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척이던 연애

이별하면 너무 아프지 않을까

by 해센스

track 2.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 - 임재현


매체에 요즘 ADHD 연예인이나 연반인이 자주 등장한다. 금쪽상담소에서 오박사 님이 명시적이거나 암시적으로 "성인 ADHD입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보면 이혼한 경험이 있거나 늦게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다. 결국 행복한 연애, 결혼생활을 하는 분도 있지만 과거 반복된 이혼으로 인한 상처, 연인관계에서의 어려움,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것의 어려움을 주로 토로하곤 한다.


나 역시 N명의 사람을 만났고, N번의 이별을 했다. 20대 때는 카운팅을 하고 그들의 특징들을 기억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한 달 이내로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과 특징을 다 매칭해 기억할 수도 없다. 망각은 ADHD의 문신이기도 하니까.


세 명과는 꽤 오랫동안 관계를 지속했지만 뜯어보면 만남과 이별, 그리고 그 가운데의 질척임을 수없이 반복했다. ADHD가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도 한 데는 고통을 망각한다는 점도 한 몫한다. 순간의 고통은 일반인의 2-3배로 크지만 그 고통도 이내 잊는다. 얼마나 안 맞았든, 많이 싸웠든, 만나는 게 행복하지 않았든 헤어짐의 순간에 느낄 생생한 고통에 비하면 어느 순간 잊히는 과거의 고통은 작게 느껴진다.


질척대는 것이 결국 엄청난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고 나서야 적당한 시기에 이별을 택하게 될 수 있었다. 몸으로 체감했다는 것은 진짜다. 나 역시 마음이 식었고 맞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지만, 이별의 고통이 싫어 상대에게 최선을 다해 매달리다가 그가 뿌리치는 힘에 손과 손가락이 부러졌다. 집착이고 광기였고 상대에 대한 배려나 존중 따윈 없었다. 그의 폭력이 아니라 나의 집착 때문에 오른손이 으스러졌다. 20대 중반의 나는 손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로 출근길에 넘어졌다는 핑계를 대며 출근을 했다. 처음 한 1년이 넘는 긴 연애이자 인생 최악의 연애였다.


집착하는 상대와도 여러 번 다시 만나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첫눈에 반했다는 것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평소 이상형은 아니었지만 처음 지하철 역 앞에 서있는 그를 봤을 때 소년스러움과 순수한 느낌에 압도당했다. 그동안 내 주위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느낌이었다. 만난 첫날 석촌호수를 같이 걷는데 어색함 사이로 느껴지는 편안한 기분에 나는 바로 알았다. 이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것. 머리로 내가 결혼을 위해 만들어놓은 이상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손을 너무 잡고 싶었다. 손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이상 그가 나에게 같은 호감을 느낀다면 어떻게든 관계를 시작하고야 말 것이었다. ADHD를 진단받기 몇 년 전의 일이지만 어찌 보면 예측가능한 내 패턴이었다.


그는 나의 시각적 호기심을 완전히 사로잡았고, 내 눈에 너무 잘생겨 보였던 그도 나를 여성스럽고 육감적이게 보았다. '이런 사람은 나 같은 사람을 순수하게 사랑할 수 없어. '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본능적으로 나를 원한다는 것은 100% 신뢰할 수 있었다. 그는 나와 진지한 관계로 가기 위한 최선의 노력도 했다. 좋은 식당들에 데려가 주고 끼니때마다 늘 잘 챙겨주고 요리도 직접 해주고 집안일도 도와주고, 나의 이상한 성격도 계속해서 받아주었다. 그의 질문과 대답은 늘 센스 있고 따뜻했다.


