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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한량 Dec 04. 2018

마음이 공명하는 호수

당신의 정원* 두 번째 인터뷰. 타인과 공감하는 맑고 따뜻한 호수이야기



마음이 공명하는 호수

(인터뷰 당시 나이 26세, 여자)




요즘 주로 하는 고민이 무엇입니까?


주된 고민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가까운 고민으로는 대학에서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뭘 하며 보낼까에 대한 것이고, 장기적 고민으로는 졸업 후 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갈까 고민하고 있다.


방학 계획 중요하죠! 저는 종강 직전에는 방학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는 데에 온 힘을 쏟느라 늘 기말고사는 뒷전이에요. 아참, 지난여름 방학에는 캄보디아로 봉사 활동을 다녀오셨죠! 이래저래 그보다 더 뜨거운 방학은 없었을 듯한데, 어땠나요?


거창하게 생각하고 떠난 봉사 활동은 아니었다. 다만 그곳에서 나 자신에게 조금 실망했다는 기억만 남았다. 나름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뭐랄까... 매번 내 인격이 시험당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해야 하나. 아프고 약한 아이들을 돌봐주면서 뿌듯함이 가장 컸지만 동시에 내 안의 위선적인 모습들을 마주하며 회의적인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또 어느 밤에는, 몇 주 지나지 않아 떠날 봉사단이 근본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하는 마음에 좌절감이 들기도 했고. 이런 이유들로 봉사활동 기간이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캄보디아 친구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애초 예상했던 성취감과 보람 대신 마음이 여러모로 복잡했던 여름이었던 것 같다.


그런 마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그 여름날의 고뇌가 제게는 너무나 따뜻하게 느껴지는데요. 내 안의 모순을 인정하는 솔직함과 누군가를 도와줄 수 없어 좌절하는 이타심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주고 또 받아왔다고 저는 생각해요. 다음으로는 졸업 후의 일도 고민이라고 하셨나요?


아직 뭘 할지 확실하게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학교생활 내내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아직 길을 못 찾은 느낌이 든다. 정작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지금은 졸업작품에 쫓겨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졸업에 대해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으신가요?


우선 졸업 이후부터는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진짜 어른이 되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하고 두렵기도 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늘 두려운 일이죠. 어떤 어른이 되고 싶다고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있으세요?


내 일을 잘 꾸려가면서 나만의 취미가 있는 균형 잡힌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어른은, 자신의 커리어도 멋지게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스트레스도 줄여주고 일 외에 전문적으로 또 즐겁게 할 수 있는 취미나 특기들을 두루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어른이 된다면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지금 자신을 색채로 표현해본다면 어떤 색이 나올까요?


흰색과 검은색

나는 눈으로 봤을 때 명확하게 식별되는 결과가 있고 객관적으로 딱 떨어지는 것들을 좋아해 왔다. 그래서인지 색도 마찬가지로 분명하게 나뉘는 것이 좋다. 그래서 내 색깔은 흰색과 검은색이다. 흰색과 검은색만큼 불순물 없이 명료한 것들이 또 어디 있을까?


당신이 이 인터뷰를 끝내고 나가는 순간 죽는다고 가정합시다. 지금 이 순간 남기는 말이 생의 마지막 말이 되겠죠. 어떤 말을 남기실 건가요?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인터뷰를 마친 뒤


내가 자랑스럽다는 위로의 메시지와 함께 친구는 울었다. 왜 눈물이 났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스스로를 잠시나마 돌아보고 따뜻한 말을 건네고 보니 만감이 교차하면서 울컥했다고 답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으면서도 자랑스럽다는 그 작은 말 한마디를 오늘날까지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선물해준 적이 없다면서 말이다.


눈물샘이 헤프다는 놀림을 받을 만큼 친구는 평소에도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다가 곧잘 함께 울어주고는 했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의 상황들이다. 봉사 활동 중 만난 캄보디아의 아이들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런데도 환하게 지어주는 그 아이들의 미소와 감사해하는 마음이 예쁘고 미안해서, 실연당한 친구의 아픔에, 진심으로 사랑을 구하는 이들의 마음에, 너무도 지치고 힘들었다는 말에, 보고 싶었다는 고백에, 그리고 행복해하는 미소에.


그때마다 나는 이 친구의 마음속에 아주 맑고 투명한 호수가 하나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른 이를 돌아보고 귀 기울이는 것조차 어려운 요즘 마음으로 함께 울어 준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안의 맑은 호수에 타인의 감정을 가득 담아내어 주는 모습이 어찌 예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앞으로도 쭉 사랑하는 이들에게 가슴속 호숫가를 내어줄 수 있는 예쁜 사람으로 남아있어 주기를. 그리고 그 호수 위에 나도 한 마디 띄워 보낸다.


나도 네가 자랑스럽다. 





마음의 정원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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