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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알 Mar 19. 2024

운수 좋은 날

전공의 이야기 (6) 모탈리티 케이스

*Mortality case (사망 환자 사례)


2021년 봄은 코로나가 한창이었다. ‘확진자’의 동선과 숫자가 매일 뉴스를 오르내렸다. 병원은 감염관리실을 키우고 24시간 비상 체제에 들어갔다. ‘확진자’와 접촉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선제적으로 검사와 격리 조치가 취해졌다. 


그때 나는 어깨와 척추 두 팀에 발을 걸치고 주치의 업무를 보고 있었다. 일주일에 나흘 수술을 했다. 월요일에 수술을 하고 화요일에 외래를 보면, 다시 연달아 수, 목, 금요일에 죽 수술을 하는 스케줄이었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합치면 수술 건수가 15건 정도였다. 3일 정도는 누워서 잠을 자지 못하더라도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신 말하는 속도가 느려지고 기억력이 바보가 되었다. 실수가 잦아 혼나는 날이 많았다. 


흔한 금요일 아침이었다. 오늘만 버티면 잘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척추 수술을 시작했다. 수술방으로 전화가 왔다. 감염관리실이었다. 집도의 교수님이 코로나 확진자와 같은 공간에 있었다고, 빨리 검사를 받고 격리에 들어가야 한다는 전언이었다.


교수님이 급히 수술을 마무리하는 동안  나는 멸균 가운을 벗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 이 뒤로만 6건이 더 붙어있었다. 죄다 취소해야 했다. 다음 환자는 이미 준비를 마치고 수술장 입구에 대기하고 있었다. 대학 병원에 나 수술해 줄 사람 하나 없냐는 분을 타이르느라 여럿이 곤욕을 치렀다. 입원한 환자는 퇴원시키고 수술 일정을 새로 잡느라 온 팀이 한바탕 난리가 났다. 


교수님은 확진이 되었고, 자택 격리에 들어갔다. 마스크를 쓴 상태로 대면했던 나는 증상이 없어 검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얼떨결에 일주일이나 수술없이 쉬게 된 나를 보고 동기들이 부러워했다. 운이 좋았다.


업무가 반으로 줄었다. 남아있는 척추 환자들을 케어하고 어깨 파트의 일만 하면 되었다. 주말엔 밀렸던 잠을 몰아서 잤다. 월요일이 되었지만 거뜬했다. 어깨 수술은 일찍 끝났고 어깨 파트 교수님과 회진을 돌았다. 이제 오더를 내고 내일 외래만 준비하면 오늘은 제때 퇴근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컴퓨터를 켜고 자리에 앉았다. 


"... 주세요."

병동 저편에서 소리가 들렸다.

"도와주세요. 우리 애가 이상해요."

입원해 있던 척추 수술 환자의 보호자였다. 시어머니가 간병을 하고 있어서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40대 초반의 여자였던 환자는 척추 전이암으로 생긴 마비로 수술하고 6일이 지난 터였다. 방금 전 회진돌 때까지만 해도 슬슬 힘이 돌아온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다.


병실로 뛰어들어갔다. “김세영 님, 제 말 들리세요?” 환자의 얼굴에 식은땀이 맺혀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내 눈을 바라봤다. 침을 꼴깍 삼키더니 어딘가 답답하고 불편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혈압과 산소포화도는 괜찮았다. 신속대응팀이 도착했다. 모니터를 붙이고 채혈을 하는 데 갑자기 환자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휙 돌아갔다. 양쪽 팔다리가 기이하게 들어올려졌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뇌전증 같습니다.” 핸드폰을 꺼내 영상으로 찍었다. 신속대응팀이 응급 처치하고 채혈하는 동안 신경과에 연락하기 위해 스테이션으로 왔다. 번호를 절반쯤 눌렀을 때였다.

"CPR팀, 62병동 7호실로. CPR팀, 62병동 7호실로."

다시 달려서 병실로 갔다. 이미 신속대응팀이 흉부 압박을 시작하고 있었다. 갑자기 심장이 멎고 호흡이 없어졌다고 했다. 이어서 인턴들이 도착했다. 교대로 흉부 압박을 하는 동안 도착한 내과 당직의가 머리맡에 와서 기도를 확보하고 심폐소생술을 지휘했다. 

“정신 차리고 중환자실부터 어레인지하세요.”

