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알 Mar 18. 2024

대형 병원에 펼쳐진 중력장

전공의 이야기 (5) "사람을 더 뽑자"는 말에 대하여

동기인 ‘정민’의 이름이 응급실 내원 환자 목록에 걸려있었다. 상황이 궁금했지만 차트를 열어볼 엄두가 나진 않았다. 어떻게들 알았는지 외래에서, 수술장에서 "그 정형외과 일년차 여자애 괜찮냐"를 안부인사처럼 물었다. 병원 사람들이 남얘기 하는 걸 참 좋아한다는 것도 이때 알게 되었다.


정민은 다음 날 바로 돌아왔다. 별다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만류에도 불구하고 빨리 복귀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시도했다. 하지만 그 업무라는 게 일단 시작하면 누가 편의를 봐줄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곧 다시 위기가 닥쳤다. 세미나를 하다가 자리를 박차고 도망치듯 나가거나, 일을 하다가 갑자기 구석으로 가서 숨을 몰아쉬는 일이 잦았다. 누가 봐도 안정이 필요했다. 수련 시작 이 주일만에 병가가 시작됐다.


그가 맡았던 전공의 업무는 어디로 갔을까? 나를 포함해, 만만한 우리 3명의 동기들에게 떨어졌다. 신입전공의였던 우리는 이미 포화상태로 일하고 있었지만, 과포화 상태가 비커 밖에서도 구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도무지 배분할 견적이 안 나오는 업무들은 선배들이 선심 쓰듯 거둬갔다.


어디에선가, 차라리 그가 빨리 그만두는 게 낫겠다는 말이 나왔다. 그가 정식으로 사직을 해야 하반기에 일할 새로운 전공의를 뽑을 수 있을 터였다. 이 주장은 분위기를 탔다. 정민은 취약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태만한 것이므로 수련받을 자격이 없다는 탄원서가 교수님들 메일함에 도착했다. 여러 교수님들이 각자의 방으로 나를 호출했다. 노크를 할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동기인 네가 보기에 어떤 것 같니?" 몇 차례 면담을 했다. 며칠 뒤 교수 회의가 열렸다. 그에게 내릴 처분을 두고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고 들었다. 그녀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최종 결론이었다. 병가가 끝났다. 그녀는 굳세게 돌아왔다. 그리고 위태롭게 버텼다.


정민은 학생 시절에 격투기 선수로 대회에 출전한 이력이 있었던 친구였다. 물론 격투기 경력이 모든 방향에서의 내구성을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람이 약하거나 게을러서 수련할 자격이 부족하다고 한다면 오히려 그 '자격'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그녀를 마치 하자가 있는 사람처럼 전제하고 함부로 추측하는 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을 매번 나서 논박하기에 나는 게으르고 약했다.


우리 병원 정형외과는 15명의 교수 요원이 각자 팀을 꾸려 전문 분야를 진료한다. 팀마다 주 2~3일 정도의 수술, 주 2~3일의 외래가 있다. 팀에는 수술을 돕고 학술 작업을 같이하는 전임의(*), 외래 진료를 보조하고 수술 스케줄을 관리하는 전담간호사, 그리고 그 외의 배분하기 애매한 모든 일과 주치의 역할을 맡는 전공의가 있다. 12명의 전공의가 15팀의 주치의 업무를 담당한다.  

(*전임의: 전문의 자격 취득 후 세부 분과를 수련받으며 전문의로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과정. 보통 1~2년 정도 전임의 과정을 이수하면 취직을 하거나 교수 요원으로 발령받는다.)


