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가 생길까 우려했던가?
하루가 버라이어티 하다.
왜냐하면 아기가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성장하기 때문이다.
오전에 기던 아이가 오후가 되니 무언갈 잡고 일어서려 한다.
경험해 보기 전까진 상상하지 못했던 미친 성장 속도다.
내 딸, 되는 주식이다. 내가 보장한다. 난 이렇게나 빠른 성장 속도를 본 적이 없다.
가능하다면 내 딸의 성장률을 계좌에 연동하고 싶을 정도다.
계좌의 수익률이 1~2%만 움직여도 도파민이 도는데,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훅훅 자라는 그것도 ‘내 새끼’를 보는 기쁨이란. 도파민이 과도하여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육성으로 소리를 지르는 날이 많아진다.
그렇게 나는 매일 점점 더 가파른 속도로 내 딸의 덕후가 되어간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알아주는 ’ 서사돌‘ ’ 성장돌‘ 덕후인데, 내 딸은 심지어 콩알만 한 태아 때부터 지켜봤으니 이건 뭐 하루하루가 덕질의 연속이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와 서사를 부여하며 ’ 실체‘보다 더 과하게 감동 중이다.
’ 도치맘‘ 가지고는 나의 이 광적인 사랑을 표현할 수 없다. 부족하다.
원래 덕질은 나노 단위로 쪼개서 감탄하고 의미 부여를 하고, 내가 부여한 의미에 셀프 감탄을 하며 행복해하는 맛인데, 그런 면에서 요즘은 덕질이 제철이다. 비록 힘들기도 하지만 눈을 뗼 수 없이 성장하는 아이를 눈에 담고 카메라에 담고 또 이렇게 글로 기록하느라 시간이 빨리빨리 지나간다.
아기는 어떻게든 무언가를 잡고 서보려고 온종일 애를 쓴다.
장난감을 지지대 삼아 낑낑거리고 중간쯤 무릎을 꿇어앉아서 잠시 쉬었다가 또 손을 뻗어 더 높이 일어서려 한다.
여기서 킬포(킬링 포인트)는 아직 힘이 없어 비틀비틀하면서도 잡은 한 손을 공중으로 뻗어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면서 뒤를 돌아 나를 찾는다. 그러고선 한껏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내 리액션을 기다린다.
’나 봤어? 나 한 손으로 이만큼 서있다?‘
자막을 단다면 딱 그 정도의 표정이다. 제법 어린이 다운 표정. 참고로 그녀는 8개월, 아직 0세이다.
별 것 아닌 그 몸짓과 표정에 난 또 뒤집어진다.
그리고 그녀가 바라는 것 이상의 리액션으로 환호해 준다.
최애의 엔딩포즈를 본 듯이, 격하게.
그 순간!! ’쿵‘
한껏 허세 가득했던 아기가 얼굴을 장난감에 정면으로 쿵 부딪히며 넘어졌다.
“뿌애애애앵!!! 흐어어엉어!!! “
0세가 확실하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온 얼굴이 빨개져서 엉엉 운다.
아기에겐 너무 분하고 원통한 실패의 경험인가 보다.
귀여움이 과도해서 자꾸 웃음이 터지지만 꾹 참고 진심으로 아기를 위로해 본다.
“아니야, 잘했어. 또 하면 금세 잘할 수 있을 거야 우리 서현이. 지금도 너무 잘했어. 아이고 대단해.”
나에게는 야박한 응원과 위로가 아기에겐 청산유수로 줄줄 나온다.
이게 다 덕질로 다져온 우쭈쭈력인가.
원래 덕질이란 본디 남 보기엔 이해 안 되는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일이다.
덕질이 왜 덕질이냐면 그 사람의 모든 면을 기꺼이 사랑하고 사소한 것에도 감탄하고 사랑하는 내 모습이 좋아 계속 지속하는 것이니까.
‘니 새끼 너나 이쁘지’라는 말에 상처받는가?
아니! 나는 지난 십 수년간 아니 거의 삼십 년간 그런 취급을 너무 많이 당해봤다.
아무리 내 눈에 이뻐죽겠는 나의 최애를 친구에게 들이밀어도 ‘이게 뭐….’ ‘그래서 어쩌라는…’ 등의 반응을 너무 많이 받아보았기 때문에 이 역시도 나에겐 익숙하다.
그리고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알 수 없다는 걸. 내가 탐구해 내고 관찰한 내 최애의 ‘대박 모먼트’를 보고 그 성장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 장면이, 그 얼굴이, 그 모습이 사랑스러운 거지 아무 배경 지식 없이, 서사 없이 ‘사진’과 ‘영상’만으론 내 기쁨을 공감할 수 없단 것을.
그래서 굴하지 않고 난 나만의 덕질을 해나간다.
매일 방대하게 늘어나는 최애짤, 최애영상을 수집하고 돌려 보면서.. 실시간으로 감탄하면서!
다행히, 나와 똑같은 최애를 가진 남편과 식구들을 덕메(덕질 메이트) 삼아 행복한 수다를 떠는 매일을 보낸다.
모성애가 생길까?라고 우려했던가. 나님?
경솔했다. 나는 내 배로 낳지 않은 남의 자식도 자식처럼 사랑할 줄 아는 덕후였다.
딸 덕후의 삶. 최애와 함께하는 삶. 나는 행복한 덕후다!!!!
이유야 어쨌든 덕질은 육아력에 매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