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진주 Oct 06. 2023

분노는 나의 힘 (7)

  이아정은 메일을 보낸 지 닷새 만에 답장을 받았다. 시인은 이아정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고 그 선택을 존중하지만, 시를 읽으며 행복했던 순간마저 고통으로 기억되는 것은 슬프다고 했다. 그리고 괜찮다면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덧붙이고 있었다. 이아정은 시인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너무 많은 말을 했다고 후회하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시인의 답장에는 마음을 쓴 흔적이 드러나 있었고 이아정은 거절에 서툰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그 주 주말 저녁, 이아정의 동네에 있는 한 호프집에서 만났다. 이아정은 동네 터줏대감처럼 자리한 작고 오래된 그 술집을 좋아했다. 일부러 저를 찾아와 준 사람을 좀 더 근사한 곳으로 안내해야 할까 싶었지만, 마음 편한 장소가 나을 듯했다. 다행히 시인은 호프집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마음에 들어 했다. 

  주문한 생맥주가 나오자 이아정이 먼저 명랑한 목소리로 건배를 청했다.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시인은 이아정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 웃으며 건배에 응했다. 그러고는 회사에서 맡은 프로젝트의 마감일과 청탁받은 시의 마감일이 겹쳐 죽다 살아났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죽을 때도 인생 마감일을 맞춰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것 같다는 농담에 이아정은 일부러 큰 소리로 웃었다. 그 뒤로도 대화는 한참 동안 변죽만 울렸다. 결국 맥주 한 잔을 다 비울 때쯤 시인이 먼저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 사람한테 따져 묻고 싶지는 않아요?”

  “글쎄요…. 근데 이제 와 사과 받고 싶지도 않고요. 그때 왜 그랬는지 물을 필요도 없어요. 그냥 내가 만만했겠죠. 사실 걔가 한 짓들을 까발리는 상상도 했었거든요? 근데 뭐, 이렇다 할 증거나 증인도 없고요. 그렇게 해서 제가 나아질 것 같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제 말은, 예전처럼 시를 읽고 쓰기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이에요.”

  “이제 시가 꼴 보기 싫어진 건가요?”

  “그동안 시를 읽고 쓰면서 정말 좋았거든요. 어느 날은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문학이란 보통 그럴듯하게 꾸며낸 글이 아니냐고요. 그래서 자기는 잘 읽지 않게 된다고요. 전 반박했어요. 그 속에는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는데, 우리는 그걸 통해 주변을 새롭게 볼 수 있고 그만큼 우리의 세상이 풍요로워지는 거라고요. 그 경험은 결코 꾸며낸 것이 아니라고요. 되게 교과서 같은 말이죠? 근데 전 정말로 그렇게 믿었으니까요.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 내 앞에 펼쳐질 때, 그렇게 그와 나의 시선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 우리가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이젠 모르겠어요. 제가 시 속에서 발견했던 것들은 진짜였을까요? 함께 나누었다고 생각했던 대화는 혼잣말에 불과했던 게 아닐까요? 제게 감동을 주었던 세계가 실은 아름답게 꾸며 놓은 쓰레기장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드니까 더는 시를 읽을 수 없게 됐어요. 서보라는 어린 시절 나를 망가뜨려 놨어요. 근데 지금 또 제 마음을 죽이고 있죠. 원망스러워요. 화도 나고요. 그런데요. 지금 저를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건 시예요. 제가 시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믿었던 것들이에요. 전 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걸까요?

  나를 위로했던 문장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어요. 내가 사랑하는 존재야말로 나를 아프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어야 했어요. 사랑에 빠질 때는 매번 그 사실을 잊어버리죠. 저는요, 또 현혹될까 봐 무서워요. 그러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제가 가졌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을 지켜보는 게 싫어요. 그래서 시를 사랑하지 않기로 한 거예요. 선생님,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겠어요?”

  시인은 이아정의 질문에 답을 하는 대신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그리고 잔에 남아 있던 맥주에 소주를 부어 몇 모금 들이마신 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수업 첫날에 우리가 했던 이야기 기억나요? 시를 좋아하게 된 순간에 대해서 말했던 거요. 그때 아정 씨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었죠. 시를 읽으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다고요. 메일을 읽는데 그때 생각이 났어요. 아정 씨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었는데….”

  “그걸 다 기억하세요?”

  “그때 제가 내뱉었던 말들이 떠올라서 미안했어요.”

  “선생님이 왜 미안해하세요. 괜히 저 때문에 그러지 마세요.”

  “아니요. 아정 씨 때문이 아니에요. 저 때문이에요. 전 시에 대해 함부로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니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제가 한동안 시를 쓰지 못했다는 거 아세요?”

  “잠시 활동이 뜸하셨다는 건 알고 있어요.”

  “괴로웠거든요.”

  “뭐가요?”

