를 했다. 키가 큰 여자 간호사도 함께였는데 그녀는 뚜왈렛을 전혀 돕지 않더라. 따라서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 두 명과 힘겹게 임무 수행을 마치느라 나만 고생했다. 할머니를 의자로 옮기는 과정에서도 그녀들은 거치적거리기만 했다. 어쨌든 임무 수행을 끝마치고 아침을 먹기 위해 준비하는데 언니가 오늘은 피곤해서 어학원에 안 갔다며 할머니 식사는 본인이 드리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오래간만에 편하게 아침을 먹고 방에 들어왔다. 열시도 안 된 시간. 요새 뚜왈렛이 늦게 와서 모든 걸 다 끝내고 나면 10시 반쯤 됐었는데 오래간만에 일찍 끝났다. 그런데 배가 슬슬 아파왔다. 며칠 전부터 생리통 마냥 아랫배가 콕콕 쑤셔서 생리대까지 하고 잤건만 나오라는 피는 안 나오고 배탈이 난 건지 화장실에 다녀와도 배가 편안하지 않았다. 그래서 잠깐 갈등했다. 조깅 1일 차 만에 쉬고 싶어 진 것이다.
고민하다 결국 조깅은 포기하고 퀵 보드를 끌고 나갔다. 밤새 비가 내렸는지 바닥이 축축했고 하늘도 흐렸다. 날씨도 꽤 쌀쌀하였지만 열심히 달리다 보니 금방 땀이 났다. 즐겁던 퀵 보드는 운동이 되어 버리니 힘들기만 했다. 그래도 용케 오르세까지 갔다. 아침에도 관광객이 꽤 있었다. 한 바퀴 돌아 콩코르드를 거쳐 집에 갈 생각이었지만 그냥 오르세에서 유턴하여 앙발리드로 갔다. 그리고 앙발리드 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나비고가 있으니 이럴 때 써먹어야지. 땀이 나고 더웠지만 후드를 뒤집어쓴 채 걸었다.
내내 짜증이 났다. 배도 아프고 바지도 불편하고 덥고 몸은 무겁고. 이러다간 빠질 살도 스트레스 때문에 안 빠지겠다,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쨌건 한 시간 움직였다. 나와의 약속을 이틀 만에 깨버릴 수는 없었다. 내일은 무조건 조깅을 해야지. 차라리 뛰는 게 나을 것 같다. 집에 돌아와 간단히 샤워를 하고 점심을 먹었다. 삼겹살이었는데 오래간만에 먹는 고기 맛이 일품이었다. 하지만 밥이 너무 많아 고기에 집중을 못했다. 나중에는 배가 너무 불러 그냥 국에 말아먹었다. 한동안 고기쌈이 정말 먹고 싶었는데 눈앞에 두고도 제대로 해치우지 못하다니.
근데 요새 밥 양을 조금 줄였더니 위도 준 것 같다. 초반에 하숙집에 들어와서는 주는 대로 받아먹었더니 위가 늘어났는지 언니가 얼마큼을 줘도 배에 다 들어가더니. 오늘은 좀 버거운 느낌이 들어 괜히 기분이 좋았다. 밥을 다 먹고 터질 것 같은 배를 부여잡고 머리를 감은 뒤 나갈 준비를 했다. 여전히 몸 상태는 별로 안 좋았지만 점심 식사 후 외출도 나와의 약속 중 하나다. 오늘따라 잘 받은 화장을 마치고 머리를 말린 뒤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생 제르망의 킬로샵에 가려고 70번 버스를 기다리는데 하필이면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아무튼 껄렁껄렁 해 보이는 학생들 무리가 정류장 근처에 득실거렸다. 괜히 동양 여자라고 해코지당하는 거 아닌가 싶어 속으로는 쫄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정류장 의자 끄트머리에 앉아 인상을 쓰고 껌을 씹었다. 아무튼 버스가 도착하여 유유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안 그래도 배가 살살 아프고 심기가 불편했는데 그런 시끄러운 애들 사이에 앉아있으려니 심난했었다.
버스를 타고 이름은 기억 안 나는 역에 내려 킬로샵 구경을 했다. 조금 마음에 드는 치마와 편한 바지를 발견했지만 역시나 구매는 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지출은 금지다. 다시 70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시청역으로 갔다. 여기서 오랜만에 72번 버스를 타고 샤요궁에 갈 목적이었다. 콩코르드 앞에서 차가 너무 막혀서 조금 답답했다. 사실 집 앞에서 지하철을 타고 바로 트로카데로에 갔으면 이미 도착하고도 훨씬 남았을 시간이지만. 어두컴컴하고 꽉 막힌 지하철보다는 뻥 뚫리고 환한 버스가 더 좋다.
