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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란 Jun 23. 2020

이번엔 합격할 줄 알았는데

2020년 면접은 아직도



면접을 마치고 같은 건물 1층 카페, J가 있는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면접 시작 전까지 물 한 모금 편히 마시지 못했던 탓에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미리 주문해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셨다. 면접 잘 봤어? J의 물음에 확신에 차서 응, 이라고 대답했다. 붙을 것 같아. 나만한 적격자가 또 있으려고. 면접 끝나고 이전과 다르게 느낌이 좋아서 나는 대단히 자신만만하게 합격을 장담했다. 한 가지 쎄-한 점은 제외하고.


“아, 그런데 마지막 질문으로 신규 사업에 투입되는데   낳는다고 금방 두는  아니냐고 묻더라.”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는데?”

“양가 부모님은 그런 말씀 안 하신다고 했지. 사실이기도 하고.”


우문현답이네, J가 씁쓸하게 웃었다.



2020년의 면접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헤드헌터를 통해 본 면접이었고, 면접관은 총 두 명이었다. 애 낳는다고 금방 그만둘 거냐고 물어본 50대 남성 한 명, 보도기사에서도 본 적 있는 또래의 젊은 의사 한 명. 분명 그 남성은 인사팀장 등 행정조직에서 한 자리하는 사람일 터였다. 사실 처음부터 결혼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리라, 다짐했던 것은 아니었다. 혹시(hoxy)하는 마음에 결혼반지도 빼고 면접장에 들어갔는데, 첫 질문에 그런 다짐이 와르르 무너져내려 버렸다.


주소가 XXX(도로명주소)인데, 여기가 어디죠?

- oo동입니다.

여기는 뭐... 혼자 아님 누구랑 살고 있나요?


솔직히 마지막 질문보다 첫 번째 질문이 더 불쾌했다. 사는 동네가 어딘지, 가족이랑 사는지 혹은 자취를 하는지 그게 왜 궁금하지? 애초에 결혼 여부를 떠보려고 묻는 건가? 자취를 한다고 말하려다가, ‘아직도’ 세상은 흉흉해서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해버렸다. 워낙 요새 결혼이 다들 늦어서 그런 건지, 그는 아~결혼하셨어요? 라며 다소 과장된 반응을 보였다. 그 이후에는 이전 직장에서 했던 일들을 상세히 설명하는 일반적인 면접이 진행되었고, 중간중간 압박면접성 질문도 있었지만 그냥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전 직장 퇴사하고 지금까지 공백기가 있는데 뭘 하셨죠?”

- 글도 쓰고.. 디자인도 배우고.. 그냥 하고 싶은 것 했습니다.

“졸업하고 공백기가 좀 되시는데 그동안 뭐하셨나요?”

- 취업 준비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 헤드헌터로부터 불합격 소식과 함께 전달받은 면접 피드백에는 ‘안정적이고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돋보인다’로 시작했다.


안정적이고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돋보이고 업무에 대한 성실성, 기본적인 지식은 훌륭합니다만 좀 더 적합한 분이 계셔서 이번에 함께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유부녀라고 안 뽑은 거라는 말을 참 뱅뱅 돌려서도 말한다. 이렇게 능력이 좋은 걸 자기네들도 인정하면서 왜 안 뽑는대? 며칠 뒤 아침, 눈을 뜨자마자 받은 불합격 문자에 J와 나는 침대에 누워 온갖 나쁜 말들을 쏟아냈다. 면접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내가 뭘 설명을 하는데 말귀를 못 알아먹더라는 둥, 아직도 그딴 질문을 하냐는 둥 알알이 그를 씹었다.


양가 가족들도 함께 분노했다. 아직도 그런 질문을 하냐, 역시 유리천장이 있다, 이러니 누가 결혼을 하고 애를 낳겠냐. 이게 정말 현실이구나. 그 와중에 시엄마는 마지막 질문을 향해 비현실적인(?) 명언을 날렸다.


“왜? 결혼하면 다 애 낳아? 딩크족도 있는데?”



 회사 가지 마!


최근 우리의 대화 주제는 마지막 질문이었다. 신체의 자유라는 개인의 인권이 저마다 있는 건데, 여성은 여성 자신의 몸인데도 불구하고 임신만큼은 다른 사람의 의지가 많이 반영된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었다. 그래서 양가에서 아기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나의 답변도 적절한 답변은 아니었음을 인정했다.


덧붙여 J는 이해하기 쉽게 남자 버전을 얘기해주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랑 비슷한 줄 알아? 미필들 있잖아, 알바 면접 가면 너 군대 간다고 금방 나갈 거 아냐, 한다? 그래서 써붙여 놓거든, 군필자 환영이라고.”


아아, 군대는 2-3년이면 군필자라는 휘장을 두르고 환영이라도 받지. 자식은 20년을 키워도 품 안의 애기 같아서 끝이 없다는데 언제 임필자/육졸자가 되어 사회의 환영을 받을 수 있을까. 미혼은 곧 결혼이라고 안 뽑아, 기혼은 곧 애 낳는다고 안 뽑아, 출산과 육아 후에는 경단녀가 되어 다시 재취업도 어려워. 어떻게 살라는 건지.


차라리 남편이 집에서 애기 볼 거라고 답변해야 했을까? J의 말에 나는 아빠가 보낸 카톡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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