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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한량 Jan 04. 2019

내 노인 안의 소년

당신의 정원* 다섯 번째 인터뷰. 사막에서 지표를 찾는 소년의 이야기 



내 노인 안의 소년

(인터뷰 당시 나이 24세, 남자)




요즘 하는 가장 큰 고민은 무엇입니까?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이다.


최근 남미의 페루(Peru)로 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흔치 않은 여행지이기에 묻고 싶네요. 그곳으로 떠난 이유가 혹시 지금 가진 고민과도 연관이 있었나요?


그렇다. 나는 원래 여행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특히 페루로의 여행은 내 안에서 밀려오는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떠난 여행이었다.


잠깐 여행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언제부터 여행을 좋아했고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요.


여수의 한 섬을 여행했을 때의 일이었다. 배 시간을 놓쳐 의도치 않게 홀로 비렁길을 거닐게 되었는데 그 맨발로 걸었던 수평선 너른 땅의 풍경과 발끝으로 전해오는 촉감에 가슴이 뛰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사람마다 여행에 대해 각자 가치를 두는 기준이 다른 것 같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여행의 가치란 무엇인가요?


나는 여행의 의외성에 매료되었다. 정해진 틀에서 살짝 빗겨나갔을 때 우연의 이름으로 찾아오는 것들이 무엇보다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떠나는 느낌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돌아오는 느낌도 중요하죠.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요?


나는 곧장 학교로 돌아왔고, 여전히 복잡한 생각들로 스스로를 괴롭히며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으로 고통받는 젊음이다. 하지만 그 여행이 나에게 모든 답을 찾도록 허락하진 않았을지라도, 내 삶에 조금씩 긍정적인 영향을 불어넣어준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품고 있는 당신의 20대는 전반적으로 어떤 시간이라고 생각합니까?


20대 초반은, 나를 찾는 데에 온 시간과 생각을 쏟아부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부끄럽지도 또 후회되지도 않는다. 누구에게나 과정이라는 건 필요한 법이니까. 아마 시간이 지나더라도 또다시 같은 문제를 고민할 것 같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다고 꿈꿔 본 적 있어요?


독립적으로 자생하는 어른,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리고 타인에게나 나 자신에게 일관성 있는 사람이고 싶다.


사람을 색깔로 표현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색입니까?


회색.

인생이 흑에서 백으로 가는 무채색의 그라데이션 같은 것이라면 나는 그 중간 즈음에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20대의 중간을 살고 있는 오늘 나는, 변화의 중간지점에 서 있다.


내일 죽어 없어진다면, 오늘의 나에게 남기고 싶은 마지막 말은?


네 스스로의 지표를 찾았니. 온전히 자신이 누군지 깨달았니. 

아마 이렇게 자문할 것 같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까, 나는 누구인가, 혹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머리 터지게 고민해왔던 시간이었기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을게요. 가장 좋아하고 늘 곁에 두는 말은 무엇인가요?


‘시계가 아니라 나침반을 보아라’이다. 초침을 세는 사람이 아닌 그 길이 멀더라도 전체적인 방향을 보고 크게 달려가는 사람이 고픈 마음에서 이 말을 가장 좋아한다.





인터뷰를 마친 뒤


미안한 얘기지만 친구는 주변인들에게 내, 외면 모두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하지만 가을날 어느 오후, 카페에 앉아 가만히 이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나는 그가 지금 가지고 있는 ‘옹’(어르신)이라는 별명보다는 오히려 소년의 이름표를 붙여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도 참 많고 진지함을 칭칭 휘감고 있지만, 실은 그 눈 속에 머릿속에 온갖 형형색색의 꿈을 가득 채운 소년 말이다. 자신의 지표를 찾기 위해 누구보다도 멀리 더 오래 돌아가지만, 그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그리고 모든 길은, 아마도 그렇게 맨발로 걸어왔던 소년의 자취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동물 가죽이 걸린 벽, 그 아래로 벽난로가, 또 그 아래로는 케케묵은 카펫이 깔린 아늑한 보헤미안풍의 거실에서 와인 한 잔을 앞에 두고 사람들과 여행의 하루를 정리하던 페루의 한 편안하고 따뜻한 게스트하우스 이야기를 들었고 그 날 나는 잠시 그곳에 다녀온 듯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아름답게 꿈꾸는 여름날의 한바탕 축제 같던 젊음이 지나가고 묵묵하게 쌓인 시간의 무게만큼이나 안정적인 어른이 되었을 때, 이 친구가 길을 찾는 또 다른 유목민들에게 ‘그 날, 페루의 그 게스트하우스 거실’ 같은 사람이 되어주는 모습을 상상했다.


인생의 지표를 찾기 위해 방황하던 20대 중간 즈음에 발견한 사막의 어느 지점, 거기에 네가 또 다른 점이 되어 다른 이들의 지표가 될 수 있기를. 그리고 늘 지금처럼 넓고 깊은 꿈을 꾸는 사람이기를.





마음의 정원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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