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빠 절사식입니다

이별은 취향을 붙이고 떠난다

by 해센스

track 11. 사랑의 시작은 고백에서부터 - 소울크라이


사람은 떠나가고 취향은 남는다. n번의 이별을 하고 n개의 취향이 생겼다. 그대들과 헤어지고 그대들과 듣던 노래를 듣고 그대들과 함께 먹었던 음식을 먹는다. ASD에게 취향은 마치 자석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급찐급빠, 금사빠 금사식이라는 말이 있다. 급찐급빠는 다이어터들이 급하게 찐 살은 급하게 빠진다며, 혹은 급하게 빼야 한다며 절식과 운동을 할 때 마법의 주문처럼 거는 말이다.


#오운완 #급찐급빠 #다이어트 #회개의월요일 #운동스타그램 #다이어터그램


하지만 급찐급빠이던가. 인스타그램 세컨드계정 운동스타그램에 #오운완 매일 포스팅하는 초인이거나 미니위장을 가진 소식러가 아니라면 나 같은 방구석 #식탐주의자 보통위장들에게는 살이 찌면 가속도가 붙어 더 급하게 불어나는 게 일반적이다. 급찐급불이나 급찐계찐(급하게 찐 살이 계속 찐다)이 맞다. 한 번 생긴 많이 먹고 자주 먹는 습관은 뉴턴의 운동법칙 중 제1법칙 관성의 법칙과 제2법칙 가속도의 법칙에 따라 유지되고 강화된다.


ASD(아스퍼거 증후군) 장본인으로 추정되는 아이작 뉴턴의 운동법칙에 따라 그대들에게서 옮겨온 취향 역시 유지되고 강화됐다. 이별 후에도 그대들이 좋아했던 노래, 그대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를 계속 들었다. 나의 그대들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내 글에 취해 살지만 그대들은 그대들의 노래에 취해 살았다. 그리고 그때의 나도 그대들의 노래에 취해 살았다. 유튜브 뮤직 플레이리스트 대신 아이폰 음성메모 남부터미널 1, 2, 3, 4, 5와 마곡동 1, 2, 3, 4 파일(아이폰에서 녹음을 하면 저장되는 파일명)을 즐겨 들었다.


금사빠 금사식이란 사랑에 금방 빠지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금사빠에서 진화된 말로 금방 사랑에 빠지고 금방 사랑이 식는다는 말의 줄임말이다.


“금사빠와 금사식은 세트인 경우가 태반이다. 애초에 금사빠인 것 자체가 타인에 대한 감정이 쉽게 변한다는 뜻이기 때문. 곧 죽을 것 같이 사랑에 빠져 순식간에 연애를 시작하다가도 상대방의 결점 하나에 짜게 식고 정이 뚝 떨어져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 ” - 나무위키


나의 외모 취향은 감각 기관들이 알고 있는 자체 공식에 따라 내 눈과 귀가 판단해 결과를 알려준다. 성격 이상형도 아이폰 메모장 <나만> 폴더에 관리되고 있어 만남의 결정은 매우 빠르고 쉽다. 공식이니 리스트니 따위를 집어치워도 보자마자 안다. 심지어는 보기 전에도 안다. 나의 감각이 말해준다.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한다. 목표는 하나. 이 사람도 나를 사랑하게 하는 것.


ASD에게, 나에게 금사빠한 사랑은 절대 금사식이 될 수 없다. 금사식했다면 금사빠하지 않는 것이다. 랑에 졌다면 랑이 지 않았다.


캐릭터가 달린 볼펜 하나를 살 때에도 난 금사빠해서 산다. 뒤적거리지 않는다. 처음 그 토끼를 봤고 다른 토끼는 그 토끼가 아니다. 내가 처음 본 그 토끼를 사랑하는 것이지 다른 비슷한 토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모임에서 처음 눈이 마주친 당신을 나는 사랑했다. 아이폰 메모장의 리스트를 소환해 사랑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우리는 사랑했다.


ASD는 사랑하는 사람, 아끼는 모든 것들, 취향, 취미에 대해 “금사빠 절사식”이다. 관심에서 잠시 밀려날 순 있지만 좋아했던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사랑했던 사람을 사랑하지 않지 않는다.


동생과 블록놀이를 하던 어린 시절 완벽한 블록집을 완성시킨 나는 매번 똑같은 블록집을 다시 만들어냈다. 내가 완벽한 이상형을 정립한다면 늘 그 이상형에 부합하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싶어 하겠지만 연애와 사랑의 문제에서는 조금 달랐다. 어쩌면 n번의 이별 중 n-m(m=<5)번의 이별에서, 이별 사유는 감각적 편안함을 느끼고 아이폰 메모의 이상형에 부합했을 뿐 금사빠 하지 않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사랑을 하려고 했으나, 그리고 분명 그 사람의 어떤 지점이 좋았으나 푹 빠질 만큼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기억에 남지 않는 그대들 폴더>에 투명한 색깔로 남았다.


