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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Jul 02. 2021

첫 출근, 도망을 계획했다.

"너는 그때 태어났어도 누워만 있었을걸? 그럼 굶어 죽는 거야, 딱."

"엄마, 나는 수렵시대에 태어났어야 했는데, 아쉬워.. 21세기는 너무 경쟁시대야... 아아.." 기껏 낳아주고 키워줬더니 이상한 소리를 하는 딸을 한심스러운 표정으로 노려보던 엄마가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때라고 경쟁이 없었겠냐? 너는 그때 태어났어도 누워만 있었을걸? 그럼 굶어 죽는 거야, 딱."

맞다. 인류에게 경쟁이 없던 시대가 있었을까.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엄마가 날린 팩트에 여기저기 욱신거리면서도, 그래도, 그래도 일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평생 일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2호선에 몸을 실었다. 곧 한강이 펼쳐졌다. 우와... 한강이다. 우와.. 높은 빌딩.... 우와 잠실역에 내려서 꿈과 환상의 나라 롯데월드에 간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나는 내릴 수 없었다. 오늘은 회사의 첫 출근 날이었으니까.


서른둘이라는 나이를 먹으며 이곳저곳을 다녀봤지만 첫 출근은 늘 토할 것 같이 떨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불투명한 유리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간 나는, 불법 전단지를 돌리러 온 사람처럼 쭈뼛쭈뼛 사무실로 몸을 구겨 넣었다. 배정받은 자리에 앉아 물티슈로 책상을 닦고, 가방에서 소지품 한 두 개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지독하게 어색한 공간에 익숙한 물건을 올려두는 것이 프로이직러의 적응방식.


몇 분을 멍하니 앉아있다가 계약서를 쓰기 위해 대표실에 들어갔고, 난 그제야 내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복지는 어떠한지, 총급여는 얼마인지를 알 수 있었다. 정말 나란 사람은 수렵시대에 태어났어야 했나. 왜 이렇게 대충 사는 것인가, 반성하는 마음으로 펜을 꾹꾹 눌러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은 유튜브 채널의 콘티를 만드는 일. 내가 중심으로 맡게 된 채널은, 정보형 채널이었는데 완성된 원고를 받으면, 한 줄, 한 줄에 맞는 영상 혹은 사진(자료화면)을 모아, 편집자에게 전달하는 일이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참 쉬운 일이었는데,



첫 출근, 도망을 계획했다가.


왜 세상에는 쉬운 일이라고는 없을까. 특히, 처음 하는 일은 무조건 어렵다. 어려운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처음 접하는 어려움은 멀미와 복통을 유발했다. 나는 내가 잘할 줄 알았다. 하지만, 원고 한 줄, 한 줄 의미를 되뇌며 시간 내에 그럴듯해 보이는 영상, 사진을 수집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해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원고에서 콘티를 창출하는 일이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일처럼 어렵게 보였다.


나는 어려운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도망(퇴사)이라는 단순한 방법을 바로 머릿속에 떠올리곤 하는데, 그날도 그랬다. 그랬지만, 점심시간을 가진 뒤 마음이 조금 변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고, 정성스럽고, 다채로운 구내식당은 처음이었다. 아아, 이것이 서울의 맛인가. 아, 조금 더 다녀버려?


점심을 먹고, 책상에 앉았는데 그제야 내 자리에 전화기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뭐지? 아 그러고 보니, 옆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파티션도 없구나. 아니 뭐야, 여기 왜 이렇게 없는 게 많아? 아직 첫 출근이라 연결을 안 해 주셨나, 싶었는데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그다음 주에도 내 자리에는 전화기가 놓이는 일은 없었다. 그제야 보이는 사무실의 전경. 사무실에는 대략 20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사내 전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딱 한 명, 경영관리를 하는 사원의 책상 위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전화가 필요 없는 곳이었다. 유레카! 첫 직장에서는 출근을 하자마자 전화를 받고, 점심밥 먹기 전까지 전화를 받다가, 퇴근시간을 넘기고서도 전화를 받아야 했던 곳이었는데, 말을 요리조리 있게 하지 못하는 내게는 매 순간이 벌칙과도 같았다. 그러니까 나에게 전화기조차 주어지지 않는 이곳이야말로 내가 찾던, 내가 찾아 헤매던 그곳일까. 아, 조금 더 다녀야겠다.


하루는 점심 회식을 했는데, 나는 낯선 서울, 골목길에 있는 쌀국숫집에서 충격으로 말을 잃고야 말았다. 내게 항상 든든한 서포트를 해주었던 팀장님이 이렇게 말했다.


"아, 시간 왜 이렇게 빠르죠? 으아 이제 조금 있으면 30대야!!"

"그러니까요, 팀장님 내년에 28이신 거죠?, 저도 곧 따라가겠네요. 흐아아."


아니, 그럼 팀원 모두가 90년대생이었다는 거야? 아, <90년대생이 온다>의 90년대생? 와, 89년생은 울고 싶었다. 그날 알게 된 사실, 이곳에 80년대생은 딱 두 명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와 대표님이었다. 당연히 동년배일 줄 알았는데, 나보다 몇 살이나 어린 친구들이었다니. 이렇게 신선한 전개라니, 점심을 먹고 돌아와서는 조용히 그들을 관찰했다. 업무에 임하는 태도, 기대에 비해 낮은 조회수에 실망을 하는 동료를 진심으로 위로하는 태도, 그리고 팀을 이끌고 가는 팀장의 리더십은 지금껏 다녀온 회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나도 그에 걸맞은 사원이 되고 싶었다. 아, 좀 더 다녀보자.



2주 차가 되니, 조금씩 그곳의 문화에 익숙해졌다. 대표님은 출근을 하자마자 사무실에 노래를 틀었는데, 그 노래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개인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일을 해도 좋았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근무시간이 10-7이라 6시만 되면 퇴근을 기억하는 엉덩이가 들썩들썩 움직였다는 것.  몸을 시간과 중력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것 말고는 모든 게 좋았다. 정보형 채널이니 원고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는 것도 좋았고, 묵언수행을 하며 정해진 시간 내에 일만 하면 되는 단순한 시스템도 좋았고, 팀장님에게 "오, 오늘 콘티 좋던데요? 이제 느낌 오셨나 보다." 칭찬을 듣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업무 중에 전화를 받고 처리해야 할 일이 없어서 또 좋았다.


덜 커-엉. 덜 커-엉.

다시 한강을 건너,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두서없이 떠올라 질서 없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엄마, 나 드디어 적성을 찾은 것 같아, 요즘의 나라면 수렵시대로 돌아간다 해도 누워만 있지 않을 것 같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해서 방황했던 거지,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잘하는 일을 찾으면 이렇게 잘 해낼 줄 알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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