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프리랜서가 되었습니다_4편
지금은 '자기 PR 시대'이다. 회사냐 개인이냐의 구별을 떠나 누구나 자기에 대해 브랜딩을 하는 것이 중요한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나도 프리랜서를 시작한 지 1달 만에 아주 당연한 순서라는 듯이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계정을 만들었다.
이는 프리랜서를 전업으로 삼아보겠다는 결정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막연히 브랜딩 계정을 운영하는 게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전 글에도 작성한 적이 있지만 나는 첫 커리어를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시작했다. 몇 달 만에 교육 매니저로 직무가 변경되긴 했지만. 그래서 늘 이런 콘텐츠 업무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구체적인 계획이 있지는 않았다. 난 이 분야 경력직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만든 템플릿이나 작업 포트폴리오를 전시하는 용도로만 사용했다. 그래서 팔로워도 바닥이었다. 이쁜 결과물을 나열하기만 하는 재미없는 계정을 누가 봐주겠는가.
분명 시작할 때만 해도 팔로워 욕심이 있던 건 아니었는데, 너무 관심이 없으니 다른 시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거의 본업만큼 인스타그램을 신경 쓰기 시작한 건.
도대체 어떤 콘텐츠를 올려야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다른 PPT 관련 계정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대부분 PPT에 대한 꿀팁을 알려주고 있었다. 사실상 그 외 다른 유형의 콘텐츠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다면 나도 PPT 꿀팁을 만들어야 했다.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주제라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다만, 다른 계정에서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그런 일반적인 꿀팁보다는 내 브랜드의 슬로건이기도 한 '트렌디한 디자인을 위한 꿀팁'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사실 꿀팁은 한정적이다. 이미 PPT로 유명한 다른 사람들의 계정을 봐도 그 점을 느낄 수 있었다. 꿀팁만 대방출하다가는 금방 소재가 고갈되고 지속하기도 어려울 것이 뻔했다. 그래서 두 번째 콘텐츠를 고안하기 시작했다. 내가 부담을 느끼지 않고 계속 생산할 수 있으면서 사람들도 좋아할 만한 콘텐츠가 무엇일까.
PPT라는 주제와 별개로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서 개개인의 특별한 에피소드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나도 프리랜서로 성장하는 내 이야기를 카드뉴스 형식으로 전개해 보면 어떨까. 스토리가 가미되면 단순히 PPT 꿀팁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닌, 나 자체를 브랜딩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콘텐츠로는 원래 하던 포트폴리오 업로드를 이어가기로 했다. 그럼 PPT 꿀팁으로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고, 내 성장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친밀감을 주면서, 동시에 포트폴리오로 나의 전문성을 알릴 수 있지 않을까.
기획은 쉬운 편이었다. 기획한 바를 어떻게 멋들어지게 만들 것인지 디자인하는 과정은 지옥이었다. 명색이 PPT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콘텐츠 디자인이라고 해도 형편없이 만들 수 없었다. 이 모든 하나하나가 내 인상을 결정짓는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한 가지 간과한 건, PPT 디자인과 콘텐츠 디자인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다 같은 디자인이 아니었다. 대체 글씨를 몇 포인트로 해야 모바일에서 잘 보일 수 있는지 한 포인트씩 키우고 줄여가면서 직접 실험했다. 눈이 빠질 지경이었다. 굵기를 Semi Bold로 했다가 Bold로 했다가 남이 보면 의미 없는 행동일 수 있지만, 내 콘텐츠를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세밀한 모든 것들에 신경을 썼다.
오후에 본업을 마치고 나면 저녁부터 자기 전까지 인스타그램 디자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했다. 뇌가 이렇게까지 가동이 될 수 있구나 싶을 만큼 씻을 때도, 게임을 할 때도, 옷을 입으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그렇게 몇 차례 실패를 거친 후 결국 만족할 만한 디자인을 완성하게 된다.
그리고 요즘엔 간간히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카드뉴스 디자인은 안 하시나요? 피드가 너무 이뻐요.'
콘텐츠 기획과 디자인을 한차례 완성했지만, 이것이 영원한 건 아니다. 트렌드와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완해야 한다. 이 과정이 더 힘든 것 같기는 하다. 최근에는 릴스를 내 콘텐츠에 도입하려는 시도를 했다가 장렬히 실패했다.
인스타그램 '떡상'을 하기 위해서는 릴스가 필수라고 모두가 외치고 있었고, 내 주변 사람들도 릴스 알고리즘으로 팔로워가 몇천씩 상승했다. 이쯤 되니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것을 하자고 마음을 다스리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평소 영상에는 관심도 없는 내가 촬영도 하고 편집도 배워가며 오만가지를 해봤다.
시도를 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결론적으로 나와 내 브랜드에는 맞지 않는 일이었다. 회사 다닐 때부터 그랬는데 나는 자극적인 마케팅을 좋아하지 않았다. 진정성 있는 콘텐츠가 느리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릴스를 만들면서 자꾸 자극적인 카피를 찾기 시작했다. '~할 수 있는 ~가지 방법'과 같은 콘텐츠를 내가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거의 6개월을 릴스 때문에 시달리다가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오기로 했다. 그동안 릴스 같은 게 없었어도 3천 명이 넘는 팔로워들이 모였고, 꾸준히 날 좋아해 주는 분들이 있었다. 그다지 도움 되지 않는 정보들을 잘 편집해서 좋아보이는 척 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최근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보면 건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극적인 콘텐츠를 통해 숫자로 보이는 성과는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르나 진정한 브랜딩은 어렵지 않을까. 마케팅 혹은 브랜딩 전문가가 아닌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여전히 진정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