파리의 차도에는 차선이 별로 없다. 있었는데 흐려졌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떻게 운전을 하는 건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선이 뚜렷하게 보이는데도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데 비하면 유럽식 운전은 어딘가 신기하다. 생각보다 조금 오래 걸려 샤요궁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내릴 때 버튼을 안 눌렀더니 샤요궁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수 있었다. 처음엔 조금 걸어가야 하는 것이 짜증 났지만 둘러보니 멋진 풍경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엄청 큰 나무들이 낙엽을 뿌리며 굳게 서 있었다. 사진을 찍고 그 앞에 앉아 조금 쉴까 했지만 그냥 지나쳤고 나중엔 그걸 후회했다.
회전목마를 지나 여전히 관광객이 득실거리는 샤요궁 광장에 서서 잠깐 에펠탑을 보다가 마땅히 앉을자리가 없어 조금 헤맸다. 그러다 아까 버스에서 본 갭 60퍼센트 할인이 떠올라 충동적으로 근처 갭 매장으로 향했다. 가다가 어떤 아저씨가 메트로의 위치를 물어봤다. 바로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꺾으면 있는데 그걸 모르다니. 내가 서툰 불어로 알려주니 나에게 불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다. 조금이라고 대답하자 여행 왔냐고 하더라.
1년 동안 긴 여행을 한다고 했더니 아주 좋다며 갑자기 뭐 예쁘다는 뜻의 말을 알려주었다. 근데 내가 별로 대꾸가 없자 그는 지하철 역 앞에서 ‘너도 지하철 타?’하기에 “Non”하니 쌩 가버리더라. 적어도 고맙다는 작별 인사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아무튼 갭 매장에 들러 잠시 옷을 보는데 예쁜 패딩 점퍼가 있었지만 내가 살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작은 지출도 나에겐 큰 타격이니 모든 걸 참을 수밖에. 다시 샤요궁에 가서 공사 중인 곳 앞의 계단에 앉았다.
당을 보충하기 위해 초콜릿을 먹으며 사람들은 구경하는데 공사장에서 흑인들이 나왔다. 그러곤 나를 보더니 ‘차이나~ 차이니즈~’라고 하며 지나가는 것이다. 나도 ‘퍽유 블랙’이라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사실 흑인들은 무서웠으므로 그냥 못 들은 척하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중국인으로 오해하는 건 그러려니 하겠는데 저런 식의 조롱은 솔직히 기분 나쁘다. 괜히 왔나 싶어 또 짜증 나는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기념품 가게를 지나며 어떤 물건이 있나 쓱 둘러보았더니 주인이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나에게 “안녕하세요~”했다. 이후 눈을 마주쳐 웃어주고 메트로를 타러 갔는데 사소한 친절이었지만(그에겐 장사 수법이었겠지만) 기분이 금세 풀렸다.
파스퇴흐 역에 내려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슈퍼에서 ‘벤&제리’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처음에 가게 앞에 있는 아이스크림 통의 문을 열려고 했는데 안 열려서 조금 당황했다. 가게 안의 주인에게 인사를 하니 열쇠를 가져와 열어주었다. 혹시라도 누군가 훔쳐갈 것을 대비해 잠가두는 듯했다. 쿠키 어쩌고 맛을 고르고 계산을 하는데 젊은 여자 주인은(알바생 일수도) 내가 불어를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소심한 영어로 말을 했다. 그녀의 아주 작은 “땡큐”가 잊히지 않는다.
나는 태연히 “Merci. au revoir.”하고 나왔다. 언제쯤 나도 유창한 불어를 할 수 있을까. 집에 와서 기대했던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생각보단 별로였다. 이런 게 3.50유로나 하다니. 이후 케빈이 와서 금방 뚜왈렛을 마치고 저녁을 먹기 전까진 계속 인터넷 서핑을 했다. 현재 내가 살던 인천에선 아시안게임이 한창인데 손연재가 리듬체조 부문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한다. 나는 사실 스포츠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손연재가 주목을 받든, 실력 논란으로 비판을 받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리듬체조 팬이 손연재를 까는 이유’라는 글을 통해서 그녀가 왜 욕을 먹는지 알 수 있었다. 세상엔 참 부조리한 일들이 많다.
게다가 이번에 단통법이라는 거지 같은 법이 통과되어 이제 핸드폰을 살 때 보조금도 적어지고, 비싼 요금제를 2년 동안 유지해야 하고, 해지 시 위약금도 어마어마하게 부과된다고 하니. 내 옵티머스 투엑스를 계속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년에 한국에 가면 바꾸려고 했는데 그냥 프랑스에서 하나 사야 하나 싶다.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