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일출

함께 눈을 뜬다는 것

by moonrightsea

" 네 곁에서 내가 사라져 버린다는 게 내게는 그 어떤 악몽보다 더한 고통이라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라... 가슴이 미어지고 너무나 눈앞이 캄캄한데 그 고통보다 더 한 절망으로 내가 가야 한다는 사실이 더 나를 미치게 해. 내가 그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더더욱. "


들썩이며 흐느끼는 그녀의 작은 몸부림. 바닥에 쉼 없이 떨어지는 그녀의 눈물 자국.


그 고통.

그녀가 흘리는 한 방울 한 방울이 내 가슴에 마치 칼날처럼 파고든다. 어찌 말해도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도 내가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게 고작 그녀를 포근히 안아주는 것뿐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고통스럽다.





나는 그녀를 살며시 당겨 더 깊이 안았다.

그녀의 파르르 떨리는 어깨를, 그녀의 등을 어루만지며 그녀의 마음이 진정되도록 크게 숨을 내여 쉰다.

" 후우~ 후우~"


그녀를 향한 내 뜨거운 진심이 제발 그녀에게 전해지길 그렇게 간절히 바래 본다.


그녀는 온몸에 힘이 빠지는지 침대에 걸터 앉아 서는 그렇게 스르르 기대어 누웠고 그녀에게 팔베개를 하고 나도 그녀를 바라본 채 누웠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맞추고는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 네가 있어 내가 여기 있을 수 있고


당신이 있어 내가 이렇게 존재 하나보다.


삶은 나를 배신하지는 않았는가 보다.


내 삶에 이렇듯 보석 같은 당신을 주었으니. '




숨을 쉰다는 것.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


온전히 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내게 온 몸으로 절절히 증명하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결을 그렇게 귀 뒤로 넘기고 그녀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그녀의 팔을 쓰다듬고 그녀의 허리를 어루만져 그녀를 당겨 안았을 때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내게 다가와 입을 맞췄다.


" 나를 살게 해 줘서 고마워. "


그녀의 보석 같은 속삭임.


" 네가 나를 숨 쉬게 하는구나."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방긋 웃었다.

그러자 그녀는 내 목에 팔을 두르고는 또 다시 키스를 해온다.


그녀의 숨결이 느껴지는 순간.

나는 그녀의 머리를 끌어안고 그녀의 등을 더 강하게 끌어 안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내 위로 그녀를 올렸다.

그러자 그녀가 팔을 집고 내 위로 올라와 긴 머리카락을 늘어 뜨리고는 나를 동그란 눈으로 내려다보며,


" 이 순간도 바보처럼 너는 나를 설레게 하네. 후훗. "

그렇게 말하며 내 샤워가운을 풀어헤친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예쁜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았으며,

" 눈물이 흘러도 예쁘잖아. 화내도 예쁘고 내 위에 있어도 예쁘고 뭘 해도 예쁜데 어떡하지?"


" 바보 같아. "




그녀는 나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녀의 샤워 가운을 벗었다.

그리고 얼굴을 내게 가져다 대며 볼을 문지른다. 그녀의 부드러운 그 볼이 내 볼에 닿을 때마다 마치 전기가 일듯 소름이 돋듯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돋는다.


" 흐음."

그러자 그녀는 방긋 웃어 보이며, 파르르 떨리는 손을 들어 내 앞머리를 넘겼다.


" 당신의 눈동자. 내게 말하고 있어. 나를 원한다고. 갈망한다고. "


그녀의 말에 그녀와 눈을 맞추자 나도 모르게 심하게 내 눈동자는 동공에 지진이 나듯 그렇게 흔들렸다.

그녀의 얼굴을 더 자세히 보려 손을 들어 그녀의 긴 머리를 다시 쓸어 등 뒤로 넘기자 그녀는 내 손을 잡아 가슴으로 가져다 댔다.


" 두근두근 두근두근"


" 봐. 너와 있으면 내가 살아 있구나. 하고 느껴져. 들려? 내 심장소리."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가슴을 내 얼굴에 가져다 댔다. 포근히 내 얼굴을 감싸 안은 그녀.


희고 뽀얀 그녀의 속살.

그 가슴살에 파묻혀 은은히 풍겨져 오는 라벤더 향을 맡으며 나는 마치 천국에 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에 대해 알지 못해도 다 아는 것 같은 느낌. 그녀를 품지 않아도 다 가진 느낌. 그저 그녀가 내 안에 들어온 느낌. 이 충만한 느낌만으로도 나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


" 나... 더는 더는 하아. "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돌려 내 가슴에 품고 그녀를 내려다봤다.


손바닥 물집이 터지고 피가 나도 안중에도 없이 내 가슴아래 그녀를 지긋한 눈으로 바라보며 나는 그녀의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내 안에 그녀가 들어왔듯 나 또한 그녀 안에 있음을 증명하듯.

그녀의 몸 안으로 그렇게 깊숙이 미친 듯 파고들며 그녀를 강하게 갈망하였다.






