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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녁 Sep 18. 2023

#7 맥주 시음평에 담긴 이기적인 속내

나는 SNS 상의 ‘공감’에 민감한 사람이다. 정말 기록을 위해 가볍게 포스팅할 수도 있으나 많은 공감을 이끌어 내려면 잡다한 고민이 이어져 쉬이 피드를 올릴 수 없다. 피드를 올리는 일은 매우 신중한 일이다. 내 피드를 보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표면적인 이유도 있지만, 사실 기저에는 관심받고 칭찬받고, 심지어는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으로 그득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맥주를 마시면서 생긴 안 좋은 습관 중 하나다.


한창 맥주 관련 포스트을 SNS에 업로드 할 때였다. 가난한 대학생이 한 병에 만 원 안팎의 비싼 맥주들을 매일같이 마음대로 먹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이태원 등지에서 비싼 맥주들을 사서는 신줏단지 모시듯 집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업로드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먼저 오픈하기 전 사진을 수십 장을 찍는다. 이리 돌려서도 찍어보고 저 배경에 찍어보고 따라서도 찍어보고 술만 찍어도 보고. 그리고는 색과 거품을 보고 외관을 메모한다. 향을 한 번 맡아 드는 느낌을 막연하게 써본다. 음, 이건 보리향이 강하네. 달달하고 꼬수운 향인데 이걸 뭐라고 표현하지. 분명 어떤 음식이 모락모락 연상되는데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겠다. 한 모금 살짝 마셔본다. 음, 몰티(malty)하다. 홉 맛보다 보리맛이 더 강하네. 엄청 꼬숩긴 하긴 한 데, 어떻게 달달한 걸까? 달하다고만 쓰면 밋밋한데, 뭔가 구체적인 단어를 들이밀 줄 알아야 되는데.


그러다 외국의 맥주 평가 사이트든, 한국 다른 시음평이든 싹 찾아보기 시작한다. 뭐라!? 바닐라 향이 난다고!? 내 코에서는 도저히 투게더의 바닐라향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또 다른 리뷰를 뒤적인다. 이번엔 토피(toffee)니, 캐러멜이니, 초콜릿이니. 뭐? 육두구? 그게 뭐다냐.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모양에 그런 건 맛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저 사람은 저 냄새를 맡는 거지? 굳이 찾자면 내 입에는 음, 좀 뭔가 탄 누룽지 향... 정도로 밖에 안 느껴지는데.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시음 후기를 보며 둔감하기 짝이 없는 나의 후각과 미각을 탓하기 시작한다. 사실 나는 그렇게 많은 향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아니, 물리적으로 그러기 어렵다. 나는 양 쪽 콧구멍을 가르는 연골이 한쪽으로 휘어져있는 비중격 만곡증으로 인한 축농증과 비염이 심한 편이다. 일 년 사시사철 한쪽은 반 이상쯤 막혀있는 채로 살고 있다. 이 증상이 양쪽으로 번갈아가면서 발생하는데, 이게 참 곤욕이다. 보통 술을 테이스팅 할 때, 향을 맡을 때는 한쪽 코만 대고 맡아보라고 권장한다. 왼쪽으로 맡을 때와 오른쪽이 느끼는 후각이 조금 다른 모양이다. 나로서는 크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정말 어쩌다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양쪽 코로 숨을 원활하게 쉴 수 있는 순간이 있는데, 이때 재빨리 향을 맡으면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 없다. 마치 도시 속의 뿌연 먼지 속에서 살다가 지리산 중산간의 쾌청한 공기를 마시는 것 같달까. 그마저도 술을 마실 타이밍에는 항상 한쪽 코는 부어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절반, 그 이하 정도밖에 캐치하지 못한다. 후각은 미각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후각이 둔감하면 미각도 다소 둔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테이스팅이 취미라고 하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하지만 약점이라고 한들 이것을 단점이자 장애라고 치부할 일은 아닐터다. 오히려 솔직하게 이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이 남긴 시음평을 통해 내가 맡지 못한 향을 캐치하면 된다. 분명하게 맡지 못한다면 아주 약간이라도 힌트라도 얻고자 노력했으면 될 일이다. 바닐라를 예로 들면, 바닐라빈이 어떻게 채취되는지, 실제 바닐라빈이 어떤 풍미를 가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서나 느낄법한 착향료만을 바닐라라고 인식했다 보니 그 향이 아니면 바닐라라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데 리뷰건이 엄청나게 많은 어떤 전문가가 같은 맥주를 마시고 나와 달리 바닐라 풍미가 느껴진다고 했다면, 그다음 내가 할 일은 도대체 진짜 바닐라는 어떻길래 나는 못 맡는 건지 알아보면 되는 일이다. 그래야 나중에 다른 맥주에서 같은 풍미를 알아챌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인정하고 배워나감을 선택하기보다 나태하게 표절이나 했음을 고백한다. 향이 안 느껴지는 데도 누군가 캐러멜 향이 난다고 기록한 게 있다면 ‘캐러멜 향이 납니다’라고 기록한다. 커피 맛이 난다고 하면 나의 미각을 부정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맛이 난다고 쓴다. 그렇게 SNS에 정성스럽게 짜깁기한 시음평을 남긴다. 이렇게 리뷰를 남기면 꽤 그럴싸하게 보인다. 마치 전문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며 우쭐한 생각이 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 지인들과 모르는 이로부터 대단한 리뷰를 남겼다며 하트가 눌리기 시작한다. 칭찬도 각양각색이다. 그들은 가공된 나를 보며 박수갈채를 보낸다. 대단하다. 멋지다. 어떻게 이렇게 상세하게 쓰냐. 그렇게 하트가 눌린 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동시에 비슷한 취미를 가진 다른 유저의 공감수를 체크한다. 한참 부족한 공감수를 채우기 위해 그 유저가 쓴 양식을 열심히 분석한다. 그가 느낀 시음평은 관심 없고 오로지 공감에만 동공이 몰린다. 나는 그의 공감수를 넘어서기 위해 또 다른 맥주를 마시며 다른 리뷰들을 갈무리하며 속은 빈 쭉정이를 양산한다. 어느 새부터 소중한 취미의 중심은 내가 아닌 타자에 있기 시작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를 돌아본다. SNS에 본격적으로 맥주리뷰를 쓴 지 수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관심과 인정의 욕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 이 글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맥주를 향한 자조 섞인 푸념인가, 혹은 보잘것없는 일대기를 공감해 주고 바라봐주길 바라는 관심인가.


솔직해지는 일은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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