우리는 격일로 만났고 잘 맞았다. 딱 맞았다. 시간이 될 때마다 낮에도 밤에도 만났다. 야간 근무를 마친 그가 아침에 나의 회사 앞으로와 벚꽃을 보며 함께 걷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와 함께했던 짧은 시간이 가장 행복했고 밝고 빛났던 내 모습으로 기억된다. 그를 사랑하던 내 모습은 순수함 그 결정체였다. 사귀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 나의 퇴근 시간과 그가 야간 교대 근무를 시작하는 짧은 텀에 그의 얼굴이 보고 싶어 여의도에서 노원까지 갔다. 근무복을 입고 있던 그를 잠깐 보고 다시 1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도 그때 느꼈던 것 같다. '이 여자를 잡으면 행복하겠구나. 나에게 진심이구나.' 이 순간이 후에 집착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세상 무해한 미소를 보면 세상의 모든 걱정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 미소를 보기 위해 잠깐이라도 보러 가는 것이, 그를 위해 요리를 해주는 것이 나한텐 전혀 억지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내 만족만을 위한 순수한 행동들이었다. 그의 모든 행동 역시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향했지만 난 마지막 이별의 순간까지 그의 진심을 100% 믿지는 못했다. 나와 결혼하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왜 잘못되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결혼하고 싶은 의도 외에 순수하게 그냥 나를 사랑하고 배려하길 바랐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사랑 앞에서 결혼하고 싶은 마음조차도 어떤 의도가 개입된 순수하지 못한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순간의 고백으로 헤어졌다가도 우리는 만나길 반복했다. 그도 나를 잊지 못했고 나도 그를 잊지 못했다. 서로를 본능적으로 찾았다. 함께 있을 때 그 누구와 보다 편안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육체적인 끌림에 더해 정서적으로 그는 나의 부족한 점을 완전히 채워줬던 것 같다. "내가 이성적으로 만들어놓은 결혼상대자 조건과 맞지 않다. ", "어떤 행동들에서 배려심이 없고 자기중심적이다. "이라는 모호한 나의 주장으로 2주에 한 번씩 헤어졌지만 그의 연락에 못 이기는 척 다시 만나기를 반복했다. 일주일 만에, 한 달 만에, 몇 달 만에, 헤어져있다가 다시 만나는 텀이 길어졌지만 그렇게 1년을 알아갔다. 순수 사귀었던 시간은 짧았더라도 그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줬고 살면서 처음으로 가장 편하고 자연스럽게 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초반에 내가 그에게 이별을 말할 땐 늘 배려했었다. 직접 만나서 명확하고 간결하게 내 의사를 전했다. 한 번 전했는데 한 번만 더 만나달라고 하면 해 줄 수 있는 것이니까 한번 더 만나줬다. 처음 헤어지자고 했을 땐 만나고 한 달도 안 된 때였다. 그는 나에게 안정감을 주고 내 감각적 호기심을 완전히 충족시키며, 마음이 따뜻한 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오래 만나면 헤어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걸 알았고, 이별이 어려워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헤어지고 싶었다.


이별에 쉽게 응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처음에는 좋기도 했다. 차이는 게 훨씬 더 흔한 나였는데, 절대 나를 먼저 놓지 않는구나, 내 옆에 계속 있으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가장 구질구질했던 첫 긴 연애에서 질척이는 쪽은 나였는데, 내가 먼저 어떤 이유를 만들어서 하루이틀 연락을 받지 않아도 어떻게든 연락을 해오는 게 싫지만은 않았다. 난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일에 아주 갑작스럽게 이별을 말하고 잠수를 탔었고, 그는 다른 사람의 전화기를 빌리거나 공중전화로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기준에 따라 불안감을 주는 몇 가지 요소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는 의지는 강했다. 그의 헤어지지 않겠다는 의지 역시 강했다. 부재중 전화가 몇 통, 몇 십 통이 찍혀있었다. 갤럭시 폰을 쓰던 시기라 나는 차단을 해놓고도 이상한 심리인지 굳이 차단된 사람의 부재중 전화 목록을 확인하고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는 집 우편함에 마음을 전하며 붙잡는 편지도 꽂아놓았고, 나도 마음속 남은 미련인지 이따금씩 카톡 차단을 해제했는데, 그때마다 그는 노래 녹음 파일이며 구구절절한 메시지도 보냈다. 한 번만 만나달라며 끈질긴 요구를 해서 회사 근처 역으로, 집 근처 공원으로, 회사에서 몇 정거장 떨어진 역으로 찾아와서 몇 번 보기도 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원한다는데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못 만나주나 해서 거절 끝에 몇 번은 나갔다. 완전히 차단하지 않고 거절의 메시지를 전했던 것도 내 마음 역시 남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집착하는 그가 무섭고 싫었지만 얼굴을 보면 여전히 잘생겨 보인다는 생각에 나도 참 시각적인 것에 약하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다시 만나거나 하진 않았다.


