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이야기 (7) AMA discharge
*AMA discharge(의사의 권고에 반한 퇴원, discharge against medical advice)
응급실 환자는 날씨가 화창할 때 많을까, 비가 흠뻑 내리는 때 많을까. 경험적으로는 화창한 날이다. 날이 좋으면 외출을 많이 하고, 나들이나 산책, 자전거 타기를 하다가 다쳐서 오는 사람이 많다. 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비가 많이 오면 외상 환자는 적어진다. 예보 없이 비가 내리거나, 우산 쓰기 애매할 정도로 비가 오면 그게 또 문제다. 어디서들 그렇게 미끄러져 오는지.
예정에 없던 안개비 때문인지 오후 네 시에도 날이 이미 어둑했다. 발목 골절 환자가 있다고 해서 응급실로 갔다. 여기저기 환자 이름을 부르며 찾는데 도무지 환자를 찾을 수 없었다.
“골절 환자 어디 갔어요?”
“그 환자 격리 구역에 있어요.”
“코로나 환자인가요, 아님 결핵?”
“아닌데요. 보시면 알아요.”
격리 병실 문을 열었다. 찌든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환자는 침대 난간에 손발이 결박되어 있었다. 술톤의 얼굴에 회색빛 수염이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쌍욕을 퍼부었다. 오줌을 싸야하는 데 왜 묶어놓고 지랄이냐고 했다.
조금 있다 소변보게 해드리겠다고, 발버둥 치는 환자를 어르고 달랬다. 오른쪽 무릎 밑으로 발까지 이어지는 부목을 대었다. X-ray에서는 오른쪽 발목, 바깥쪽 복숭아뼈에 나선형으로 긴 골절이 있었지만 환자는 언제, 왜 다쳤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모르게 다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방향으로 물어봤다.
“집이 어디예요? 병원에 어떻게 왔어요?”
“몰라. 우리 집은 강릉이야.”
사실은 영등포 길거리에 누워있는 환자를 목격한 행인의 신고로 119를 통해 온 터였다.
처치팀에서 도뇨관으로 소변을 배출하는 동안 의무기록을 다시 살펴봤다. 1년 전에 성형외과에 와서 허벅다리에 있던 농양을 제거한 기록이 있었다. 항경련제를 처방받았던 정황은 있지만 정말 복용을 했는지, 뇌전증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는 신경과 기록도 있었다. 지남력(자신이 놓여있는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능력)이 없고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것을 뚜렷하게 설명해 줄 만한 내용은 없었다.
정말 요의가 불편했던 것인지, 소변 문제가 해결되고 다시 병실로 들어갔을 땐 욕지거리를 내뱉진 않았다. 오른쪽 발목에 골절이 있고, 수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수술하지 않으면 뼈가 붙지 않을 수 있고, 붙더라도 잘못되게 붙을 수 있어 어느 방향이든 절름발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했다. 외상 수술을 담당하는 팀에 환자를 인계하고 내 업무를 보러 올라왔다.
이틀이 지난 주말이었다. 당직 근무를 맡아 출근을 하고 있었는데 외상 팀 교수님으로부터 먼저 연락이 왔다.
“오 선생, 그저께 보내준 환자가 수술을 거부해서 퇴원했었어요. 환자가 요셉 의원(*)에 갔는지 거기서 연락이 왔어요. 오늘 응급실로 다시 온다고 하니 수술 준비해주세요.”
(*영등포 요셉 의원은 행려병자, 노숙인 등 의료 기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어려운 여건의 환자들을 기꺼이 진료하는 곳이다.)
다시 환자를 만났다. 그저께 감았던 부목을 신발삼아 걸어다녔는지 시커멓게 더러워져 있었다. 오자마자 수술은 안 받을테니 치료해달라는 소리를 했다. 수술을 안 하면 지금처럼 반깁스를 한 상태로 발을 안 딛고 다니셔야 한다. 그걸 못해서 다시 오신 게 아니냐. 수술로 고정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치료할 방법이 없다 설득했다. 수술 동의서를 받았다. 피검사를 하고 수술 준비를 하는 중간중간 무슨 생각이 나는지 집에 가겠다 소리를 하는 때도 있었지만, 다행히 수술방으로 모시고 갈 수 있었다. 마취하고 수술하는 과정은 무난했다. 수술 후 이틀 동안 케어를 받고 환자는 별탈없이 퇴원했다.
삼주일 쯤 지나서였을까. 응급실 내원 환자 목록에 익숙한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동명이인이겠거니 했는데, 성별도 나이도 같았다. 차트를 열었다.
피부 밖으로 나사못이 삐져나온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수술 상처는 곪아 벌어져있었다. X-ray를 띄워보니 발목의 경골과 비골을 길게 연결해놓은 나사못이 빠져있었다. 수술하고 체중 부하 금지 기간에 걸어다니면 발목 관절이 움직이고, 그 사이를 고정해놓은 나사가 헐렁해지면서 생기는 문제였다. 외상 팀 주치의를 맡고 있던 후배 전공의에게 연락했다. 고름을 씻어내고 나사못을 빼거나 재고정하는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오늘 수술하나요?”
“일단 밖으로 나온 스크류는 응급실에서 제거했습니다 선생님. 수술장 가야할 거 같은데 환자가 협조가 전혀 안됩니다.”
감염이 심해지면 나중에는 절단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균이 몸으로 퍼져 패혈증이 오면 사망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대로 두면 더 나빠질 게 명약관화하다. 분명히 다시 오게 될 거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일단의 처치를 강경하게 거부했다. 집에 가겠다는 말만 이따금씩 반복했다. 몇 시간 동안 진척은 없었고, 밖에는 응급실에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자의 퇴원 서약서를 환자에게 들이밀었다. ‘본인은 의료진에게 상기 질환에 대한 처치 부재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으나 자의로 퇴원을 결정하였으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합병증 및 민, 형사상의 문제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치 않을 것을 서약합니다.’
환자를 보내고 자리로 돌아왔다. 깍지 낀 손을 뒷머리에 대고 의자에 몸을 실었다. 실랑이를 마치고 나니 진이 다 빠졌다. 환자에게 수술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동의서에 사인을 받을 땐 뿌듯하기까지 했다. 내가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해 설득했기 때문에 환자가 좋은 처치를 제때 받게 된 것이라 믿었다. 주말인데도 신속하게 준비해서 수술까지 마쳤을 땐 신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제는 방치하는 것보다 못한 상황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수술을 못 받았으면 발은 절었을지라도 감염 때문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을텐데.
아직도 응급실 장부를 열면 그 이름이 떠있지 않은지 습관처럼 확인해본다.
병원, 아플 때나 마지못해 가는 괴로움의 공간. 여기 그곳에 사는 사람이 있다. 병원이 일상인 사람에게 그 곳은 어떻게 느껴질까? 무얼 먹고 살며 무슨 생각을 할까?
(5) 대형 병원에 펼쳐진 중력장 / "사람을 더 뽑자"는 말에 대하여
(7) 진실된 마음이 항상 최선의 결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 AMA discharge
(8) "잘못되면 의료진이 책임지셔야 합니다." / 법의 사각지대, 무연고 시설 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