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다도는 끝난다.
센노 리큐(千利休)
다이안 待庵
교토 오야마자키초大山崎町에 위치한 불교 사찰인 묘키안妙喜庵에는 초가를 지어 만든 소박한 다실인 다이안待庵이 있다. 다이안은 1951년에 지정된 일본의 국보이자 현대 미의식의 원형으로 알려진다. 불필요한 요소를 최대한 축소하여 지어졌기 때문에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외관을 하고 있지만, 그 모자람의 이면에는 비정형의 미의식을 통한 독특한 공간적 경험과 정신적 통찰을 제공하는 신비로운 건축물이다.
로지 露地
다이안을 찾은 손님은 다실 앞에 가꾸어진 작은 정원인 로지露地를 지나야 한다. 로지는 속세와 다실을 구분 짓는 완충지대로 손님은 이곳에서 주인이 손수 길러온 맑은 물로 손을 씻으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 과정은 불교사찰에서 진계와 속계를 나누는 첫 번째 문인 일주문一柱門의 뜻을 잇는다. 불자들은 일주문 앞에서 합장 반배하며 속세의 번잡한 마음을 씻어내는데, 로지에서 손을 씻기 위해 허리를 숙이고 두 손을 모으는 모습이 산문山門 앞에서 예를 갖추는 모습과 닮아있다.
니지리구치 じり口
다실의 입구인 니지리구치じり口는 극단적으로 낮고 좁게 만들어져있어 이를 통과하려면 허리를 구부리고 두 손을 모은 뒤 무릎걸음으로 기어서 가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칼을 차고 통과하기도 어려워 입구의 상부에 설치된 카타나카케刀掛け에 칼을 걸어 놓지 않으면 출입이 제한된다. 니지리구치는 권위나 신분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태도의 변화를 요구한다. 기존의 이력과 위계질서가 통용되지 않는 사상적 공간 형식에 방문자를 직접 참여하게끔 설계된 것이다.
도코노마 床の間
무장을 해제하고 니지리구치를 지나면 도코노마床の間가 시선을 사로잡으며 거리감을 재형성한다. 도코노마는 다실의 바닥보다 한층 위에 깊은 벽면을 낸 뒤 부처님의 가르침이 쓰인 묵적을 걸어 두는 공간이다. 좁은 입구를 기어서 지나며 다실에 처음 몸을 들인 손님은 불자들이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의 불상 앞에 절을 하듯이 부처님의 가르침 앞에 절을 하는 모습이 된다.
로 爐
다실 내부로 완전히 몸을 들이고 고개를 돌리면 좁은 니지리구치와 대비를 이루도록 경사를 높인 천장과 비대칭적으로 설계된 각기 다른 크기의 구조물이 역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 다구와 장식의 색과 모양 등은 서로 전혀 중복되지 않는 엄격한 대비를 보이며 연기緣起적인 관계항을 펼친다. 내부 면적은 겨우 다다미 두 장에 맞추어져 있어 상대의 숨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좁은데, 다다미 귀퉁이에 설치된 로爐에서 전해지는 숯불의 열기와 물이 끓는 소리가 좁은 다실을 가득 채우며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리큐 利休
센노 리큐千利休는 차를 도의 경지로 끌어올려 차와 선이 다르지 않다는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을 다실을 통해 드러낸 다이안의 설계자다. 리큐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다인들에게도 선적 미의식을 정립한 다도의 완성자로 추앙받고 있다. 리큐 이후로도 일본의 다도를 대표하는 유파로 우라센가裏千家와 오모테센가表千家가 있는데 이 두 유파 모두 리큐의 후손들로 형성되어 내려온 집단이다.
다두 茶頭
리큐는 나라를 이끄는 정치가들과 사상가들의 정신 수양을 지도하는 스승이기도 했다. 일본 전국시대의 영웅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물론 그의 뒤를 이어 일본을 통일시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조차도 리큐를 가리켜 스승 또는 아버지라 높여 부르며 그에게 차 한잔을 대접받고자 기꺼이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었다. 또 가신들에게는 토지 대신 다구를 하사품으로 내리기도 했으며, 명품 다구를 이용하거나 다회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막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다두茶頭로서의 리큐는 통치자의 권력보다 우위를 점하던 예법이자 시대정신의 원천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천 源泉
리큐는 중국의 화려한 다기들을 버리고 조선의 소박한 미를 아끼고 쓰다듬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다이안은 조선의 사찰에 있는 독참방과 하인이 머무는 민가를 원형으로 삼아 지은 것이다. 조선 민가의 지면에 설치된 돌 발판의 한 계단 위에 있는 작은 입구는 니지리구치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키리츠마즈쿠리맛배지붕切妻造에 얇은 나무판을 겹쳐서 만든 코케라부키柿葺로 마감한 모습도 조선 민가의 지붕과 같다. 기둥에는 일본의 흔한 건축자재인 삼나무와 노송나무 대신 소나무가 사용되었다. 벽에 회칠을 하지 않고 토벽을 그대로 드러낸 것도 조선의 민가에서 흔하게 사용된 방식이다.
