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에서 다시 찾은 가치
사랑 쉽고도 어려운.
이해하지 못하면 사랑하기 어렵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왜? 대체? 뭔데? 그래서? 라는 의문형에서 이제는 그럴수도 있겠다는 마음으로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그 사람이기에 이 정도로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마음도 생겨났다.
사랑이라는 마음은 쉬운듯 거창하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결국 나 스스로도 미워하게 만들게 되는 것같다. 특히 그 대상이 가족이 된다면 스스로 괴리감을 느끼고 힘들어진다.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할 수 없는 관계가 된다면 굉장히 힘든일이 되지 안을까.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목숨만큼 사랑한다고 적었던 엄마의 편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목숨만큼 사랑하는데 표현을 이정도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그런데 엄마를 이해하려 하다보니 엄마의 성장배경을 바라보게 되었다. 엄마가 자랄 당시에는 표현이 다들 서툰 시대였고, 그 안에서 마음이 여린 엄마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더욱 표현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것 같다.
어릴적 늘 엄마와의 대화를 그리워했던 나에게 엄마는 늘 바쁜 엄마였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까지도 엄마의 대화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요즘이 참 감사한 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엄마를 닮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과는 다르게 나도 바쁘게 살아왔던 엄마의 삶의 길을 엇비슷하게 걸어가고 있다.
물론, 엄마의 성실했던 과거에 견줄만큼은 어렵지만. 그래도 꿈을 마음속에서 꺼내어 현실에 하나씩 실현해나가고 있다. 하나씩 무언가 성과를 엄마에게 공유할때마다 엄마는 그래도 항상 겸손하라는 말을 하지만 입가에 미소는 감추지 않는다.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어릴적 나를 키울때는 어떠했는지 등의 추억과 경험을 나눌때에는 신기하리만큼 마음 속에서 치유가 생겨난다.
장녀이고, 늘 아팠던 남동생을 대신해서 장남의 역할의 기대로 은연중에 무거웠던 기대감 속에 있었던 상처들이 대화를 나누며 상처가 상처가 아닌것이 되고, 치유가 일어난다. 그리고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좀 더 자유롭게 하고 있다.
나도 몰랐던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사랑은 거창하지 않다.
이해를 시작하게 되면 그 안에서 사랑의 가치를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