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이야기 (1) MRI 통 안에서
"오늘 고생 좀 하고 오셨겠어요."
진료실에 온 환자가 방금 찍은 MRI를 가져오면 으레 내가 하는 말이다. 그러면 "아이고, " 하는 소리와 함께 괴로움이 탁 맞장구 쳐질 때가 있다. 굳이 묻지 않아도 환자의 얘기가 절로 쏟아진다. 나는 MRI 통 속에 누워있던 그때를 떠올린다.
경추 MRI를 찍어보기로 했다. 뒷목 통증, 승모와 견갑주변부의 뻐근함, 오른팔의 저린감이 몇 달째 가시지 않았다. 차트를 열고 내 이름을 띄웠다.
'상지 방사통에 대해 경추간판탈출증이 의심됨. MRI 검사를 계획함.'
서명을 하고 검사실로 내려갔다. 창구마다 반복해서 이름과 생년월일을 읊어야 했다. 맨살 위로 환자 가운이 엉성하게 걸쳐졌다.
검사 전 지시는 간단했다. "소리가 크게 날 때는 침을 삼키지 마세요. 숨을 크게 쉬는 것도 안됩니다."
통 안에 누워 배 위에 두 손을 포개놓았다. "피곤하면 주무셔도 됩니다." 검사실 직원의 말 뒤로 붕-, 모터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동이 느껴졌다.
검사가 본격 시작되는지, 사이렌 소리 비슷한 게 들리기 시작했다. 빼액빼액, 귀마개를 위협적으로 뚫고 들어왔다. 처음엔 1분 만에 소리가 멈추었다. 잠깐의 정적이 있었다. 몇 번 소리가 이어지고, 몇 번의 정적이 반복됐다. 정적이 있을 때마다 소리가 나는 시간이 3분인지 5분인지 점점 길어지는 것 같았다. '좀 답답한데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 칠판을 꽉 채울 때쯤, 갑자기 기계가 멈췄다. "숨 쉴 때 몸이 너무 크게 움직이세요. 다시 해보겠습니다." 사무적인 목소리가 스피커로 들렸다.
이게 숨을 참고 5분 동안이나 버티는 검사일리는 절대로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그때부턴 머릿속이 들숨과 날숨의 호흡 운동에 완전히 사로잡히게 되었다. 아무리 조심조심 숨을 쉬려 해 봐도 배가 움직이거나, 가슴이 들리거나 혹은 옆구리가 부풀면서 온몸이 들썩였다. 분명 숨은 쉬고 있는데 수영하고 있는 듯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안전하다. 이 검사는 전혀 해롭지 않다. 심폐 멀쩡한 30대 남자가 산소포화도가 낮을 리 없다.' 등의 아주 합리적인 추론을 스스로에게 자꾸 들이대어 보아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빽빽빽빽, 빠른 비트의 소리가 지나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실패해도 좋으니 검사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며 발가락과 정강이까지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아찔한 시간이 십 수분쯤 더 지났을까. 불이 켜졌다. 오금엔 땀이 흠뻑 맺혔다. 스피커로 검사실 직원의 작은 탄식이 들렸다. 누워있던 베드가 움직였다. 몸이 통 속에서 빠져나왔다. 도움을 받아 기계에서 내려왔다. 검사실을 나와 모니터 앞으로 갔다. 스피커로 지시해 주던 직원이 말했다.
"T2강조 횡단면 영상만 4번을 찍었는데요. 너무 흔들려서 쓸만한 게 하나도 없네요. 다시 할까요?"
검사를 다시 할 계획은 없으니, 목디스크가 정말 있는지 알 길이 없어져버렸다. 간간이 저린 느낌이 오른팔 안쪽에서부터 새끼손가락까지 이어진다. 의사 일을 한다고 환자 노릇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
병원, 아플 때나 마지못해 가는 괴로움의 공간. 여기 그곳에 사는 사람이 있다. 병원이 일상인 사람에게 그 곳은 어떻게 느껴질까? 무얼 먹고 살며 무슨 생각을 할까?
(5) 대형 병원에 펼쳐진 중력장 / "사람을 더 뽑자"는 말에 대하여
(7) 진실된 마음이 항상 최선의 결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 AMA discharge
(8) "잘못되면 의료진이 책임지셔야 합니다." / 법의 사각지대, 무연고 시설 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