  “예전 인터뷰에서도 제 가정사를 언급한 적이 있긴 한데…. 우리 엄마는 저와 동생을 버렸어요. 엄마한테도 사정은 있었어요. 가정폭력 피해자였으니까요. 엄마는 다른 남자를 만나 살다가 아빠가 죽자 그제야 우리를 찾았어요. 저와 동생은 그런 엄마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어요. 엄마가 우리에게 돌아왔을 때, 마침 전 ‘폭력의 피해자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에 골몰하던 때였고, 시를 쓸 때마다 자연스럽게 엄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쓰인 시들은 4년 전에 책으로 묶여 나왔죠. 그런데 동생이 그 책을 읽고 화를 내더라고요. 저보고 거짓말쟁이에 위선자라고 했어요. ‘언니는 언니의 시를 위해 우리의 상처를 낭만적인 훈장으로 만들어버렸다’고요.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우리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고요. 우리는 사실 함께 싸우지도 않았고, 서로를 기꺼이 받아들인 적도 없는데 제가 멋대로 회복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게 화가 난다고 했어요. 전 반박했죠. 나는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썼고, 네가 그것을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판단할 수는 없다고요.

  그러고 나서 얼마 뒤 한 낭독회에서 제가 쓴 시를 읽게 되었어요. 낭독을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데 낭독회장에 엄마가 들어왔어요. 한 번도 그런 데 온 적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 순간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이 몰려왔어요. 독자들은 제 시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그 앞에서 좀 더 괜찮은 답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죠. 그리고 그걸 엄마가 듣고 있는 거예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어요. 

  저는 그런 시를 써서는 안 됐어요. 제가 쓴 문장이 동생에게 상처를 주었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것이 옳지 않은 문장이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렇게 쓰여야 한다고 생각한 것을 썼어요. 그런데 그건 제가 진짜 해야 할 말이 아닌, 단지 시를 위한 말이었죠.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하고 싶고, 더 훌륭한 문장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었어요. 동생도 그걸 느꼈던 거예요. 제가 고작 시를 위해 우리의 상처를 소비하고 있다는 걸요. 그때부터 제가 쓴 문장들이 부끄럽고 역겹게 느껴졌어요. 어디까지가 제 진짜 마음이고 어디서부터 꾸며낸 마음인지 알 수 없었어요. 그래서 한동안 시를 쓰지 못했어요. 강의도 그만두었고요. 

  다시 시를 쓸 수 있게 되기까지 3년 가까이 걸렸어요. 아정 씨가 처음 제 수업을 들은 날이 제가 다시 강의를 시작한 날이었어요. 그래서 그날 나누었던 대화가 유독 기억에 더 남아 있어요. 웃긴 이야기이지만, 아정 씨가 시를 통해 더 단단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을 때 저도 제가 지난 경험을 통해 더 단단해졌다고 생각했거든요.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거라고. 지금껏 저질러 온 잘못을 만회할 길은 그뿐이라고요. 그런데 사실 요즘도 문득 무서워져요. 계속 써도 되는 걸까. 그리고 미안해요. 동생한테도 미안하고, 아정 씨한테도 미안하고, 내 시를 읽은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해요.”

  이아정은 시인의 갑작스러운 고백이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그녀로 하여금 죄를 고백하도록 몰아붙인 걸까. 

  아니, 시인은 내내 기회를 기다렸던 것인지도 몰랐다. 누군가에게 사과하고 싶었고, 마침 이아정이 그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인지도. 이아정은 멋대로 사과하는 그녀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왜 자신이 정오후의 정체를 알고 난 뒤에도 찾아가 따져 묻고 싶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자신이 쓴 시에 대해 사과하는 서보라를, 이아정은 도저히 참아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차라리 서보라가 계속 그런 시를 쓰기 바랐다. 그렇게 시를 기만하고 그 시에 기만당하기를. 그러다 어느 날, 시를 가장 사랑하게 된 순간에 자신이 단 한 편의 시도 제대로 써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무너져 내리기를. 이아정이 말없이 앉아 있자, 시인이 조심스레 물어 왔다.

  “아정 씨, 괜찮아요?”

  “괜찮아요. 전 다시 예전으로 돌아온 것뿐이에요. 시를 읽기 전에도 그럭저럭 지내왔으니까요. 사실 시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닐지도 몰라요.”

  “그래요. 시가 뭐라고! 문학이 뭐라고!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개뿔도 아닌데.” 

  술기운 탓인지 시인의 목소리가 돌연 커졌다. 다시 새 잔을 받아 든 시인은 이아정에게 건배를 권하며 외쳤다.

  “문학 그까짓 거, 개뿔도 아니다!”

  얼결에 잔을 부딪친 이아정은 갑자기 강렬한 서글픔을 느꼈다. 그 감정이 전달된 듯 시인 역시 시무룩해졌다. 잠시 뒤 이아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근데요, 선생님. 함부로 사과하지 마세요. 그게 모든 걸 망쳐 놓더라고요.”

  시인은 창백한 얼굴로 이아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아정은 시인이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전 06화 분노는 나의 힘 (6)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