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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녁 Sep 20. 2023

#9 나의 요람, 나의 경리단. 그때를 추억하며.

23년 봄, 아주 오래간만에 이태원 경리단길을 찾을 일이 생겨 다녀왔다. 7년 전쯤에는 밥 먹듯이 드나들던 곳이었는데 어쩌다 이리 뜸해졌을까. 여기는 끝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줄 서서 추로스를 먹던 곳인데 지금은 휑해졌네. 여기는 대만식 치킨 팔던 곳인데. 지하보도는 전부 LED조명으로 교체되고 다양한 예술 작품이 전시되어 무척이나 어스름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과거와 달리 산뜻하게 바뀌어 있었다. 도로 공사를 했는지 경리단길 초입은 항상 교통체증이 있었던 예전과 달리 널찍하게 바뀌어 있었다. 나의 이십 대 중반을 함께 했던 이 거리. 잠시나마 그 추억에 젖어보는 글을 써보고자 한다.


경리단길은 지금은 정말 뜸해졌지만 한때는 맥주의 성지로 불릴 정도로 펍 크롤링(Crawling)의 대표적인 장소였다. ‘장진우 거리’와 더불어 이국적인 분위기의 바와 카페가 즐비했던 이유로 지금의 성수동처럼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사람들로 북적였더랬다. 특히 당시 유행처럼 번젔던 크래프트 맥주, 이른바 ‘수제맥주’가 가장 번성했던 곳 중 하나가 경리단길이었고, 경리단길의 번화와 함께 한국 크래프트 맥주 또한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부동산 문제와 여러 이권 다툼으로 인해 경리단길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비슷한 시기에 한국 크래프트 맥주씬도 다른 주류로 관심이 변함에 따라 하향 트렌드를 겪고 말았다. 경리단길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몸살을 앓지 않았다면 한국 맥주시장의 흐름도 달라질 수 있었을까? 


경리단길 초입을 지나 두 블록만 지나면 육교가 나오는데, 이 육교 앞에는 프랑스 빵집을 시작으로 아주 좁은 골목길이 있다. 나에게 경리단길은 이 골목이었다. 세계맥주의 터주대감, ‘우리슈퍼’가 있었기 때문이다. 겉보기엔 일반 구멍가게처럼 보이는 우리슈퍼에는 생전 처음 보는 다양한 맥주들이 상당하여 들어가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주는 못 갔지만 매번 갈 때마다 새로운 맥주가 채워져 있어서 매장은 좁은 편이었지만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맥주뿐만 아니라 전용잔, 코스터 등 맥주 굿즈도 상당히 다양한 편이었어서 들어가는 순간 시간이 순식간이 순삭 되는 마법 같은 곳이기도 했다. 인상 좋은 아주머니는 그야말로 정감으로 가득하신 분이었다. 맥주를 하나 골라오면 일회용 잔을 하나씩 주었고, 가게 옆편의 간이 공간에 앉아 맥주를 마시곤 했다. 다 마시고 난 병은 바닥에 가지런히 전시해 두고, 병뚜껑은 한데 모아 전시품이 되는 곳. 전국각지의 맥덕들이 모이는 맥주의 성지 그 자체였더랬다. 지금은 지나가다 보니 대로 쪽으로 확장 이전했다. 우리슈퍼는 그 골목길에 있는 기억으로만 남기고 싶은 욕심에서 괜히 들어가 보진 않았다. 


우리슈퍼 옆에는 지금은 플래그쉽 스토어로 운영 중인 ‘맥파이(Magpie)’의 초창기 매장이 있었다. 맥파이를 처음 갔을 때 이런 매장이 있나 싶을 정도로 적응이 안 됐던 기억이 있다. 토요일에 갔더니 이미 골목 초입부터 북적거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매장 안에서 서서 먹거나 같은 테이블을 공유하며 마시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한 테이블을 나눠 쓰는 경우는 흔치 않았기 때문에 불편한 듯 이국적인 느낌이어서 신선했다. 일부 외국인들은 그냥 매장 밖 골목길에 서거나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보기엔 불편해 보였는데, 그때는 그만큼 새로운 문화들을 낯설게 느꼈었다. 금세 익숙해졌지만 말이다.


맥파이 앞에는 컬러풀한 힙한 인테리어, 그리고 피맥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더부스(TheBooth)’가 있었다. 피자 한 조각이 5,000원 안팎으로 저렴했기 때문에 맥주 먹기 전 간단히 피맥으로 시작하기 좋은 곳이었다. 피자뿐만 아니라 맥주도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어서 자주 들렀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많은 인연들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곳이다.


바로 옆에는 한국 최초 사우어비어 전문 펍 ‘사우어 퐁당(Sour Pongdang)’도 있었고, 맥주 좀 먹는다는 사람들은 여기 모여 시큼한 맥주를 즐기곤 했다. 내 인생 처음으로 사우어비어를 경험했던 곳이기도 한 이곳은 이미 경리단길 초입에 ‘메이드인 퐁당(Made in Pongdang)’으로 마니아층이 두터웠기 때문에 사우어퐁당이 오픈한 직후 맥주 마니아들로 북적거렸다. 이름에 걸맞게 탭핑 된 맥주는 전부 새콤한 맥주들뿐이었다. 독일식 밀맥주 베를리너 바이제의 이름을 차용한 ‘서울리너 바이제’에 오이를 더한 오이 서울리너 바이제는 아직도 인상 깊은 맥주 중 하나다.


이렇게 한 골목에만 여러 펍들이 모여 있어 여기만 돌아도 얼큰하게 취할 수 있었다. 내친김에 경리단길을 따라 쭉 올라가 본다. 맥주를 먹다 해장이 필요하면 늘 찾았던 김치찌개집은 종적을 감추었다. 항상 인기가 많던 오래된 통닭집은 요즘 들어 한창 한적해진 것 같다. 경리단길은 이렇게 경사가 높은 언덕길을 헥헥거리며 올라가야 제맛이다. 한참 위에는 남산케미스트리가 기다리고 있다.


일명 ‘남케미’라 불리는 이곳은 한 번 찾아오기는 어렵지만 한 번 오기 시작하면 자주 오는 곳이기도 했다. 꽤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루프탑에 올라가면 서울 야경을 즐기기 더할 나위 없었다. 이곳에서 구스아일랜드 행사를 참여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때 구스아일랜드 모자를 경품으로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잘하지만 소중한 기억이 많은 동네, 경리단길.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렇게 뚜렷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만큼 내가 맥주에 폭 빠져있었기 때문 아닐까.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때처럼 다시 맥주에, 술에 폭 빠져보고 싶다. 덕업일치를 꿈꾸었던 나의 젊은 추억들을 양분 삼아, 조금 돌아왔더라도 다시 꿈을 좇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일이다.

경리단길 골목길에 쭈구려 맥주를 마시던 20대의 나. 행복해 보인다.

- 다음 계속.

*대문사진 출처: https://english.seoul.go.kr/gyeongnidan-gil-itae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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