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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언철 Dec 30. 2021

회색, 그 모호한 경계에 대하여

어릴 때 나는 전쟁영화를 참 좋아했다. 선악의 구도가 명확했고 권선징악의 이야기가 어린 나에게는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선과 악의 모호함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하지만 철이 들면서 명확해 보였던 선악의 구도가 모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이에게 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떤 이에게는 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선의를 가지고 행한 것이 악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전쟁영화를 즐겨보지 않게 되었다.

의사가 되어서 전공과목을 정해야 하던 인턴시기에 나는 외과가 참 멋있어 보였다. 어릴 때 보던 전쟁 영화처럼 선과 악이 명확하게 나뉘는 것과 같이 수술이 필요한 질환과 제거해야하는 조직 혹은 살려야 하는 조직이 명확하게 구분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판단한 부분에 집중해 치료를 하면 그 상응한 결과가 곧바로 나왔다. 수술만 잘 된다면 환자에게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그 매력에 빠져 외과를 택했던 것이다. 그렇게 외과 전공의를 거쳐 전문의가 되었고 대장항문외과 세부분과를 결정했고, 지금은 암 치료를 하는 병원에 근무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또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외과에도 명확하지 않은, 흑과 백을 섞어놓은 회색과 같은 모호한 지점이 있다는 것을.


#1.

“선생님, 저는 죽어도 그 수술을 안 할랍니다. 그렇게는 못 살 거 같아요. 그럴거면 차라리 아무 치료도 안 받고 죽을랍니다.”

“어르신, 지금 상태에서 무리하게 수술을 진행하면 회복이 안될 가능성이 너무 큽니다. 치료를 안하시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이 많고 통증이나 이런 것들이 감당이 안될 수도 있어요.”


환자는 간에도 전이가 심한 대장암 4기로 암이 대장을 막아서 식사 진행이 어려운 상태였다. 내가 주치의로서 결정한 치료 방향은 대장이 막힌 부분은 장루를 만들어 대변을 받아낸 후 식사를 가능하게 하고 항암 치료를 빨리 진행하는 것이었다. 간 전이가 심한 상태였기에, 간기능은 수술이 가능한 경계선상에 있었다. 일반적인 대장 절제술을 시행했을 때 수술이 잘 되어 회복할 수도 있지만 최악의 경우, 간기능 부전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환자에게 가장 안전한 방향으로 짧은 수술과 빠른 항암을 결정한 것이었다.


 “그래도 선생님, 대변주머니는 죽어도 못 차겠습니다. 그럼 진짜로 치료 안 할랍니다. 가자. 더 이야기할 힘도 없다.”

“아버지, 그래도 선생님 말씀대로 하입시다. 그게 제일 좋은 방향이라고 하시잖아요.”

“안한다. 그냥 그만 할란다. 나가자.”


한 시간째 이어진 대화와 설득이 실패로 끝나려는 찰나 나는 일단 환자를 붙잡았다. 붙잡은 채로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지금 뭐라도 하지 않으면 환자의 끝이 보이는 자명한 사실 앞에 어떻게 해서든 치료를 받게 해야한다는 생각이 내 머리에 가득했다.


“… 그럼 어르신 수술을 해 봅시다. 대변주머니 차는 수술 말고 암을 절제하는 수술을 진행합시다.”


결국 의사가 원하는 수술과 환자가 원하는 수술 중에 환자가 원하는 수술을 하기로 한 것이다. 회색과 같은 상황, 흰색과 흑색의 경계가 불분명한 그런 회색과 같은 상황이었다. 사실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환자의 바람 대로만 된다면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의사가 옳은 것은 아니니까. 나의 판단이 틀렸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마음의 준비와 수술 준비가 시작 되었다. 다행히 간 기능을 나타내는 피검사 수치는 호전을 보이고 있었고 수술을 지체할 수 없었기에 빠르게 진행하였다. 수술 전날이 되어 환자와 보호자에게 진행할 수술과 수술 후 경과, 합병증에 대해 설명했다. 일반적인 수술 설명이 끝나고 환자와 보호자를 바라보며 추가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어르신, 현재 상태는 아시다시피 간 기능이 딱 경계선상에 있어요. 다행히 수술 전 간기능 수치는 좋아지긴 했습니다만, 잘 회복하시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회복이 안된다는 이야기는 간이 제 기능을 못하면서 돌아가실 수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선생님, 어차피 각오는 했으니 수술만 잘 해주이소. 믿겠심더”

“네 어르신 잘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사실 외과의사로서 수술 동의서를 받으며 사망 가능성에 대해서 설명할 때 나의 말 앞에는 ‘거의 발생 할 일은 없지만’ 이라는 이야기가 숨어있다. 하지만 지금 환자에게 한 설명에는 그런 말머리가 빠져있는 것이다. 환자에게 사망가능성을 설명하는 것은 외과의사 입장에서 가장 힘이 드는 순간이다. 수술 후 회복이 잘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환자가 회복이 되지 않거나 수술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의사인 내 탓이 아니라 현재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편하지가 않다.  


