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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by 안규민 Feb 10. 2025


차茶와 선禪이 만나는 자리를

화경청적和敬淸寂이라고 한다.


센노 리큐(千利休)가 정립한 다도(茶の湯)의 가르침




부산 왜관요釜山 倭館窯는 일본의 다도 문화가 황금기를 구가하던 17세기에 대마도의 번주가 직접 동래부사에게 허락을 얻어 설립된 조선의 가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주문다완御本茶碗은 재료적 차원을 넘어 다도의 이상을 완벽하게 체현한 미감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조선은 일본의 도자기와 다실 그리고 정원 등의 견본이 되는 국가였으며 일본은 그 뿌리에서 피워낸 꽃을 귀하게 여기며 가꾸었다.


반면 다도 문화의 성장 속에서 가장 환하게 타올랐던 부산 왜관요의 흔적은 역사의 이변 속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부산항의 시간 속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 오늘날 부산 어디에도 그 흔적은 뚜렷이 남아 있지 않으며, 표지석 하나로만 간신히 이름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역사는 다시 대척점을 기울이고 있다. 20세기 후반 대승불교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려는 사상적 흐름으로 등장한 일본 비판불교는 대승불교의 여래장如來藏 사상을 힌두교의 아트만Atman으로 해석하여 불교 전통의 변질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그간 일본의 선승들은 매우 독창적인 방법으로 여래장의 체득을 이끌어왔으며, 그 선봉에 리큐의 다실이 세워져 있음은 물론이다. 리큐의 다실은 모든 존재에게 이름을 떠난 영원한 회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과 인과의 제약을 따르지 않으므로 대승의 이증理證을 지지하고 비판불교의 부실한 경증經證을 거스른다.


일본은 우리가 잃어버린 보물을 쥐고 문화의 위상을 드높였으나 이제는 그것을 자신들의 손끝에 놓고서 위태로운 균형을 신앙으로 삼고 있다. 조선에서 캐낸 리큐의 보물을 계승하여 세워졌던 부산 왜관요의 일그러진 다완은 이제 다시 본향을 향하려 한다. 불규칙한 유약의 흐름과 미세한 균열, 우연의 산물이면서도 세심한 손길이 없이는 나타날 수 없는 필연의 흔적, 그 불완전함 속의 조화로움과 투박함 속의 섬세함으로 빚어낸 왜관요의 다완은 한때 우리의 손으로 품었던 불빛이며 이제는 재가 된 이름이지만, 우리가 갖추고 있던 불성佛性의 비유이기도 하다.


2025년 2월 10일

안규민 합장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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