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로봇
track 5. 나의 오랜 연인에게 - 다비치
나에게도 보석 같은 사람이 있다. 끝이 어땠는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는 생각보다 금방 잊혔다. 아니 아무리 ADHD라도 이별의 과정만큼은 생생하지만 고맙고 소중한 마음에 비하면 그런 것들은 너무 작고 초라하다.
내가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얼마 안 되는 내 모든 재산은 그의 앞으로 할 것이다. 우리가 아직 만나고 있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건데, 그는 그렇게 안 할 거라고 말해 싸웠으려나. 만나고 있었다면 나 역시 그렇게 한다고 그에게 말했을 리는 없다. 시도 때도 없는 소소대대한 자존심 싸움은 오랜 연인에게도 늘 필수였으니까.
우리는 멀지 않은 과거에 평생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4년 전에도 결혼을 약속할 수 있는 우리였지만 어쩌면 사랑의 한가운데서 섣부른 이별을 택했고, 2022년에도 이별이 우리 앞에 왔다. 2022년에도 이별을 택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우리에게 너무 큰 시련이 있었다.
지하철역 바닥에 앉아 아이처럼 떼썼다. 만나달라고. 1달만 더 만나달라고. 헤어져야만 하는 나의 모든 행동의 끝에도 그가 나를 절대 버리지 못할 줄 알았는데, 결국 그는 날 떠났다.
하지만 매정했던 건 그가 아니다. 그가 더 이상 떳떳하게 사랑할 수 없게 만든 건 나였으니까.
어느 날 모든 신뢰가 무너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고 하기에는 내 세상에 대한 신뢰의 바탕이 곧 그였다. 그래서 그가 나를 속였다는 걸 알았을 때 세상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그 이전에도 거짓말을 한 적은 있었다. 그래서 싸웠고, 몇 달 후 다시 만났고 다신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건은 대부분의 남자들이 할 수 있는 투자에 대한 작은 거짓말이라 생각하고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건은 평생에 대해 말하고 있던 우리를 생각하면 스케일이 달랐다. 그 당시 난 그렇다고 느꼈다. 모든 건 바라보기 나름이니까.
나는 그에게 "오빠가 나한테 말하는 숫자가 그때그때 조금씩 다르다. "라고 주장했다. 주장하는 순간에도 진짜로 다르다고 확신하진 않았다. 그냥 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의 텐션이 달라지는 모습, 대화를 회피하는 것 같은 모습에 불편함을 느꼈고 다른 것 같아서 다르다고 말했다. "아니, 다르지 않아. 해일리가 잘못 기억하는 거야."라고 완벽한 비언어적 표현을 동반해 날 속일 수 있었다면, "아, 그런가 보네."하고 인정했을 것이다(그는 나를 "너"라고 지칭한 적이 없다. 만약 있다면 손에 꼽게 있을 것이다.)
그는 아주 진지하게 모든 정황에 대해 털어놓았고 결국 그 일은 아름답지 못한 연애의 종료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 역시 ADHD를 진단받기 전이다. 그는 나를 철두철미 하다고 생각했고 나도 내가 똑똑하다고 믿었다. 때로 느끼고 추측하는 걸 그대로 말할 때가 있는데, 때로 그게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통찰력이 좋다고 하기도 한다. 유머가 아닌 이상에야 좋지 않은 습관이라는 걸 안다. 나의 사람에 대한 촉은 대부분 맞았지만, 증거와 정황이 있고 나서 타인에게 말을 해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보지 않겠지.
난 속이기 쉬운 사람이다. 인정하기로 했다.
비자발적으로 하게 된 인생의 경험들로 사람에 대해 의심도 많다. 하지만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본적으로 믿는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믿음이 가는 사람만 사랑한다.
나의 믿음 테스트(Trust Test)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모든 것은 의도했거나 의식한 것이 아닌데 자유로운 영혼을 표방하는 내 인생엔 생각보다 규칙이 많다. 연락, 만남, 대화 내용 등 연애 초반에 수집할 수 있는 몇가지 데이터를 조합해 뇌에서 무의식적이지만 정교하게 이루어지는 자동적인(automatic)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어떤 사람들에 대해 "당신은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라고 그린라이트가 뜬다.
온갖 규칙과 무의식적 테스트들은 뉴로다이버전트인지 모르고 평범해 보이는 연애와 사랑을 했던 나의 마음 방어법이었다고나 할까. 나는 나를 사랑꾼이라고 칭한다. 내가 준 사랑을 과거의 그대들은 절대 잊지 못했다. 직접적으로 그런 이야기들을 들었다. "네가 날 제일 사랑해 준 것 같다. "는 말이 딱히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독특한 나를 견디어 준 그대들에게 무한히 감사하다. 그래서 그 특별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난 나의 연애 대상 중 두어 명에게 로봇(ROBOT)이라는 뉘앙스의 애칭을 붙여 불렀다. "나의 오랜 연인이었던 그대" 역시 나에게 'O봇'이었다. 이름+봇, 또는 나의 전화번호 저장명에 로봇 이모티콘이 추가되었다면 믿음 테스트(Trust Test)를 통과하고 나의 진짜 남친이 된 것이다.