동해는 일출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어둑하던 하늘은 어느새 환해지며 일 순간 주변은 붉게 물들다 덩그러니 바다 한가운데서 흰 것도 같은 노란 것이 떠오른다. 그리고 느린 듯 천천히 떠오른다 싶다가 어느새 둥실 하늘 위에 모습을 드러내며 일출의 장관을 선보인다.


그녀와 맞이하는 새로운 아침.

곤히 잠든 그녀를 등 뒤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창가에 서서 그렇게 떠오른 해를 보며 나는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어느새 들리는 인기척에 뒤돌아 보자,


" 후훗. 야해."

어젯밤 뜨거웠던 우리가 생각나서일까.

그녀는 웃으며 이불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는 내게 말했다. 나는 그녀를 보며 방긋 웃어 보이고 성큼성큼 다가가 이불속에 파고들어 그녀를 다시 꼭 껴안았다. 그리고 그녀를 느끼려 팔을 문지르고 다리를 문지르자


" 까르르까르르"

그녀는 연신 웃으며 간지러워했다.


" 간지럼을 많이 탔네? 왜 몰랐지?"

" 그러게. 이런 느낌은 또 처음이라... 왠지 어색한데 기분은 좋은데 음... 뭐랄까? 으으으으 암튼... 히히."


" 하~~ 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등받이에 몸을 기댄 그녀는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고 나는 그녀를 다시 칭칭 감으며


" 이대로 보내기는 너무 아쉬운데...?"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나를 한번 보고는 방긋 웃었다.

" 우리 갈길이 멀어요. 일어나셔야죠. "

" 히잉~"




그녀의 등쌀에 못 이겨 이내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체크아웃을 하고 나와 포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강구항에 들러 아침을 먹고 오다가 본 고래불 해수욕장으로 다시 가서 차를 세우고 솔밭아래 편의점에서 샀던 돗자리를 펴고는 벌러덩 누웠다. 그녀의 허벅지를 베고.


" 으으으. 많이 추운데?"

그녀는 덜덜 떨어가며 내 귀에 손을 가져다 댔고 그녀의 차가운 손 위에 내 손을 포근히 감싸며 가져다 대자,


" 아참 병원 가야 하는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혼자 또 골똘히 생각에 사로 잡혔다.

" 에이 참 괜찮대도... "


그녀의 걱정 어린 눈빛에 트렁크로 가서 구급상자를 꺼내왔다. 그러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되며

" 이런 것도 가져 다녀?"

" 명색이 구급대원인데? 이래 봬도 나 직업의식은 투철한 소방공무원이야."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가 계속 바라보던 손에 보란 듯 소독액을 뿌리고 고통을 참으며 붕대를 칭칭 감아 그녀가 못 보게 숨겼다.


" 이제 신경 안 쓰이지? 후훗. "

나는 호기롭게 그녀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자랑질을 하였고 그녀는 애처럼 구는 내가 황당한 듯 희한한 표정으로 한참을 바라보다 풋 하고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그렇게 한참을 웃다 더는 밀려드는 한기에 견딜 수 없어서 차로 뛰어들어 히터를 켰다. 따스한 바람에 손을 녹이며 또 웃고. 그리고 네비를 켜고


" 이제 어디로 모실까요? 손님?"

" 음. 오늘 여행지는 부석사입니다. "

" 오늘은 누가 기다리려나?"



제법 멀리 차를 대고 한참을 걸어 올라가자 어느새 나지막한 산 중턱쯤 층층이 소담하게 쌓아 올려진 절이 보였다.

아담하고 단아한 그 기와지붕들. 지붕 한 장 한 장 얼마나 정성으로 쌓아 올려 뒀는지 그 계단 하나하나 올라가며 보이는 예쁜 절경들은 절을 둘러싼 산세와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그림으로 가슴에 다가온다.


화려하지도 않은데 깔끔하고 단정하면서도 눈이 부신 선들. 그 선들이 조화롭게 모여 만든 그 아름다운 산속의 절은 그 겨울 산세의 풍경을 방금이라도 낙엽이 떨어질 것만 같은 가을 정경처럼 돌려놓았다.


" 어찌 오늘은 계시는 구료. 의상"

그녀가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는 이를 바라보자 어깨에 붉은 천을 두른 이가 그녀를 공손히 맞이하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그를 지나 법당으로 향했고 그녀는 마치 허공에 대고 말하는 듯 보였지만 내 눈에는 그들이 뚜렷이 보였다.


그가 옅은 미소를 띠며 그녀에게 말했다.

"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되었지요. 마마."


" 마음을 내려놓으신 거 같으니 저도 편히 마음 놓겠습니다."

" 사람사 인생이 어찌 마음먹은 대로 되겠소. 마마도 삶의 무게로 그만큼 힘이 드셨음을 잘 알고 있지요."