방송을 듣고 도착한 선배 전공의가 아연실색한 나를 잡고 흔들었다. 응급중환자실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자리가 없어 환자를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외과계중환자실은 일반외과 자리가 있으니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허락을 받으라고 했다. 환자가 넘어가는 데 여기저기 전화만 걸어댔다. CPR은 계속됐다. 

“저희 애한테 무슨 일인지 얘기 좀 해주세요.”

보호자가 내게 전화를 바꿔줬다. 환자의 남편이었다.

“김세영 님 주치의입니다. 수술하고 오늘까지 잘 회복 중이셨습니다. 아까 봤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갑자기 의식이 없고 심정지가 와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선 원인을 파악하기는 힘든 상황이고, 일단 최선을 다해서 소생술을 하고 돌아오면 중환자실로 모시고 보겠습니다.”

ROSC는 없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갔다.

“CPR한지 30분 지났으면 사실상 회생이 어려운 상황이에요. 소생술을 중단하려면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오 선생이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마무리하세요.”

환자가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중환자실 교수님이 상황을 파악해고 내게 전화했다. 소생술에 참여하고 있던 사람들도 주치의인 내가 중단을 선언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수화기 너머로 아내의 죽음을 선고받고 절규했다. 지금 가고 있으니 도착할 때까지만 제발 소생술을 계속해달라고 말했다. 그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없다. 소생술이 멈춰졌다. 고인을 처치실로 옮겼다. 남편이 도착했다.

“가족들이 다 올 때까지만 기다려주십시오. 저희 딸이 오고 있어서요.”

한 시간쯤 지났을까, 열 살쯤 되어보이는 아이가 할아버지, 할머니 손을 잡고 고인을 모신 방으로 들어왔다. 아이는 눈을 감고 있는 엄마의 얼굴 옆에 쪽지 하나를 놓고 나갔다. ‘엄마 이제는 아프지 마세요.’

유족들 앞에서 담담해 보이기 위해 입을 꾹 다물고 애썼다. 펜 라이트로 눈을 비추고, 청진기를 가슴에 댄 뒤, 맥박을 확인했다.

“2021년 4월 12일 20시 47분. 김세영 님께서 사망하셨습니다.”


문 밖에는 환자의 항암 치료를 담당했던 내과 교수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히 남편을 컴퓨터 앞으로 데려갔다. 내 앞으로 입원해서 작성된 기록들, 그동안 처치된 오더들을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입원해서 저도 종종 뵈었습니다. 경과가 좋았습니다. 제가 일전에 전이암의 치료는 사람의 뜻에 달려있는 게 아니라고 말씀드렸었지요. 남편 분과 제가 여태까지 해왔던 것처럼 오 선생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인간이 최선을 다해도 뜻이 하늘에 닿지 않는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말이 다 끝나기 전에 남편은 흐느꼈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도 뒤돌아 눈감았다.


*지면에 사용된 이름은 가명입니다.




병원, 아플 때나 마지못해 가는 괴로움의 공간. 여기 그곳에 사는 사람이 있다. 병원이 일상인 사람에게 그 곳은 어떻게 느껴질까? 무얼 먹고 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작가는 대학병원 정형외과 전공의, 환자에게 민폐끼치지 않으려, 선배들과 교수님께 혼나지 않으려 발버둥 치다보니 어느덧 치프(최고 연차 전공의)가 되었다. 쉬고 싶다는 마음을 하늘에 들켜버린걸까.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정말로 긴 시간 병가 중이다.


'전공의'라는 존재에 흥미가 생긴 분들이라면, 여기 한 신출내기 의사의 이야기가 솔깃할지도 모르겠다.


(0) ABR. 뭇 전공의들의 꿈을 제가 이루게 되었습니다. / 서문


(1) 의사 일을 한다고 환자 노릇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 / MRI 통 안에서


(2) "저는 인턴이고, 테이프를 잘 뜯습니다." / 인턴 의사의 고민


(3) 시커먼 발 어른거리는 밤 / 경쟁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4) 전공의는 왜 집에 못 갈까? / 일상이 된 초과 노동


(5) 대형 병원에 펼쳐진 중력장 / "사람을 더 뽑자"는 말에 대하여


(6) 운수 좋은 날 / 모탈리티 케이스


(7) 진실된 마음이 항상 최선의 결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 AMA discharge


(8) "잘못되면 의료진이 책임지셔야 합니다." / 법의 사각지대, 무연고 시설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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