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사모예드가 되었다
아내가 사모예드가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변했다.
아내가 사모예드가 된 것을 안 것은 어느 날 아침이었다. 희부옇게 밝아오는 아침 햇살에 저절로 눈이 떠졌고 그저 고개를 돌렸을 뿐인데, 아내가 아닌 개가 눈앞에 있었다. 하얗고 복슬거리는 털을 가진 사모예드. 썰매 견으로 유명한 개. 그 사모예드가 반지르르한 털을 뽐내며 눈을 감고 있었다. 색색거리며 잘 자고 있었다.
처음엔 잠결이라 꿈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잠이 깨자 상황 파악이 되었다. 내 옆에 누워있는 건 아내가 아니었다. 아니,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봐도 이건... 개다. 일단, 털이 날린다. 갑자기 식은땀이 흐른다. 그리고 생각이 이어진다. 이건 뭐지? 그러니까... 아내는 어디로 갔지? 아내는 어디로 가고 모르는 개가 이렇게 큼큼한 냄새를 풍기며 자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아내가 자기 자리에 개를 놓고 어디로 간 건가? 그럼 이건 서프라이즈 선물인 건가?!? 끝도 없는 궁금증이 이어지고 머리가 점점 아파졌다. 마치 시작도 보이지 않는 끈이 마구 엉켜있는데 그걸 풀어야 할 때의 느낌일까. 혼란이 거듭되는 와중에, 갑자기 개가 일어났다. 느긋하게 하품을 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여보 일어났어?"
여보? 나보고 여보오...? 여보오? 넌 개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바보같이. 어서 출근 준비해. 이러다가 늦겠어."
음.. 그러니까.... 네가 내 아내라고? 그럼 왜 이렇게 된 거야...? 여보, 정신 차려, 여보는 개가 되었어...!
"응?"
사모예드는, 그러니까 사모예드가 된 내 아내는 내 말에 조금도 놀라지 않은 얼굴로 화장대의 거울을 본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내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지 않았다. "이상한 건 없는데 뭘"이라는 말을 남기고 침대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늘 그러하듯, 차를 마시기 위해 전기포트에 물을 따른다. 아내의 눈에는, 그러니까 사모예드가 된 아내의 눈에는 자신의 모습이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보이는 듯했다. 그러면 내가 눈이 이상한 건가? 뭔가 잘못 본 건가? 땀 범벅인 얼굴을 손으로 닦고,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아내는 개인데...
"그렇게 보지 마. 나도 처음엔 무척 놀랐어. 근데 어떻게 해? 그냥 개로 살아야지 뭐."
너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보고, 아내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더욱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본인이 개라는 걸 알고 있고, 그 모습을 차분히 받아들인다고? 아니, 도대체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나는 아내를 추궁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거야...? 괜찮아?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응?
"개가 된 건 몇 개월 안됐어. 처음엔 무척 당황했는데, 사람들이 내가 개가 된 걸 모르더라고. 그래서 그냥 살기로 했어. 개가 되어도 사람처럼 걷고, 사람처럼 대화할 수 있으니 나쁜 건 아니더라고. 그리고..."
그리고?
"내가 변하고 나서 몇 개월 동안 여보도 내가 사람인 줄 알았잖아."
아... 음... 그렇지.
"그러니까, 달라질 건 없어. 그냥 평소처럼 살면 돼. 여보! 그냥 빨리 출근이나 하라고."
어... 그래... 음... 알았어.
대화는 마쳤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물음표가 가득하고, 하얀 개가 털을 날리며 차를 끓이는 모습은 낯설다. 아니, 낯설다? 이 표현이 아니야... 낯설다기보다는 황당하다? 영화 같다? 아,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모습은 혼란 그 자체라 공포 영화 같기도 하고 SF 영화 같기도 하다. 아냐, 영화보다는.... 동물이 말하니까 이건 동화인가...? 아니 뭔, 저 개는 동물이 아니라 엄연한 내 아내야! 아내라고...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난리 부르스를 춘다. 황당하다 못해 귀신이 곡할 노릇이 벌어졌으니, 이럴 수밖에. 이런 혼란 속에서 그나마 든 생각은 아내가 프리랜서라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집 밖으로 잘나서지 않는 직업을 가졌으니 사람들이 아내의 모습을 잘 몰라볼 것이다. 그래서 아내도 저렇게 차분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여기며 아내가 된 개한테 억지로 떠밀려 출근길에 올랐다.