그녀가 빙긋 웃으며

" 예전의 그 열정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시네요. "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 문무께서 이르실 때만 해도 과업이란 게 국운이란 게 운명을 좌우한다고 생각하였소만."

그는 천천히 말을 이어가다 나를 한번 돌아보고는


" 오랜 세월 지나고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옵니다. 마마."


그러자 그녀는 나를 한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려 산 아래를 내려다봤다.

" 세상이 참 많이 바뀌지요? 의상? 변치 않는 것들도 있지만 때로는 세상에 더할 것 없이 바뀌는 것들도 있지요. "


" 아무쪼록 마마도 그 소중한 인연을 잘 지켜 내시길 바랍니다. "

그의 말에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조용히 그의 귀에 대고는


" 외람된 말씀이오나 의상은 불교가 아니라 의상 스스로를 셤겨야겠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오랜 세월로 보이지도 않게 주름져 있던 얼굴의 의상은 눈이 동그랗게 변하며 놀라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는 방긋 웃으며


" 그대의 말과 행동에 해탈의 경지가 보여서요. 하하."

" 세월이 지나도 의상. 당신의 그 눈.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은 하나도 변치 않으셨구려. 그대의 마음은 항상 진심이고 항상 민을 행하니 언제나 그대를 찾는 것은 내 기쁨입니다. 잘 지내시지요. "


그러자 그는 그녀에게 목례를 하며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의 말에 그녀도 화답을 하고는 그렇게 부석사를 내려왔다.



" 진심으로 하늘을 신을 누군가를 섬기는 사람의 마음과 깊이는 달라. 그 어떤 표현도 필요가 없거든. 의상의 발걸음 하나하나 행동하나하나가 그걸 증명하지."


차로 향하는 동안 그녀는 긴 침묵 끝에 내게 말했다.


" 오랜 세월 그가 봐왔던 인간의 삶을 그는 아마 윤회로 풀지도 인간의 굴레로 풀지도 않는 걸 보니 이미 그는 해탈의 경지에 오른 것 같아. 이제는 나보다 그가 더 어른이고 신의 업을 행하는 자인 듯하네. 이만하면 여기는 걱정 안 해도 되겠어. "


그녀의 말에 나는 힐끗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 작은 몸 어디서 저런 생각과 마음이 불꽃처럼 이는 것인가. 그 깊이는 도대체 얼마란 말인가.


그녀가 바라본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녀가 보기에 얼마나 나는 하찮은 존재이며 그저 삶에, 생명에, 사랑에 목숨이나 거는 어리석은 인간으로 보일까.


문득 내 삶의 그늘이 내 삶의 무게가 너무나 가볍게 느껴져 스스로 가 너무 부끄럽게 느껴졌고 그런 나 자신을 감추려 나는 두 볼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러자,


" 좀 걸었더니 추운가 보네? 가다가 대관령에 들러 따스한 차라도 한잔 하자."


" 음. 그래. "

막상은 대답하였지만 내 이런 생각과 마음을 전하기에 그녀의 표정은 너무 진지하고도 심각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마음의 진심과 나를 바라보고 내게 임하는 진심.

그 사이 생각의 깊이 차이는... 도대체 그 공백은 얼마인가.




눈발이 날렸다.

어느새 길게 이어진 차량 사이로 하나하나 날리기 시작한 눈발은 커다란 꽃잎크기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낮까지만 해도 한층 풀렸던 날씨였건만 높은 산세가 이어진 이곳이 태백은 맞나 보다.


부석사를 나와 바로 집 방향으로 갔다면 이리 길바닥에서 고생을 하고 있지는 않았겠지만 그녀와 함께 어디를 가도 행복한 마음에 나는 이런 눈길에 오도 가도 못하는 이 순간도 더없이 소중하게만 느껴졌다. 쏟아질 것만 같던 눈발이 잦아들자 주변은 더 하얗게 바뀌고 겨울나무는 하얀 눈꽃이 핀 듯 아름답게 깊은 산속을 환하게 만들어 놓았다.


좁은 산길에 늘어져 오도 가도 못하고 그렇게 대관령으로 오르던 우리의 차량도 통제가 되어 서 있자,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가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라디오를 켰다.

" 현재 대관령 방향 도로구간에 눈으로 인한 차량 정체로 일부구간이 통제되고 있는 상태로... 근처를 우회하시기 바랍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은 우리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이미 대관령 진입로 근처까지 다 와서 통제가 된 마당이라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대관령까지 오르거나 아니면 회차로를 찾아야 하건만 그곳은 이미 제설차량과 견인차량으로 자리가 없었고 그저 느리게 움직이고 서는 차들의 행렬에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 으 추워. 큰일이네. 여기서 밤이 되면 안 되는데."


그녀의 말에 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우리는 밤이 있었다.

이곳에서 밤을 보내면 안 되는 이유.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하는 이유.


또다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그녀고 이곳은 둘러보면 아름다운 산속의 그저 차량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로 구간이지만 그녀의 입장에서 이곳은 전혀 다른 의미일터.


갑자기 내게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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