집 근처에서 경찰에 직접 전화해 그를 보내던 기억, 단호하게 경고하며 스토킹 신고하겠다고 말하던 기억, 계속된 부재중 전화로 전화번호를 바꾸던 기억을 끝으로 고통받았다는 기억은 급속히 희미해졌다.


이후 상담을 하며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할 만큼 고통을 받았었는데, 집착을 당하던 고통이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ADHD에게 고통의 감각이 잊힌다는 것은 어찌 보면 축복이다. 그에게도 나름의 방법으로 보복이란 걸 했고, 그 보복에 대해 사과도 했다. 이상하리만큼 그냥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로 미화되었다.


이별의 고통은 보통 시간이 지나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한두 달 정도로 짧게 만났던 사람은 내가 차였을 땐 하루, 이틀, 길면 열흘 정도 정말 많이 아파했었다. 잘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았을 때 신체적으로 정말 가슴이 구멍에 뚫린 느낌을 받았었다. 마지막 그런 느낌은 20대 때이다. 그 이후에는 이별이 그리 갑작스럽지는 않아서 고통의 전체 크기는 더 컸지만 순간적인 고통의 강도가 그렇게 세진 않았다.


이 사람이 나에게 집착하지 않았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별을 고하고, 그저 몇 통의 카톡과 한 두통의 전화만 남겼더라면, 만남을 요구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못 만난다고 했을 때 좋게 받아들였더라면, 결국 돌고 돌아 계속해서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순수하게 사랑했고 그가 나에게 보여준 표정, 언어, 행동도 사랑이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속에 있었을 때는 사랑을 쉽게 믿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사랑에 빠지는 게 두려웠다.


세 번의 긴 연애 중 이 글에 담지 않은 두 번째 연애에서 우리는 서로 사랑했지만 이별을 택했다. 나는 다시는 그런 결말을 원하지 않았다. 사랑하지만 헤어지는 것, 헤어지고 나서도 사랑하는 것은 정말 아프기 때문에.


어쩌면 두 번째 긴 연애대상이자 나의 진짜 첫사랑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후의 모든 연애도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실패라는 단어는 정정하고 싶다. 좋아했던 사람과의 연애가 끝났다고 해서 실패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패했다기보다는 그 이후의 모든 연애에서 난 올인(All-in) 하지 못했다. 연애의 시작에서만 올인했을 뿐 사랑이라는 감정의 끝까지 상대방의 손을 잡고 가지 않았다. 늘 굉장히 빠른 속도로 중도 하차를 택했다. 그의 집착은, 방식은 잘못되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숨긴 채 중도 하차하는 내 마음을 꿰뚫어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여자한테 분명히 사랑을 받았었는데, 갑자기 떠나가니까.


나는 끝까지 사랑한 후에 헤어지는 그 고통을 정말 정말 피하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ADHD는 고통을 빠른 속도로 잊는다고 했지만 나는 이별의 고통을 정말 두려워하는 사람인가 보다. 첫 제대로 된 연애가 오른손이 으스러지는 것으로 끝이 난 순간, 이 사람이다 싶었고 100% 신뢰했던 사람과 결혼이라는 막막함 앞에 끝을 낸 순간, 난 사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하는 게 두려워졌다.


돌이켜보면 20대 끝자락의 나는 사랑이 아니라 다시는 아프게 이별하지 않을 결혼 상대자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이별에 연습이 있었다면 - 해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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