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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한량 Jan 09. 2019

사랑으로 빚어진 둥지 안에서

당신의 정원* 일곱 번째 인터뷰. 결국 시간이 해결해준다. 



사랑으로 빚어진 둥지 안에서

(인터뷰 당시 나이 27세, 여자)




요즘 가진 가장 큰 고민은 무엇입니까?


결혼을 언제쯤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아빠의 반대가 심해, 지금의 남자 친구와 아빠를 어떻게 친해지게 만들 수 있을까 또한 고민이다.


아무래도 아버님이 너무 아끼는 마음에 더 그러시는 것 아닐까요? 사랑이 컸던 만큼 보내주는 시간 또한 길어지는 법이니까요. 결혼하면 어떤 가정을 이루고 싶으신가요?


지금 결혼을 약속한 사람과는 물론 자주 싸우긴 해도 편안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사람과 평범하고 보통의, 신혼다운 알콩달콩함을 가진 그런 가정을 이루고 싶다. 한 2, 3년 즈음 뒤엔 아이도 계획 중이다. 그리고 결혼 후에도 가족들과 전처럼 매일같이 만나며 지낸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십 대 젊은 나날 중, 특별히 좋았던 기억들에 대해 듣고 싶어요.


음, 나는 뭔가 스펙터클하고 굵직한 기억들보다는 일상의 소소한 기억들로 이루어진 사람 같다. 그러다 보니 평소 좋아하는 건, 일상에서 우리가 자주 느낄 수 있는 기쁨,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는 것이다. 맛집들을 발견하고 정보를 나누고 싶어 블로그도 활발히 운영했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연어 초밥! 그리고 요즘은 인형 뽑기에서 인형을 뽑는 것도 좋아하고, 정말 추운 날 밖에서 김을 모락모락 뿜으며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것도 좋다. 마지막으로, 가장 하나님을 진실되게 믿기 시작했을 때 행복했다. 모태신앙이라 뱃속에서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성경책으로 전해지는 말씀을 깊이 투영하며 스스로 진심을 다해 깨달음을 얻었을 때는 이십 대가 아니었나 싶다.


인생 그래프는 바이오리듬처럼 높낮이가 항상 있죠. 젊은 날 내 그래프를 그려본다면 어떤 그림일까요? 


상, 중, 하로 나눴을 때 큰 걱정 없이 긍정적인 나는 대체적으로는 중반 이상이다. 하지만 스물두 살에서 네 살 사이에 만났던 사람으로 인해 많이 아팠고 내 인생 리듬이 바닥까지 고꾸라지는 경험을 했다. 평생 쏟을 눈물을 그때 다 써버린 것 같고 평생 아플 양을 그때 다 아팠던 것 같다. 주변 사람들 맘고생도 참 많이 시켰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감정과 일들로부터 벗어났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나 하루하루 여자로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으며 다시 사랑을 배웠다.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서로 사랑한다는 건 참 가치 있는 일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현재의 그래프는 상, 그 이상을 웃돌며 꾸준히 상승 중이다.


그래프가 다시 위로 튀어 올랐다니 다행이에요. 그렇다면 만약 과거 힘들었던 그때의 어느 하루로 돌아간다면 가장 먼저 바꾸고 싶은 것이 있을까요?


아마도 그 사람과 처음 인연을 맺은 2010년 12월의 그날로 돌아가 시작점 자체를 지우고 싶다. 인연을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도 어렸던 나를 조금은 어른스럽고 의연한 사람으로 바꿔놓고 싶다. 내게 닥칠 모든 일들을 여유롭게 흘려보내 상처 입지 않도록.


서로 사랑한다는 느낌으로 가득한 지금의 예비남편에 대해서도 한 번 들어보고 싶네요.


조금 어렸을 적 나는 철이 없었던 건지 사랑이라는 개념을 잘 몰랐던 건지, 나를 좋아하는 누군가에게는 늘 관심이 없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말도 못 하고 홀로 앓는 짝사랑을 주로 했었다. 그러다가 이 사람을 만나 드디어 서로가 서로를 같은 무게로 사랑한다면 더더욱 행복하다는 걸 배웠다.


가족들과 엄청 돈독한 걸로 알고 있어요. 예전 힘들 때도 또 지금 행복할 때에도 당신을 변함없이 사랑해준 가족들의 이야기도 조금 해주실 수 있나요?


우선, 지금 결혼을 열심히 반대 중인 아빠는 (외박을 제외하고) 딸의 요구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는 딸바보다. 나와 얼굴이 똑 닮은 오빠는 자존심이 세 아쉬운 소리나 힘든 얘기는 잘 하진 않지만 역시 든든하게 동생을 위해 운전기사도 되어주고 짜장면을 비벼주기도 하며 심지어는 귤을 까주기도 한다. 장난도 많이 치긴 하지만 나는 오빠가 자상한 사람이라는 걸 다른 오빠를 둔 친구들과 비교해본 뒤 처음 깨달았다(고마워 오빠!). 마지막으로 나는 엄마에게 가장 의지하고 얘기도 많이 한다. 아빠와는 달리 엄마는 많이 침착하고 모든 일에 조곤조곤 현명하게 대처하는 타입이다. 언제까지나 가장 친한 친구로 남아있어 주시길 바란다.


사람을 색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당신은 무슨 색일까요?


펄 화이트

나는 지금 열심히 살고 있고, 꿈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에 반짝반짝 진주처럼 빛이 나는 밝은 하얀색이다.


오늘 인터뷰를 끝으로 당신이 죽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나 자신에게 남기고 싶은 마지막 말은 무엇입니까?


이제 시작이구나.

기독교에선 죽고 나면 하나님 곁으로 간다고 한다. 천국으로 가는 길을 닦으려 지금 착하고 열심히 그분의 자녀로 신실하게 살아가고 있고, 그래서 죽는 것도 두렵지 않다. 그때부터 다시 새로운 시작이라고 믿는다.





인터뷰를 마친 뒤


사랑을 하다 길을 잃어 한참을 아팠던 친구가 착하고 자상한 남편을 만나 사랑받는 기쁨을 만끽하고, 딸이 결혼할 남자를 데려온다는 소식에 드시던 밥숟가락을 떨어뜨리며 그 길로 식음을 전폐하셨던 아버지가 지금은 서툴고 어색하게나마 사위를 아껴주려 노력하시는 모습을 볼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위로를 우리는 더러 상투적이라고 냉소하지만 실은 그에 비견되는 해결책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고. 시간은 이처럼 내 어리석은 눈이 진짜 사랑을 볼 수 있도록 시력을 교정해주고, 서먹함을 따뜻함으로 데워주며, 아픈 이야기를 추억으로 치환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살아온 날들의 절반을 함께한 이 친구는 서로의 삶을 늘 응원하며 기도해주고, 함께 울어주고 웃어주는 사람이었다. 유치하기 그지없던 시절부터 힘들어하던 시간을 거쳐 어른으로 자라 가는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았기에 친구는 나의 기록이고 나는 곧 친구의 기록인 셈이었다. 그래서였는지 졸업식을 하던 날과 결혼식을 하던 날 마치 장례를 치르는 것처럼 울었다. 한 단계가 끝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수록 관계를 지속하기 힘들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그 날의 눈물 콧물이 우스울 만큼 지금도 만날 때마다 우리는 그 옛날의 유치하고 어설픈 소녀로 돌아간다. 나를 소녀로 살게 하는 친구에게 늘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인생의 기록과도 같은 친구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전할 수 있는 따뜻한 하루가 되길.





마음의 정원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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