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테넷이 건넨 메시지
♤영화, '인터스텔라'와 '테넷'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너는 이 삶을 다시 한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은 모든 경우에 최대의 중량으로 그대의 어깨 위에 얹힐 것이다! (...) 어떻게 그대 자신과 그대의 삶을 만들어 나가야만 하는가?
- 니체, "즐거운 학문" 제341절 중 -
영화, "인터스텔라" 속 쿠퍼는 죽어가는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나자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지구를 대체할 후보 행성에 방문하여, 우주선에 탑재된 인류가 해당 행성에 존속하는 것이 요지다. 쿠퍼는 종국에 자신을 희생하고 최후의 후보 행성으로 브랜드 박사(앤 해서웨이 역)를 보낸다. 그러나 블랙홀 속에서 자신이 마주한 것은 파멸이 아닌, 5차원의 공간이었다. 모종의 존재가 쿠퍼를 살려 시간과 공간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그 모종의 존재는 미래의 "우리"였다.
그리하여 쿠퍼는 자신의 딸 머피에게 지구를 살릴 양자 데이터를 이진법으로 보낸다. 먼지가 날리던 자신의 집으로. 책장의 유령은 쿠퍼 자신이었다. 미래의 쿠퍼는 5차원의 공간으로 현재의 쿠퍼를 보냈고, 현재의 쿠퍼는 과거의 쿠퍼에게 메시지를 발신했다. 이 순간, 세 시점은 한 지점을 관통한다. 하나가 되었다.
영화, "테넷"은 '인버전 Inversion' 현상을 중심으로 닐과 주도자(영화에 주인공 이름 언급이 없음)가 세상을 구한다. 인버전은 '역전'이다. '시간 역전'은 특정 과학 기구를 통해 발현된다. 붉은 터널을 지나면 시간은 순행하지만, 푸른 터널을 지나면 시간은 역행한다. 인버전되면 시간은 역으로 흐른다. 모든 주체와 물질 현상(심지어 호흡마저)은 거꾸로 움직인다.
닐을 비롯한 '테넷'의 미래 조직은 이 기구를 통해 과거에 개입하여 인류를 한 순간에 몰살할 '알고리즘' 계획을 저지하고자 한다. 생소한 개념이라 영화를 한번 보고서는 이해가 어렵다. 다만,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시선을 사로 잡은 장면은 다음과 같다. 과거로 돌아간 '나'와 현재의 '나'가 공존한다는 것. 역으로 과거의 '나'에게 미래의 '나'가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다. 즉 인터스텔라처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동시에 관통하는 지점이 있다.
"인터스텔라"와 "테넷" 모두 미래의 존재가 과거에 개입하여 '현재를 기정화' 하는 장면들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테넷에서는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다. What happened's happened.'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그러나 위 장면에 이어서 닐은 전한다. 이 말이 "세상에 대한 믿음을 전하는 것이지, 결코 방관하려는 핑계가 아님"을. 놀란 감독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한 지점으로 엮이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내놓는다. 쿠퍼는 인류의 생존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맹신으로 집에만 있지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기약 없는 모험에 뛰어든다. 5차원의 공간에 닿기까지 함께한 동료들이 죽어갔다. 그 한순간을 위하여.
테넷 역시 그렇다. 주도자와 닐은 목숨을 담보로 인버전 회전문을 수없이 오간다. 결정적인 한 순간을 위하여. 삼위 三位가 하나이듯, 호흡하는 이 순간은 과거의 '나'와, 이를 바탕으로 잘 살아낸 미래와의 조응이다. 과거는 현재를 지탱하고 미래는 현재를 견인한다. 그렇기에 과거는 흩어져 사라지지 않는다. 미래는 현재를 기반으로 자신을 담보한다.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반복되는 자신의 서사를 위하여 우리는 어찌해야 하나. 니체는 'Amor fati'를 외쳤다. '운명을 사랑하라'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