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모예드가 되었다
내가 사모예드가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변했다.
내가 사모예드가 된 것을 안 것은 어느 날 오후였다. 그날도 변함없이 집 안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아 참, 나는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다. 그전에는 중소기업의 그래픽 디자인 팀에서 일하던 디자이너였다. 태어나서 사모예드가 될 때까지 내 일생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없었다. 대학교를 휴학 없이 다니고 졸업해서 취직했고, 소개팅으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순조롭게 결혼에 골인했고, 첫 직장은 마지막 직장이 되었다. 회사에서 벗어나 한동안 쉬다가,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지만, 사람과 부대끼지 않는 점이 프리랜서의 매력이다. 온라인 사이트, 메일을 통해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 프리랜서의 일상에 적응했다. 어찌 보면 집순이인 나한테 프리랜서 디자이너는 딱 맞는 직업이 아닐 수 없었다. 화장을 안 해도 된다. 편한 옷을 입어도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다. 그래서 프리랜서의 삶에 만족하고 살고 있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지내던 어느 날, 나는 내가 변했음을 알게 되었다. 따스한 노을빛을 느끼며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데, 손이 뭔가 두툼하다. 아니, 털이 있다. 응? 털이 있다고? 눈을 비비며 다시 봤다. 손이 아니라 앞발이다. 놀란 마음에 화장실에 들어가 불을 켰다. 환한 조명 아래 거울을 보니 거기에.... 커다랗고 흰 개가 있었다. 사람만큼 아주 큰 개가 서 있었다.
이게 나야? 나라고?
거울의 비친 모습이 너무나도 충격적이라, 한동안 멍하니 그렇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눈만 껌벅껌벅,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걸 어쩌지. 남편이 퇴근해서 내 모습을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까, 싶은 마음에 갑자기 두려워졌다.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이혼'이었다. 사람이 아니니 아이를 낳을 수 없고, 아이를 못 낳으면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다. 그러면 이혼할 마음이 생기겠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래서 그냥 집에 나가버릴까도 생각했다. 근데 집을 나가는 건 쉬울 수 있지만, 만약에 다시 집에 돌아오고 싶어지면 어쩌지, 만약에 사람들이 주인이 없는 개라고 생각해서 어디론가 납치해가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집에 나가는 것도 못할 짓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니다, 이혼과 가출 전에 이 모습을 보고 심장마비라도 걸리면 어떻게 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늘 지적하지만, 내 생각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가끔 이상한 곳으로 튄다.) 결국 하던 일은 제대로 끝맺음을 내지 못하고, 퇴근해 돌아오는 남편에게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리하느라 시간만 흘려보냈다.
에라 모르겠다.
아무리 궁리해봤자 뾰족한 수가 나질 않아서 결국 나는 차를 마시면서 차분히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물을 끓이고 제일 좋아하는 루이보스 차를 우렸다. 티백을 뜨거운 물에 우리는 동안 나는 향이 무척 향기롭다. 역시 머리가 복잡할 땐 차가 제격이다. 까끌까끌해진 마음이 다림질하듯 차분해지기 때문이다. 차를 끓이길 잘했어,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도어록의 비번이 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남편이 들어왔다. 어? 어어어어?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미리 대처할 방안도 생각지 못했는데, 남편을 마주해버렸다!
"다녀왔어. 오늘 별일 없었지?"
.....
"왜 대답이 없어, 어디 아파?"
..... 어, 아니.
"멍 때리고 있었어? 아, 차 마시려고 했구나?
..... 어. 여보?
"응?"
음... 오늘 나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응? 음... 음.... 오늘 미용실 다녀왔나? 그러기엔 너무 집안에 있던 몰골인데?... 뭐야아? 뭐야 뭐엉?"
아니야. 여보!
이상하게도, 남편은 내가 개가 된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섬세한 성격이라서 내가 조금만 달라져도 금세 알아채는 사람이 아예 개가 되었는데도 모른다니... 뭔가 이상했다. 내 눈에 나는 개인데 말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남편만 못 알아보는 줄 알았는데, 주변 사람들도 내가 개인 걸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택배를 건네주는 아저씨나 마트에서 장을 보는 아줌마들도 나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저, 그들의 눈에는 내가 여전히 사람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아, 그런데 방심하긴 일렀다. 어린애들의 눈에는 내가 변한 모습이 보이는 모양이니까. 어떤 아이들은 그 궁금증을 누르지 못한 채, "저것 봐, 개가 걸어 다녀..."라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부모들은 아이를 나무라거나 나에게 급히 사과했다. 사과할 거 없어요. 저 진짜 개가 맞는걸요...라고 말할 수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전히 나는 사람의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사람들과 사람의 언어로 대화했다. 개와는 전혀 소통이 되질 않는다. 그리고 다행히 네 발이 아닌 두 발로 걷는 것이 편했다. 사람처럼 앉아서 일한다. 다만, 산책을 하지 못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산책을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산책을 하면 희한하게도 동네 개들이 나를 따른다. (간혹 가다가 적대감을 보이는 개도 있지만.) 키보드를 누르는 것이 조금 불편해졌다.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개가 되었다고 해도 사람의 일상을 살아가는데 별문제가 되질 않았다.
평범한 일상이 물 흐르듯 흘러갔다. 개로 변했을 때 너무 놀랐던 순간을 제외하고는 나의 생활은 변한 것이 없다. 매일매일이 다시 순조로워졌다. 아마도 우리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싶지만. 아침에 일어나 남편의 출근을 집 앞 현관에서 배웅한다.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나만의 일을 한다. 퇴근을 하는 남편을 현관에서 맞이한다. 그리고 산책을 한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나는 내가 개가 되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남편이 알아차리기 전까지 말이다.
나 혼자 있는 오후, 아침에 놀라서 어쩔 줄 몰라했던 남편의 모습을 떠올렸다. 출근을 하러 떠나는 남편의 얼굴은 흡사 나라 잃은 이의 모습과 흡사했다. 남편은 어떻게 내가 개라는 걸 알아차렸을까? 못 알아차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알아차린 이유조차 알 수 없다. 아무리 고심해도 이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냥 받아들이는 게 속 편한데, 남편은 과연 나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남편이 무척 충격을 받았다는 건 확연하다. 출근하면 늘 메신저로 미주알고주알 대화를 나눴던 남편에게서 연락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새삼, 전화기가 참 조용하다.
처음 개로 변했을 때 떠올랐던 '이혼'에 대한 두려움이 다시 두둥실 떠올랐다. 내가 개인 것을 알았지만 우리 남편은 심장마비에 걸리지 않았다. 그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혼을 하자고 말한다면, 어쩌지. 그래, 슬퍼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혼해서 어떻게 살지는 그 후에 생각하자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이 편해졌다. 어릴 때부터 나는 포기가 빠른 사람, 아니 이제는 개지. 개였다.
시간이 흐르고, 퇴근한 남편이 집에 왔다. 늘 그렇듯, 나는 남편에게 안기며 반가움을 표현한다. 남편은 내 모습에 울듯하다가, 결국 환하게 웃었다. 아, 남편도 이제 나를 개라고 인정하는구나 싶어서 마음이 놓였다. 나도 모르게 그 몇 개월 동안 마음을 졸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괜찮다. 이제 완벽하게, 나는 사모예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