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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녁 Sep 19. 2023

#8 맥주, 혼자 마시는 것보다 같이 먹는게 낫지

비싼 맥주를 먹기 시작한 뒤로는 집에서 혼자 홀짝홀짝 마시는 일이 많아졌다. 매장에서 마시기엔 가격이 부담되었던 것도 있었고, 맥주 리뷰를 남기기 위해서는 집에서 먹었어야 했다. 사실 맥주는 혼자보단 함께 먹으면 더 맛있는 술이지 않은가. 고독한 미식가처럼 퇴근 후 혼술 할 때 들이켜는 시원한 생맥주 한 잔도 물론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삼삼오오 모여 맥주 한 잔에 고민 한 움큼 내려놓는 맛이 있는데. 언젠가부터 혼자 마시게 된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우연히 인터넷 동호회의 맥주 모임에 한 번 참여한 적이 있었다. 맥주를 좋아하는 분들이 한데 모여 연말을 축하하며 맥주 마시는 모임이었다. 여러 업계에서 꽤 많은 상품을 후원해 주어 다채로운 이벤트가 많아 북적한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훨씬 다양한 맥주를 양껏 마실 수 있어 유복한 자리였다. 참여하기 전에는 약간 긴장해 있었는데, 맥주 몇 모금에 금세 무방비해져 흥겨운 무드에 동화되었다.


같은 맥주를 마시고 실시간으로 다른 이야기를 듣는 건 또 다른 재미였다. 서로 다른 맥주를 하나씩 주문하고 한 입씩 쉐어링 하는 건 맥주모임에서만 할 수 있는 특권이다. 어색할 수 있는 자리에서도 맥주의 첫인상을 말하는 건 훌륭한 아이스 브레이킹 소재였다. 인터넷으로만 맥주 시음 후기를 접했던 나로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저마다 다른 시음평을 내놓는 모습이 마냥 신기하게 느껴졌다. 비록 부족한 테이스팅이었지만 나도 소신껏 느낀 바를 알렸고, 그들 또한 내가 느낀 부분을 동감하는 부분에서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잘난 척도, 경쟁도 없다. 그저 즐기면 될 뿐. 어쩌면 단순 명료한 사실을 문득 깨닫고 말았다.


‘그래, 맥주는 역시 같이 마셔야지’


마침 당시 티브이에서는 <수요미식회>가 한창 인기였다. 어떤 주제의 음식을 두고 패널들이 저마다 경험한 미식을 토대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전문가들은 요리, 혹은 식재료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다. 패널들은 숨은 맛집들을 몰래 다녀오며 어떤 부분이 특별하고 새로웠는지 저마다의 생각을 공유했다. 평소 맛집 콘텐츠는 저녁시간 공중파에서나 보는 약간 올드한 이미지였지만, 이것이 살롱 같은 세트장에 모여 ‘미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고급스러운 명품 이미지로 탈바꿈하였다. 수요미식회는 삽시간에 아이콘이 되었고, 수요미식회에 방영된 집은 금세 북새통을 이루었다.


단순히 근사하게 촬영하고 편집해서만은 아니었다. 이 프로그램 이전에는 맛있어 보이는 음식, 가성비 좋은 식당 등 정보를 전달하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수요미식회는 패널들이 공통주제를 함께 경험하고 이를 중점으로 끊임없이 대화하는 모습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나는 그들이 소통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맥주 동호회에서 맥주를 마셨는 모습도 수요미식회의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맥주에도 커뮤니티가 있다면 미식으로 즐겁게 대화하는 미디어의 모습처럼 다채로운 소통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문득 동아리가 떠올랐다. 와인 마시는 동아리는 있었지만 맥주를 마시는 동아리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은 맥주 테이스팅! 수요미식회처럼 한 토픽을 정해 맥주를 함께 마시고 테이스팅 노트를 적고 공유하는 모임이었다. 그리하여 진탕 마시는 술에서 벗어나 올바른 술문화를 만들어 나간다는 나름 큰 비전도 있었다.


동아리는 훨씬 큰 규모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소모임이라 부르기로 했다. 모임원은 나 혼자 뿐이라 이름을 짓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맥주 소모임의 이름을 뭐로 지을까 한참 고민했다. 중의적 의미가 담긴 이름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다 정한 이름이 <맥주마실>이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광활한 맥주 세계로 ‘사부작 마실 가자’라는 의미와 ‘맥주마실?’의 의미. 맥주 마시러 마실 가자!라는 느낌을 내고 싶었는데, 참 유치하지만 나에겐 지금까지 애틋한 이름이다. 


이름을 냈으니 그다음은 홍보였다. 학교 곳곳에 대자보를 붙일까 하다가 뭐 대단한 모임인가 싶어 그만두었다. 대신 당시 한참 인기몰이 중이던 대학생 애플리케이션이 있어 거기에 모바일 홍보문을 올리기로 했다. 단순히 맥주만 먹는 모임이 아님을 어필하고 싶었다. 마침 미국의 한 브루어리에서 맥주를 따자 다채로운 꽃 이미지가 피어 나오는 그림을 발견하고는 이를 가지고 우당탕탕 포스터를 만들었다. 봄 새 학기를 노려 만든 캐치프라이즈는 ‘맥주, 봄이 되다’였다.


그렇게 이 주간 열심히 준비하고는 드디어 홍보 게시물을 업로드했다. 으악. 며칠 동안은 댓글이 하나도 달리지 않아 정말 망했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맥주 테이스팅에는 관심이 없구나. 그럼 그렇지. 그러다 친한 친구 녀석한테 SOS를 보냈다.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는 데다 술을 취미로 삼는 걸 정말 이해를 못 하는 친구였다. 그러니 오히려 이 소모임에 제격이다. 내 모임에 이 친구부터 마음을 돌려놓는다면 절반은 성공이겠다 싶었다. 친구를 불러 대뜸 내가 사 온 맥주를 권했다. 그러면서 이 근사한 소모임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


‘술은 거의 못하지만 네가 사준 이 술이 맛있으니 한 번 참여해 볼게’


그렇게 감사하게도 첫 부원이 들어왔다. 첫 모임 전에 최소 두 명은 더 있었으면 했는데 다행히 개강 직전에 네 명이나 신청해 주었다! 한 명은 재학생, 나머지 세 명은 16학번 신입생이었다. 지체할 이유도 없이 나는 첫 모임일정을 알렸고, 그렇게 여섯 명의 인원과 함께 소모임을 진행하게 되었다. 굿판은 벌어졌으니 열심히 춤을 추면 되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니 소신껏 하면 될 일이었다. 오래간만에 나다운 일이 벌어졌다.


포스터와 모집글을 만들어 대학생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에 올려 홍보했다
강의실을 빌려 진행했던 첫 모임. 7년 전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대관하는 데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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