병원은 수도권에 있지만 환자는 전국 각지에서 온다. 인터넷으로 처음 진료를 예약하면 1년 뒤로 예약이 된다. 외래 진료는 당연히 오버부킹되어있고, 재진, 협진, 상급병원의뢰 등 미루기 어려운 환자들을 욱여넣어 진료한다. 당연히 수술 스케줄도 밀려있다. 오늘 수술 날짜를 잡고 가도 몇 개월, 심지어 1년 넘게 기다리기도 한다. 기다리기 어려워 결국 타 병원으로 빠져나가더라도 항상 더 많은 환자가 진료와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외래에선 환자들을 몰아넣다 보니 한 교수가 반나절에 백 명 넘는 환자를 보기도 한다. 환자가 드나드는 시간조차도 아끼기 위해 교수는 세 방, 네 방씩 돌아다니며 진료한다. 수술장과 병실이 가용한 선에서 최대한 많은 수술을 잡아넣는다. 비단 정형외과뿐만 아니라 다른 과들의 사정도 비슷해서, 학회로 빠지는 진료과가 없을 땐 도무지 병실에 입원할 자리가 나지 않는 게 수술을 못하는 제한요소가 되기도 한다. 수술을 잡는 환자에겐 항상 병실이 부족해서 수술이 연기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라는 지침이 내부에 있을 정도다.


환자가 몰려있는 만큼 전공의가 할 일도 매일 산처럼 쌓여있다. 당연히 교수, 전임의, 전담 간호사라고 해서 절대로 한가하지 않다. 각자 맡은 일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다. 전공의를 위한 특별법까지 필요했던 이유는 그중에서 전공의가 특히 취약한 계층이기 때문이다. 21세기에도 '과로사'의 사례로 간간이 뉴스에 등장하면서도 그것은 '노동'이 아니고 '수련'이라는 이유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공의특별법 시행 이후 8년이 지났다. 주당 수련 시간 상한이 88시간이라지만, 노동법보다 더 많은 상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수련이 노동과는 다르게 교육의 과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 문제가 이렇게 교착 상태이다 보니 배우는 존재로서의 전공의 수련 얘기는 꺼내기도 요원하다. "그러니까 사람을 더 뽑아야지." 솔깃하게 쉬운 제안이다. 일필에 해결이 될 문제였다면 애초에 이 꼴이 아니었을 테니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할 생각은 없다. 대형 병원이 환자를 빨아들이는 구조가 그대로라면, 교수든 전공의든 포화상태까지 쥐어짜는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사람을 더 뽑는 변화가 도달하는 것은 결국 대형 병원의 양적 팽창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안 그래도 상급종합병원이 기형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의료전달 체계에서 메가 센터를 더 키우는 셈이 된다. 몸통과 다리는 부실하고 머리만 큰 의료전달 체계는 몇 걸음 못 가 넘어질 것이다.


정민의 사건이 있고 일년 뒤, 우리는 신입 전공의라는 명찰을 후배들에게 물려주었다. 신입 전공의와 함께 당직을 서고 있던 동기가 야밤에 문자를 받았다."정형외과와 저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대형 병원으로 향하는 중력이 그대로인 한 이들의 수난사는 계속될 것이다.




병원, 아플 때나 마지못해 가는 괴로움의 공간. 여기 그곳에 사는 사람이 있다. 병원이 일상인 사람에게 그 곳은 어떻게 느껴질까? 무얼 먹고 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작가는 대학병원 정형외과 전공의, 환자에게 민폐끼치지 않으려, 선배들과 교수님께 혼나지 않으려 발버둥 치다보니 어느덧 치프(최고 연차 전공의)가 되었다. 쉬고 싶다는 마음을 하늘에 들켜버린걸까.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정말로 긴 시간 병가 중이다.


'전공의'라는 존재에 흥미가 생긴 분들이라면, 여기 한 신출내기 의사의 이야기가 솔깃할지도 모르겠다.


(0) ABR. 뭇 전공의들의 꿈을 제가 이루게 되었습니다. / 서문


(1) 의사 일을 한다고 환자 노릇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 / MRI 통 안에서


(2) "저는 인턴이고, 테이프를 잘 뜯습니다." / 인턴 의사의 고민


(3) 시커먼 발 어른거리는 밤 / 경쟁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4) 전공의는 왜 집에 못 갈까? / 일상이 된 초과 노동


(5) 대형 병원에 펼쳐진 중력장 / "사람을 더 뽑자"는 말에 대하여


(6) 운수 좋은 날 / 모탈리티 케이스


(7) 진실된 마음이 항상 최선의 결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 AMA discharge


(8) "잘못되면 의료진이 책임지셔야 합니다." / 법의 사각지대, 무연고 시설 환자



작가의 이전글 전공의는 왜 집에 못 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