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벤트는 언제였나요

by 화정


요즘은 일상에 '재미'를 찾기 위해 고민 중이다. 그러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일을 하다 보면 생활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으니 만나는 사람들도 비슷하기 마련이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대화를 하는 것도 자극이 될 거 같아 오프라인 모임을 검색해 신청했다.


매 회 대화주제가 선정되고, 멤버들은 사전에 간단한 답변을 남겨서 교환해야 한다. 핸드폰으로 알림이 떠 사이트에 들어가 1회 차 모임 질문을 클릭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벤트는 언제였나요



처음 들어보는 신선한 질문이었다. 신나고, 즐겁고, 기억나는 이벤트가 아니라 '아름다운' 이벤트여야 한다. 당장 떠오르는 장면이 없어서 '아름다운 이벤트'라는 말은 몇 번이나 작게 읊조려보았다. 어렵고 당황스럽긴 했으나 기분 좋게 마음을 두드리는 질문이었다.


나에게 아름다웠던 순간, 가슴이 몽글해지며 즐거웠던 때가 언제였을까. 출근해서도 하루 내 문득문득 이 질문을 곱씹었고, 퇴근 후 저녁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걸아오며 다시 한번 허공과 같은 기억 속을 뒤적여 보았다. 지금까지 다녔던 여행들, 친구들과의 만남들, 어딘가에 합격했던 순간들을 짚어가며 떠돌다가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전성기였을 대학 시절, 한창 봄기운이 무르익은 5월의 저녁이었다. 대형 무대가 설치된 녹지 운동장에서 다음 날 있을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사방으로 환하게 조명이 켜진 운동장에는 수십 명의 스텝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동아리로 응원단 활동을 하고 있을 때라 학교 축제를 준비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 과정은 대부분 즐거웠다. 그날도 나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을 터였고 하루 내 꽉 채운 일정을 보냈지만 수십 명이 함께 하나의 무대를 준비하던 그 순간이 마음 어딘가에 콕 하니 박혀 있었다.


왜 그 장면일까. 수만 명의 사람이 들어 찬 행사의 절정이 아니라 리허설로 분주했던 날인 이유는 순수한 열정 가득했던 내 마음 때문일 것이다. 아이처럼 자유롭고 즐거웠던 그 시간은 가벼운 바람처럼 마음이 참 편했다. 그러다 졸업이 가까워지며 현실적인 걱정을 마주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더욱이나 그때와 같은 순수한 마음과 즐거움은 옅어져 갔다.




한창 그날의 기억에 빠졌다가, 길가의 차 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그때의 나’를 떠올리니, 단순히 열정적인 청춘이 아니라 마음이 자유로웠던 시절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그 마음을 잃은 줄 알았는데, 사실은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에게 아름다움은 정직한 열정이 흐르던 시간이었다.

결과보다 과정이 빛나던, 목적보다 마음이 앞섰던 그때처럼. 어쩌면 인생의 아름다움은 그렇게 ‘결과 없는 과정’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이루려 하지만, 진짜로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은 그 사이에 있다.


지금이라도 내게 말해주고 싶다. 아이와 같은 순수한 열정을 가질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라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끝까지 한번 가보라고.


아름다운 이벤트는 앞으로 더 쌓여갈 것이다. 하나의 점 같은 순간이 또 다른 점으로 이어지며, 느릴지라도 확실히 나의 서사가 쌓여가고 있다. 그러니 내게 보석 같은 순간들을 기록하고, 그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오늘을 천천히 누리며 진심으로 살아가자고 다짐한다.


keyword
이전 08화모든 일은 다 잘되려고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