와비 侘び
조선 민가의 작은 입구는 최소한의 땔감으로 최대한의 난방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것은 ‘청빈 속의 검소한 만족’이라는 의미에서 리큐가 추구한 이도다완井戶茶碗의 가치와도 일치한다. 그가 귀하게 여겼던 일본 최고의 국보인 이도다완은 조선에서 가장 값싼 잡기로 여겨지는 흔한 밥그릇일 뿐이지만 리큐는 조선의 바깥에서 조선에게 외면받은 아름다움의 가치를 소생시고자 했다. 그는 조선을 향한 마음을 찻잔에 고이 담아 일본 다도의 근본이념인 와비차侘び茶를 완성 시켰다. 와비차의 형성 과정에는 조선의 삶을 들여다보고 사랑했던 리큐의 전위적인 시선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다완 茶碗
리큐의 다완은 완벽한 원형이 아닌 일그러진 모습을 하고 있다. 굽 부분에는 살짝 깨진 듯한 흠집이 있고, 유약은 제멋대로 흘러내려 두꺼운 곳과 얇은 곳이 다르게 빛나며, 얇은 부분에 형성된 실금에는 찻물의 색이 스며든 흔적이 보인다. 표면에 산발적으로 흩어진 갈색의 작은 점들은 가마 속 불길의 방향과 산소의 농도 차이에 의해 흙에 포함된 철분이 녹으며 형성된 우연의 흔적이다. 다실에서 존재의 본질을 무너뜨리는 방식이 여기에 있다.
전위 前衛
와비는 쓸쓸하고 초라한 모습을 의미하기에 청정한 본각本覺의 마음에 닿는다. 좁은 방에서는 물을 따르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상대방의 미세한 호흡도 가까이 느낄 수 있다. 더 비우고 줄일수록 더 잘 드러난다. 그러나 아무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이처럼 부족함 속에서 만족하는 마음을 발견하고 심화하는 것이 다도의 자세다. 와비란 어딘가 부러지거나 모자란 것들의 꾸밈없는 평범성을 통해 전통적 가치에 대한 믿음을 깨트리는 선의 정신을 기조로 하기 때문이다. 다기의 이가 나가거나 삐뚤어진 모양을 귀하게 여기는 것도 학문과 질서로 세워진 인위의 세계에서 무위의 틈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다도 茶道
본디 전통적 가치의 필요와 목적에서 벗어난 것은 초라해지기 마련이다. 초라한 것은 인위적으로 꾸며낸 것이 아니며, 꾸밈이 없는 것은 진실과 닿는다. 이것이 다도가 전위의 시선을 내포하는 까닭이다. 와비는 결코 청빈과 결핍 자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다. 선의 정신은 욕망과 필요와 목적에 감응하여 꾸며진 인위적인 완벽함에 반하여 ‘외면당하고 버려진 무용한 것’을 발견하고 진실한 세계와의 소박한 접촉을 회복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다도의 도道는 작위적인 유용함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무용한 진실을 느끼는 것이다.
리큐는 ‘가라고진唐御陳 비판’에 대한 보복으로 1591년 2월 2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처형당한다. 가라고진이란 일본에서 임진왜란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다. 리큐는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려는 광기를 두고볼 수 없었다. 리큐에게 조선 침략의 의미는 자신이 정립한 다도의 진원지를 훼손하는 일이며 선의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리큐는 자신의 죽음과 함께 다도가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다도를 되살리는 법 또한 다실의 구조 속에 숨겨두었다. 리큐의 다실에서는 하나의 씨앗이 어떤 꽃을 얼마나 피우게 될지 알 수 없다. 꽃을 피워낸 씨앗이 그 꽃을 자신의 원인으로 삼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의 원인이 되는 선형적인 인과의 세계관에서 보면 참으로 이상한 세계다. 그러나 이 이상하고도 치밀한 구조 덕분에 다도 또한 ‘지금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꽃이 피기만을 애태우는 사람에게 산마을 눈 사이의 풀을 보여준다면,
『남방록(南方錄)』 난보 소케이(南方宗啓)가 리큐의 가르침을 기록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