나에게 리스트는 사후적인 것이다. 겪어봤더니 이게 불편하더라, 죽을 만큼 힘들더라의 총집합체이다. 인생에서 힘들었던 사람들의 특성, 불편했던 데이트 경험, 그리고 심장이 뚫리는 것 같았던 이별 후에 전그대에게 굳이 찾은 단점을 한 줄씩 추가시킨 그런 것이다. 불편해지지 않기 위해 만든 리스트지만 내가 사랑했던, 금사빠했던 극소수의 그대들(m번에 속하는 그대들)은 원치 않는 조건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헤어졌다. 여전히 사랑하고 여전히 좋았지만 헤어졌다. 미래의 불편함을 현재로 끌고 와 이별을 했거나 이별을 당했다.


수많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중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금사빠에 이르게 된 것은 감각기관의 공식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낸 아이폰 메모, 그 외의 지점들에서 왔다. 가로/세로 비율 공식과 이상형 리스트에 적혀 있지 않은 무엇. 느낌이라든지, 그 사람만의 어떤 색깔과 특이점, 또는 나를 감동하게 했던 어떤 말과 행동.


그런 지점들을 사랑하게 되면 사랑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랑의 온도와 저장된 폴더는 달라지지만 평생 그 지점들을 가슴에 묻고 이따금씩 꺼내어본다. 로봇 해센스를 이따금씩 인간 해센스로 만들어주는 순간들이다. 그들은 <금사빠> 폴더에서 <꺼내보고 싶은 지나간 사랑> 폴더로 옮겨진다. 아름다운 그대들과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싶어 이 책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금사빠 했지만 에피소드로 남길 만큼 많이 알아가지 못했던 인연도 있다. 그때의 나는 겁이 많고 비겁했다. 그냥 마음에만 충실했으면 되는데, 자의든 타의든 사랑의 온도가 충분히 내려갈 때까지 사랑만 했으면 되는데 너무 생각과 걱정이 많았다. 그들은 나보다 용감한 누군가와 웨딩마치를 올리고 백년해로하겠지.


비겁한 사람에게 진짜 사랑은 남지 않는다. 사랑은 누군가의 특이점을 온 마음과 몸으로 끌어안고 걱정과 불안 투성이의 알 수 없는 미래에 뛰어내리는 용기 있는 자만의 것이다. 그런 용기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절대 손을 놓지 말자. 세상의 모든 행운을 제 발로 걷어차는 것이니까.


나는 이별의 이유를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스스로를 설득시키려고 한다. 이별을 당했을 때도 나의 이별의 이유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별하고 나서 그를 억지로 사랑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 마음은 그대로 내버려 둔다. 사랑했던 기억이 나를 살아가게 한다. 나는 사람에게 감정을 많이 느끼지 않는 편이다. 불편하다는 감각은 지배적으로 느끼지만 웬만한 성인들에게 감정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감정을 느낀 소수의 사람들은 너무나 소중하다. 마음속 각자의 방에서 평생 함께 하고 싶다. 방의 크기와 색깔은 제각각일지라도 어느 방 하나 특별하지 않은 방은 없다. 그들은 나의 로봇 자아에 사람의 숨을 불어넣어 줬다. 그들은 나에게 취향을 선물해 줬고 사람에 대한 취향 자체가 되기도 했다.


이성에 대한 취향이라는 건 어찌 보면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자주 보게 된 사람들의 익숙한 특징에 연인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고 아주 자주 보게 된 사람들의 특징을 평균값 낸 것에 불과하다. 취향은 만나는 사람들에 따라 조금씩 바뀌어 갔다. 그 사람의 특징이 나의 이상형이 되었다.


오랫동안 나를 알았던 친구들은 말한다. “원래 저런 스타일이 네가 좋아하던 취향 아니었어?” 나는 말한다.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스타일도 겪어보니 좋더라고. 이런 스타일의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줘서 이런 스타일만 만나다 보니까 이런 스타일로 이상형이 바뀌었어. ”


익숙하지 않은 스타일을 만나는 것은 나에겐 굉장히 장벽이 높은 일이다. 감각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다. 새로운 얼굴, 새로운 목소리, 새로운 말투, 새로운 촉감, 새로운 습관 모든 것. 그렇다고 사랑에 빠지지 않았지만 익숙함에 가까운 사람을 만나 <기억에 남지 않는 그대들> 폴더로 이동시키는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아졌다.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면 연애를 시작하지 말 것. 사랑에 빠지는 기적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믿음의 도약을 해 볼 것.


아이폰 메모의 이상형 리스트를 조금 줄여봐야겠다.


사랑의 시작은 취향에서부터 - 해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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