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

파리의 안나 95

by Anna

시월의 첫 아침이다. 잠은 푹 잤는데 자세가 잘못된 건지 등 쪽이 조금 쑤셨다. 할머니와 함께 아침을 먹고 양치질을 시켜드리는데 가끔 양칫물을 뱉지 않으셔서 골치가 아프다. 게다가 오늘은 입을 헹구고 있는 도중에 뚜왈렛이 와버려서 조금 곤란한 상황이었다. 결국 입 안에 남아있는 물을 뱉지 않으시고 삼키는 할머니를 보며 한편으론 속상했지만 솔직히 조금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런 부분까지 이해해드려야지 하고 참았다.


오늘부터 아침을 먹고 나서 운동을 하기로 했다. 퀵 보드를 탈까 하다가 갑자기 뛰고 싶어 져서 조깅을 했다. 오전 시간대라 운동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는 일부러 그늘에서만 뛰었다. 예전보단 덜 힘들었다. 삼십 분 정도 내리뛰다가 저 멀리 앙발리드 앞에서 군인들이 줄지어 있기에 가까이 가보았더니 군악대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한국의 국군의 날인데, 프랑스도 그런가 싶어 잠시 구경하다가 다시 10분 정도 더 뛰고 집으로 갔다. 힘들긴 했지만 상쾌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물을 벌컥벌컥 마신 뒤 샤워를 했다. 그리고 먹는 밥맛은 정말 꿀맛이었다. 점심을 먹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뒤 집을 나섰다. 나비고 한 달권을 충전하고 라데팡스로 향했다. 도착해서 옷가게를 구경하다 ‘뉴 룩’에서 정말 사고 싶은 반지를 봤다. 여러 개의 링이 레이어드 된 스타일이었는데 총 4세트에 9.99유로였다. 살까 말까 정말 많이 고민했는데 오늘 현금이 18유로밖에 없어서 장을 보기 위해 꾹 참았다.


곧바로 오샹에 가서 구경을 하는데 1유로 코너에 정말 많은 상품들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동물과 공룡 모형이 사고 싶었다. 마트 구경도 하면서 필요한 물건을 골랐다. 제일 먼저 치약 코너에 가서 가격 대비 인기가 많은 치약 세트를 사고, 이후 휴지 코너에서 제일 싼 오샹 상품 4곽을 집었다. 그리고 젤리 코너에서 하리보 하나 사고, 고심 끝에 M&M 초콜릿도 골랐다. 초콜릿 가격이 제일 비쌌다.


계산을 하는데 직원이 가격을 말로 하지 않고 보여주었다. 아마 내가 숫자를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유일하게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게 숫자인데. 계산을 마치고 2유로 샵에 가서 또 고심 끝에 린스를 하나 골랐다. 고르는 중에 옆에서 향수를 보고 있던 한 여자가 샘플 향수를 바닥에 떨어뜨려 깨졌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진 않았고 직원은 괜찮다며 대충 치우더라. 물어내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겨우 2유로짜리라 그런가. 계산을 하고 나와 밖으로 나갔다.

라데팡스에 오면 그다음 역까지 걸어가는 게 습관이 되었다. 사진 찍기 미션도 수행하며 역을 향해 가는데 다리가 너무 아팠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4시 1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5시까지는 집에 가야 해서 벤치에 잠깐 앉았다 곧바로 걸었다. 지하철을 타고 샤를 드골 에뚜왈 역에서 6호선을 갈아탔는데 집에 다 와 가서 멈췄다. 안내 방송이 나왔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 3분 뒤에 다시 출발했고 조금 늦은 것 같았는데 다행히 엘리베이터 앞에서 케빈을 만났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서 뻘쭘했는데 나만 느낀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무사히 오후 임무 수행까지 마치고 가계부를 작성한 뒤 불어 공부를 했다. 저녁은 고등어조림이었다. 밥이 항상 맛있다. 이러니 살이 찔 수밖에.


아무튼 배불리 먹고 속담을 옮겨 적은 뒤 영화를 보았다. ‘사생결단’ 주연 배우가 황정민과 류승범이라서 기대했는데 2006년 작이라 그런지 좀 촌스러웠다. 내용도 썩 재미있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영화는 너무 욕이 많이 나온다. 아무리 범죄 누아르 영화라고 해도 그렇지. 마약 관련 이야기라 흥미롭긴 했지만 결말이 특히 별로였다.


저녁 임무수행까지 마치고 나니 열 시 반이다. 하루가 정말 짧게 느껴진다.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그에 따라 양치도 하루 세 번. 임무 수행도 세 번 완료. 333으로 하루가 끝난다. 내일은 또 어딜 가지? 나비고를 충전했으니 이번 달은 여기저기 많이 다녀야겠다.

keyword
이전 10화Bonne Nu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