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간혹 다른 언어로 말하고는 한다

부부 사이에 다른 사랑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에 관해

by 랑끗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불편하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어느 곳에 가서,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의 불편함을 처절하게 느껴본 경험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언어로 단어 하나만 알면 되는 일인데, 언어를 모르면 팬터마임에 가까운 온갖 몸짓, 발짓을 해야 상대방과 겨우 소통할 수 있다.


우리는 둘 다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라고 물으신다면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


내가 어렸을 적 읽었던 책 중, 게리 채프먼이 쓴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라는 책이 있다.

부부 상담사인 저자가 쓴 (되게 얇은) 책인데, 전문가들 사이에서 어떤 평을 받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꽤 유익하다고 느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다른 언어가 존재한다는 게 책의 주요 내용이다.


사랑의 언어는 총 다섯 가지인데, 그것은 바로 신체 접촉, 인정의 말, 함께 보내는 시간, 선물하기, 헌신의 행동이라고 한다. 결혼하기 전 이 책을 꽤 인상 깊게 읽었던 나는,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재미로 우리가 가진 사랑의 언어를 파악할 수 있는 테스트를 했다.


테스트는 단 한 가지의 결과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무엇이 내게 가장 중요한지 순위를 매겨서 결과를 보여주었다. 나는 인정의 말이 가장 최우선 순위로 나왔고, 남편은 헌신의 행동이 가장 최우선 순위로 나왔다. 그리고 다른 것들은 무작위로 섞어 놓은 듯, 우리의 사랑의 언어는 꽤 다른 편이었다.


알콩달콩 연애하던 시절, 우리의 사랑의 언어가 달라질 일이 절대 없으리라 확신하던 시절에는 멋모르고 했는데 이것이 시간이 흐르고 나서, 결혼 생활 중에 서로를 이해하는데 꽤 큰 도움을 주었다.


내 사랑의 언어가 인정의 말인 만큼 나는 칭찬을 좋아하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남편에게 늘 말로 표현하기를 즐겨한다.

그게 나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랑 표현 방법이다.


“자기는 ~~~ 래서 최고야.”

“사랑해.”

“오늘도 멋있네.”

글로 모두 적어 놓으니 손발이 한없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지만, 내가 남편에게 자주 하는 표현들이다.


나는 남편이 나를 위해 해준 사소한 부분도 모두 발견하고 칭찬하기를 즐긴다.

단둘이 있을 때 남편의 장점이 보이면, 참지 않고 바로바로 표현한다.

예전에 있었던 일에 관해 감사함을 말로 표현한다.

그래서 기념일마다 긴 편지를 쓰는 것도 좋아한다.

예쁜 편지지에 내 예쁜 감정을 담아 오롯이 전달할 수 있으니까.


그에 반해 남편은 그의 사랑의 언어에 따라, 헌신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묵묵히 내가 불편하지 않고, 고생하지 않도록 먼저 생각해서 행동한다.

사소하게는 내 옷이 걸려있는 곳에 자신의 옷을 걸어야 하면, 내가 옷을 꺼내기 편하도록 위치를 바꿔두는 것, 크게는 내가 다치지 않도록, 무거운 것을 절대 못 들게 하는 것.

그리고 우리 사이에 싸움의 불씨가 된 어떤 행동이 있으면 그것을 안 하기 위해 죽도록 노력한다.

누군가의 행동을 바꾸는 게 어렵다고 하는데, 남편은 싸움의 원인이 된 자신의 행동이 있으면 잘 바꿔주고, 적어도 그것을 안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서로를 향한 무한한 콩깍지가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하는 결혼 초기에는 서로를 이해하는 게 힘들었다.


나는 남편이 말로 세세한 칭찬을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는 내가 부탁을 해야 무뚝뚝한 한두 마디 해줄 뿐이었다. 반대로 남편은 나를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나를 사랑하면 이 행동은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데, 왜 이 사람은 내가 말하기 전까지 안 해줄까? 나를 덜 사랑하는 것일까,라고 고민을 하면서도 직접적으로 말을 꺼내기는 힘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엄청나게 사랑을 쏟아붓지만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불만이 쌓여갔지만, 우리는 서로의 표현을 알아차리는 데 미숙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눈덩이가 불어나듯이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는 큰 서운함이 되고, 그렇게 쌓인 서운함은 소소하지만 꽤 지긋지긋한 싸움으로 이어지더라.


어떻게 보면 서로가 서로를 향해 내 방식으로 사랑을 해달라고 싸움을 걸면서 구걸하고 있는 꼴이었다. 우리 자신조차도 싸움의 원인은 몰랐는데, 섭섭함은 표현해야 하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제대로 된 소통도 못하고 엄한 말로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있었다.


상대방은 뭘 잘못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아 서로 답답해하는 건 덤이었다. 그때 당시의 우리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던 것은 '나를 사랑한다면 이렇게 해야 하는데,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하지 않는 거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가?'라는 생각이었다.


결혼 초에 사소한 것으로 그렇게 피 터지게 싸워대다가 문득 연애시절 했던 이 테스트 결과가 떠올랐다.

그리고 책에 등장했던, 사랑의 언어가 맞지 않아 이혼위기까지 간 중년 부부의 이야기를 읽으며, 성숙한 어른 둘이서 긴 시간 동안 서로의 사랑 표현 방법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결혼생활을 해온 거라니,라고 생각하돈 20대 초반의 나도. 그리고 그때 그들의 이야기에 기가 차서 코웃음을 치던 내 모습도 덩달아.


그때는 그게 뭐가 어려운데? 라며, 멋모르는 소리를 해댔지.


그게 바로 지금의 우리 꼴이 아니던가.

나는 곧바로 남편에게 연애 때 했던 이 테스트가 기억나냐며 물었다.

우리는 기억을 더듬어서 서로의 결과를 기억해냈다.


이 계기를 통해, 우리는 서로 사랑함에 최선을 다했지만, 서로의 사랑의 언어에는 무관심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내가 내 방식대로 사랑을 한다고 해서, 이 사람에게 그게 최고의 사랑 표현이 되는 것이 아녔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했다. 그리고 우리는 대화를 통해, 서로가 얼마나 사랑 표현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됐다. 그저 상대의 언어에 익숙지 않은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내게 익숙하지 않고 부자연스러울지라도 때로는 상대방이 원하는 방법으로 사랑 표현 방식을 의식적으로 바꿔서 하는 것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대화를 통해 깨달았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인데, 어느 미국인이 전화를 걸어 아무리 아이 러브 유를 외친다고 해봤자, 나는 그 언어가 담고 있는 정확한 의미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을 무서운 사람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익히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의식적으로 서로의 언어가 담긴 사랑 표현을 알아차리기 위해 애썼고, 때로는 내게 익숙하지 않지만 의식적으로라도 상대방의 사랑의 언어로 말하기 위해 애썼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는 상대방의 사랑의 언어가 완전히 익숙하지는 않고, 그것이 내 입맛에 완전히 맞는 게 아니지만 우리는 서로의 사랑의 언어를 익히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리고 상대방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 나를 사랑하지만 다른 언어를 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상대방을 위해 해 주기 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도 사랑 표현임을 알게 됐다. 서로의 사랑 표현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임을 기억하고 오늘도 아직은 서툰 발음으로 서로의 언어를 사용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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