회사에서도 여전히 아내에 대한 궁금증이 끊이질 않았다. 덕분에 일은 엉망이었다. 미팅 시간에 늦는 건 물론이요, 회의실을 잘못 찾아가기도 했으며 커피를 마시다가 책상에 줄줄 흘리기까지 했다. 떨지도 않던 다리를 오달달 떨며 충혈된 눈을 하고 모니터를 째려보고 있으니 옆자리에 있던 내 동료는 어디 아프냐고... 괜찮냐며 물어보기까지 했다. 괜찮다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대꾸했지만, 사실 안 괜찮습니다. 안 괜찮아요. 저는 지금, 눈물이 날 것 같다고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오늘따라 컵 안에 담긴 물이 소주처럼 보인다. 이 물이 소주였으면, 하면서 톡 털어 넣었다. 절망적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집에 돌아가면 아내가 원래의 모습으로 있을 것이라는 작은 기대감이 불타고 있었다.
차근차근 생각해 보면 아내가 개가 되었다고 주장한 몇 개월 전부터 뭔가 이상했다. 매일 저녁 산책을 하자고 조르고, 산책을 하지 못하면 눈물까지 보였다. 산책을 시작하면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을 해야 만족했고 눈이 와도 비가 와도 산책은 무조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책에 대한 집착에 대해 의심하지 않은 건 걷는 건 건강에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살도 좀 빠졌고. 이런 생각에 그냥 별것 아닌 일로 넘겼는데... 그게 아내가 개가 되어서 그런 거였다.
생각해 보면 동네 개들도 아내를 대하는 모습이 이상했다. 사람이 지나가면 거들떠도 안 보던 개들이 아내를 보자마자 꼬리를 흔들며 아내의 다리와 발 등을 냄새 맡으며 좋아했던 것이다. 심지어 냄새를 맡으며 열렬히 쫓아오는 개도 있었다. 또 어떤 개는 티 나게 으르렁거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아내는 켕긴 게 있는지 내 뒤에 숨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또 하나 이상한 점. 산책을 하다가 다람쥐가 나오면 아내는 이성을 잃었다. 다람쥐를 쫓아 무작정 달리고, 다람쥐가 숨은 나무 아래에서 한없이 다람쥐가 나오길 기다리기도 했다. 그때는 그냥 아내가 동물을 좋아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내가 개가 되어서 그런 거였다.
아내가 했던 그동안의 행동들을 조합하니... 아내는 개가 맞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사실을 부인하고 싶었다. 어떻게 사람이 개가 될 수 있나?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닐 것이다. 아니고 말고. 그래서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퇴근해서 집에 갈 때까지, 나는 그 작은 기대감이 계속 마음 한구석에서 타오르는 것을 그대로 두었다. 아침에 있었던 그 황당했던 일과 대화, 그리고 하루 종일 생각했던 것이 다 내가 착각한 것이라 여기며 집으로 돌아왔다. 문 앞에서 마음을 진정시키려 여러 번 숨을 고르고, 드디어 문을 열었다. 과연 아내는 사람일 것인가, 개일 것인가.
"어서 와, 여보!"
그 작은 기대감은 그렇게, 거친 바람에 사그라들고 말았다. 하얀 개가 꼬리를 살롬 살롬 흔들며 나에게 안긴다. 아, 평소에도 우리는 이렇게 인사했었지... 란 생각과 함께 눈앞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는 꼬리가 보인다. 아유, 탐스럽기 그지없네. 그렇게 나는 인정하게 되었다. 아내가 사모예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