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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디자인 Mar 16. 2020

우리는 디지털 노마드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자유롭다



프리랜서들은 자유롭다. 어떤 단체에 속해있는 것도 아니고 매일 나가야 하는 사무실이 없다. 언제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기에 장점이 많은 프리랜서들은 그렇게, 자연스레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간다. 첨단 기술이 일상 곳곳에 자리 잡은 이 시대에 지역, 나라 상관없이 돌아다니며 유목민을 자처하는 프리랜서들이 가져야 할 무기는 스마트 기기다. 노트북, 태블릿 PC 스마트폰은 언제나 그들과 함께 있다. 이 무기들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은 무궁무진하다. 글을 쓸 수도 있고 그림도 마음껏 그릴 수 있으며 직장인들처럼 업무 관련 메일에 대응하거나 회의에도 참석할 수 있다. 불편한 사무실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불필요하게 매여있는 것과 달리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일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자유로워 보이는 이들에게도 고충은 있다. 취미가 바로 일이 되고 놀이가 바로 일이 되는 이들에게는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의 경계가 희미하기 때문이다. 그 즐거운 여행지에서도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하늘은 푸르고, 날은 적당히 더워 당장이라도 호텔 수영장으로 뛰어들어가기 딱 좋은 상황에서도 문서 작업에 얽매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카페에 가서 예쁜 디저트를 먹으며 허세를 부리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일에 매여 커피 한 모금은 물론이요 화장실조차 가지 못하고 일할 때도 있다. 이렇게 바쁠 때도 있지만 시간이 철철 남아돌 때에는 불안해진다. 바쁘다는 것은 수입이 늘어난다는 즐거운 상황이지만 한가하다는 것은 나를 찾는 곳이 없어서 수입이 줄어든다는 슬픈 상황이기 때문이다. 수입이 많으면 기쁘고 수입이 적으면 나도 모르게 쪼그라들고 만다.



회사에 있을 때보다 확연히 줄어든 수입을 보면 과연 이 길이 맞나,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다시 회사에 돌아갈 수 없다. 애초에 회사라는 곳에 어울리지 않았던 내가 나 자신을 속이며 억지로 다녔기 때문이다. 억지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끔찍하다.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다. 그래서 나는 부족하지만 자유로운 프리랜서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돈은 별로 없지만 시간이 남는 나는 여느 디지털 노마드처럼 여행을 즐긴다. 하지만 여행에서 마냥 노는 것만은 아니다. 여행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만 나에게는 여행이 아니라 출장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여행을 시작하면 여행기를 남기기 위해 하루에 한 시간 이상씩 글을 쓴다. 여행기에 어울리는 사진을 건지기 위해 쉬지 않고 사진을 찍는 것은 기본이다. 걸으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구도를 맞춰 찍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을 찍으면 바로바로 편집해 클라우드에 백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여행 정보는 여행기에 필수로 들어가야 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수시로 휴대폰에 메모를 남긴다.



여행은 패턴 디자인과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일에도 영향을 미친다. 싱그러운 식물들, 북적이는 재래시장들, 알록달록한 색깔들, 나에게 좋은 영감이 될 수 있는 것들은 사진을 찍고 기억에 남긴다. 이런 추억들이 어떤 그림으로 완성될지는 미래의 내가 알겠지만, 그래도 준비를 하는 건 좋은 일이다. 이러다 보면 여행지에 그 좋은 풍경을 앞에 두고서도 마음껏 즐기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미친 듯이 사진을 찍고, 메모하고, 생각하고 고민하느라 여행을 끝내고 나면 꼭 흰머리가 한 줄 늘어난다. 어떨 땐 이런 일들이 피곤해서 그만두고 싶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니 이젠 그냥 즐기기로 했다. 



사실, 프리랜서가 된 이후로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쉬는 것 같아 보이지만 머리는 늘 복잡했고 손은 늘 사부작 움직이고 있었다. 프리랜서들은 늘 부지런하고 늘 게으를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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