로봇처럼 일과와 행동이 예측되는 사람이 사랑하기 쉽다. 어디까지나 비교적. 난 나만의 BOT들의 표현 없음과 노잼에 질려버렸지만 아무래도 그들이 나와 맞는 것 같다. 사랑을 예쁘게 포장해서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괜찮은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이성적으로 호감을 느끼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성실한 그가 성실하게, 규칙적으로, <연락, 표현, 만남>을 해주면 된다. 미래를 바라본다면 같이 식사와 집안일을 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규칙적 운동을 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성실한 경제활동을 하며, 나머지 시간에 나와 사랑을 하면 된다.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건전한 취미를 영위하는 모습을 난 응원 해주겠지. 나에게 연애 초반에 충분한 우선순위를 보여준다면 나와 함께하지 않는 일이나 취미에 몰두해 있는 그도 사랑할 수 있다. 그가 세상에 남긴 온갖 흔적들, 나와 남긴 추억을 보고 들으며, 혼자 있는 모든 시간에 혼자서도 그를 사랑할 수 있다.
성실한 그는 나의 사랑을 평생 받기만하면 된다. 매일 똑같은 그를 보며 나는 매일 다른 매력을 느낄 것이고,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를 매일 처음 보는 것 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그의 특성에 대해 칭찬할 것이다.
나의 사랑법은 쉽다. It is THAT EASY.
하지만 현실 세계의 사랑에서는 어렵다. 이런 OO봇을 만나는 것도, 그런 그가 날 사랑하는 것도. 그리고 내가 사랑할 사람이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도.
ADHD는 중요한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보를 장기 기억에 넣지 않는다. 그건 뇌가 그때그때 판단한다. 기억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규칙을 만들어 암기한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게 아닌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
난 뭐든 꽂히는 걸 파고들어 학습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가 정보를 잊는 건 새로운 것을 기억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나의 이런 특성을 알았지만,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몇 가지 두드러지게 못하고 하기 싫은 것들이 있었지만 몇 가지 하고 싶은 것에선 꽤 괜찮은 성과가 나오기도 했으니까.
사랑하는데 ADHD는 아무 문제가 없다. 당신과 우리에 대한 모든 중요한 정보를 기억할 것이고, 모든 중요하지 않은 것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뉴로다이버전트는 속이기 쉽지만, 속이지 말 길! 우리는 지각(perceive) 하지 못하지만, 감각(sense)할 수 있다. 당신의 그 거짓말은 관계의 다른 곳을 망가뜨릴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다른 능력을 주었다. 뭔가가 잘못되어 간다면 파충류처럼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 사건 이후, 더 이상 그의 말을 믿지 못하는 나를 그는 견디기 어려워했고, 나 역시 대화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데서 오는 분노라는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Back to 2019
그와 처음 만나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하고 섬세한 사람과 안정적인 연애를 하면서 1년이 지나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뢰라는 감정을 체득하게 되었다. <진심, 배려, 믿음, 사랑, 존중> 세상에 존재한다고는 하나 여자가 남자한테 느낄 수 있다는 걸 한 번도 보고 자란 적 없는 모든 좋은 가치들을 그가 알려줬다. 그와 사귀게 된 후 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모든 연애에서 사랑에 이르는 길에서 내가 먼저 중도 하차함으로써 실패했다. 그를 단 한 번도 절대 제대로 잊지 못했으니까. 어쩌면 잊으려 하지 않았으니까.
마치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라고 말하는 좋은 아버지 밑에서 사랑받고 자란 딸처럼 나에게도 사랑의 원형(prototype)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 원형에 저런 좋은 가치들 뿐 아니라 그와 공유했던 취미와 취향 같은 것들도 들이댔으니, 이후 연애가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2019년에 내가 자기를 절대 못 떠날 줄 알았는데 떠났다고 했다. 20대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모질었다. 사랑이 뭔지 몰랐다. 인생에 추구하는 바가 있다면 사랑이라는 것도 쉽게 끝낼 수 있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우리는 시간을 돌고 돌아 마저 다하지 못했던 사랑의 후반부를 같이 썼고 한 때 아름다웠던 연애는 아름답지 못하게 종료되었다.
연애는 아름답지 못해야 끝이다. 아름다웠다면 절대 끝난 게 아니다.
우리는 아무리 싸우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서로를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서로를 떠나갔고 이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별 앞에서 만났던 기간은 모두 평등해진다. 오래 사귀었다는 것, 그래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낀다는 건 사귀는 동안 만의 특권이다.
그는 나와 우리에 대해 나보다 훨씬 많은 걸 기억했지만, 이제는 나 대신 기억해 줄 수도 내가 해줬던 이야기를 나에게 다시 해줄 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를 다른 의미로 사랑한다. 이렇게 오랜 기간을 알고 난 후에도 서로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그저 고맙다.
나의 오랜 O봇에게 - 해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