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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디자인 Jul 09. 2020

나의 전성기는 언제쯤 올까

눈부시게 빛나는 그 날이 오면 어떤 기분일까



집에서 일하는 순간, 궁금증 하나가 떠올랐다. 과연 내 전성기는 언제인 건가? 였다. 지금이 전성기라고 하기엔, 안 어울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현재 나의 모습을 하나씩 표현하면... 먼저, 너무나 편하게 자주 입어 늘어난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다. 다행히 씻었고, 커피 한 잔과 노트북을 마주하고 있다. 얼굴은 햇볕을 쬐지 못해 누렇게 떴으며 (그래서 나는 햇볕 쬐며 걷는 산책을 무척 좋아한다) 몇 주 전부터 미용실의 손길이 필요한 덥수룩한 머리를 지니고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불안함에 자주 씻어서 부르터 버린 손은 바쁘게 노트북 자판을 오간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있다. 매일 같은 일상을 보낸다. 누구에게 잔소리를 들을 일도, 눈치를 볼 일도 없다. 그래서인지 화려하게 치장하거나 사람들 앞에서 설 일도 없다. 원하는 일을 하며 '작가'라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번쩍이는 명성은 없다. 돈도 나와 거리가 멀다. 내향적인 데다가 내 작품에 대한 자부심조차 없기에 페어나 전시회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나는 소소한 들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내가 바란 일이니 후회도 미련도 남지 않는다.



그렇다면, 회사를 다니던 때가 나의 전성기였을까? 대기업을 다니며 부모님에게서 완벽하게 독립해 살았다. 원하는 대로 뭐든 살 수 있었고 즐길 수 있었다. 노력한 만큼 (아니, 지금 생각하면 노력보다 더)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던 시절이었다. 부모님이 뿌듯해하는 자식,  삶을 일궈나가는 커리어 우먼, 세상 남부러울  없었다. 이뤄낸 것들이 제법 많아 보여서 우월감에 빠져있을 만도 하건만, 늘 허무함과 외로움에 어쩔 줄 몰라했다. 집에 혼자 있는 게 싫어서 야근과 주말 근무를 밥먹듯이 했고 (일을 찾아서 하는 성격이라 일할 거리는 많았다) 온전히 내 마음을 기댈만한 친구나 가족은 없다 느꼈다. 그래서 늘 외로움을 삼키듯 술을 마셨다. 어쭙잖은 자신감이 차 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그 자신감은 금세 바람이 빠졌다. 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마음속의 슬픔과 속상함을 달래지 못해 우울하기만 했다. 겉으로는 번쩍였지만 속은 가난하기 이를  없었다.



그렇다고 학생 때를 떠올려 보면... 아니다.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미숙함과 근거 없는 자신감에 실수를 연발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생각만 해도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다. 누구는 10-20대가 제일 좋았고, 돌아가길 바란다지만 나는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 언제가 제일 좋냐면, 그냥 지금이 제일 좋다.



겉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는 내 회사 시절은 사실 속 빈 강정이었고
순수하고 풋풋해 보였던 내 학창 시절은 사실 미숙함의 절정기였다.
그렇다고 현재가 전성기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흘러가는 대로 산다.




우리네 아버지들은 자신의 전성기를 다른 이들에게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곤 했다. '라떼는 말이야...'란 말로 빛나던 그 순간을 더 극적인 이야기로 이끌어낸다. 아버지들의 전성기를 듣고 자란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도 전성기가 찾아오겠거니, 하고 바란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언제 전성기가 오는 것일까? 언제 올지도 모르겠지만, 아버지들이 말하던 부와 명예를 듬뿍 누릴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다시 생각한다. 나의 전성기는 과연 언제일까? 나에게는 풀리지 않는 매듭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 이 순간이 전성기였나, 느낄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어쩌면 더 미래의 내가 전성기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희망고문이겠지만) 그것도 아니면 아예 전성기가 없을 수도 있다. (흑)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그나마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아직도 전성기를 알아차릴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젊은 나이에 전성기를 누린 사람들이 부럽지는 않다. 그냥 나의 전성기가 궁금할 뿐.



그저
내 전성기가 왔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그 빛나는 순간을 즐기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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