#2.

“선생님, 저는 무조건 수술 받고 싶어요. 지금 상황에서 어차피 먹지도 못하고 배는 아프고… 그냥 수술이라도 한번 받아봤으면 좋겠어요.”

“… 어제도 설명 드렸지만 수술이라고 하는 것은 환자 몸에 칼을 대고 상처를 내고 문제가 있는 부분을 치료를 하는 겁니다. 수술을 했을 때 얻는 것이 더 많아야 해볼 수 있는 것인데, 지금 상황에서는 통증만 가중되고 얻을 게 없는 무의미한 수술이 될 수도 있어요.”

“저 죽어도 좋으니까 수술이라도 한번 받고 뭐라도 한번 하고 죽고 싶어요.”


암이 퍼져 장이 막혀서 수술을 한번 했던 젊은 나이의 환자가 다시 장이 막혀서 나에게 왔다. 주치의 선생님 판단으로도 지금은 수술로 무언가를 해결하기엔 어려운데 환자가 원하니 혹시 수술로 해결할 방법이 없겠냐고 묻는 의뢰였다. 암이 많이 진행된 상태로 수술장에서 개복조차도 쉽지 않은 상황으로 보였다. 수술해서 환자에게 돌아갈 이득이 많지 않아 보여서 수술적 치료가 어렵다고 판단되었다.

“선생님, 부탁드릴게요. 수술장에 들어가서 수술이 진행이 안되고 나오더라도 한번 해 보고 싶어요. 어차피 지금도 못 먹는 거라면 그렇게라도 해보고 싶어요.”

“……”


환자의 힘없는, 하지만 절실하면서 간절한 바람이 내 의학적 판단을 누르고 감정을 자극했다. ‘어떻게 하지? 정말 진행해도 되는 건가?’ 나의 망설임이 환자와 나 사이에 침묵의 시간을 늘리고 있었다.


“… 그러면 저도 다시 검사를 검토해 보겠습니다. 환자 분도 보호자 분과 다시 상의를 해보시고 같이 고민해 보도록 하죠.”


그렇게 병실을 나오고 난 후부터 나의 갈등은 시작되었다. 검사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고 검사 수치도 들여다보며 나의 판단을 바꿀만한 이유를 찾고 또 찾았다. 나의 의학적 판단과 환자의 간절함이 나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문제에는 객관식과 같은 명확한 답이 있었으면 하지만 그럴 리가 만무하다. 다시 회색의 공간에 들어가버린 나다. 지금 나의 상황은 명확한 경계가 없는 곳에서 선을 긋고 경계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다음 날이 되고 다시 환자와 보호자 앞에 섰다.


“환자 분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셨으면 수술 진행해 보겠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환자 보호자도 환자의 뜻에 따르겠다는 답을 듣고 수술을 진행하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3

어르신은 수술 후 회복을 잘하는 듯 보였지만 간 기능이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했다. 전이되어 있던 암 덩어리가 빨리 커지기 시작하면서였다.


젊은 환자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간신히 개복은 할 수 있었고, 수술이 가능하여 장루를 만들 수 있었으며 더불어 수술 후 환자의 통증도 경감되었다.


어르신은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자식들에게 전화를 하는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


젊은 환자는 식사를 하면서 밝은 표정을 지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의 기분도 덩달아 좋았고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나의 의학적 판단이 맞아서 원망스러웠고 환자의 바람을 지켜주지 못하여 슬펐다. 환자의 간절함이 옳았으며 나의 의학적 판단은 틀렸었다.


환자들에게 명확한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의사여야 하지만 정작 회색, 그 모호한 경계에서 길을 잃을 때가 많다. 그 경계에서 나의 판단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다. 그렇게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놓치기도 한다. 이 회색의 공간은 내가 의사라는 업을 놓을 때까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회색의 공간을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의료진이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절대적인 답은 없다는 것이다. 한낱 인간인 의사가 내린 판단이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의 판단이 더 맞기를 바라고, 더 옳고 바른 방향이기를 바라고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길이기를 바란다. 그런 간절한 바람을 갖고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하며 동고동락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명확한 경계가 뚜렷하게 보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서 말이다.

회색, 그 모호한 경계를 두드리며 오늘도 나는 환자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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