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발레보다 조금 무난한 딴짓이라면 캠핑이 있다. 발레가 갑자기 학원비를 결제하면서 시작됐다면, 캠핑은 한순간 젖어들었다.
남편 친구 중에 대부도 캠핑장에서 장박(*같은 장소에 텐트를 고정해두고, 통상 한 계절 동안 그 자리에서 캠핑을 즐기는 것)하는 가족이 있었다. 그 친구 텐트나 장비, 자리가 넉넉해서 친구 가족들 여럿이 하룻밤 모여 놀기로 했단다. 우리 아이들보다 나이가 조금씩 많은 언니들이 온다고 하는데, 예전에도 가끔씩 아이들을 데리고 모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동안은 첫 째가 엄마가 같이 가지 않는다면 하룻밤 자고 올 자신이 없다고 해서 못가다가, 둘 째가 두 돌이 지난 뒤 네 가족 모두 캠핑 체험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우리 가족은 캠핑장에 딸린 작은 숙소를 잡고, 하루 종일 캠핑장에서 지냈다. 다섯살이 된 첫째가 웬일로 엄마 아빠를 찾지 않고 언니들과 어울러 데크에서 데크로 뛰어다니며 놀았는데,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를 낳고 난생 처음 겪는 신세계였다. 저녁에는 각자 들고온 캠핑장비를 펼치고 모여앉아 화로에 불을 피우고, 아이들은 마시멜로우를 구웠다. 불에 직접 구운, 시즈닝이 끝난 고기도 별미였다. 숙소에 들어와 씻고 평소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잠이 들었다.
다음 날엔 캠핑장에 딸린 수영장에 들어갔는데, 놀다가 수영복을 입은 채로 바깥에서 끼니를 챙기는 느낌이 자유로웠다. 어차피 밖에서 돌아다니는거라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건 말건, 아이들이 돌멩이를 주워서 가지고 놀다가 나뭇가지를 만졌다가 다시 내 품에 안기더라도, 모두 상관없었다.
그러다가 순간 소나기가 쏟아졌다. 한여름 날씨답게 갑자기 비가 내렸고, 사람들은 타프 아래에 캠핑의자를 펼치고 앉아 바로 눈 앞에서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던게 언제던가. 손을 뻗으면 손바닥에 바로 시원한 빗물이 만져졌다. 두돌이 조금 지난 둘째는 장난을 친다고 빗속으로 살짝 나갔다 들어오길 반복했다. 잠깐만에 생긴 웅덩이도 첨벙거리기 좋았다.
첫 캠핑의 느낌은 강렬했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해서도, 흠뻑 자연 속에 있던 기분이 생생했다. 쇼핑몰에서 온갖 화려한 것들을 구경하고, 쇼핑을 해 갖고 싶은 걸 손에 넣는 쾌감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자극이었다. 타프 천을 따라 흘러내리던 빗줄기, 무성한 초록 잎사귀를 흠뻑 적시던 빗줄기, 소리, 비가 그친 뒤의 파란 하늘, 끝을 알 수 없게 펼쳐진 바닷가의 갯벌, 온종일 몸에 직접 닿던 바람.
바로 친구네 텐트와 같은 브랜드의 비교적 최신 모델의 텐트를 구입했다. 캠핑 경력이 이미 오래된 친구는 당장 필요한 최소한의 용품 위주로 추천해줬고,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매트리스와 전기장판, 캠핑용 테이블을 구매했다. 알고 보니 회사에서도 아이가 있는 집들은 꽤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참고할만한 캠핑 관련 사이트와 인기 있는 캠핑장을 추천받았다. 일하다 잠깐 짬이 날때면 캠핑용품을 검색하고, 장박하는 친구네 캠핑장에 놀러갈 수 있는 주말을 체크했다. 인기있는 캠핑장은 한두달 전에는 예약이 마감되는 터라, 미리 예약을 해두고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가 우리 가족끼리만 가는 캠핑 첫 날밤이 되었고, 꽤나 정신없긴 했지만 애들 밥도 챙겨먹이고, 어찌어찌 잠도 잤다. 아침에 텐트 안에서 눈을 떴을 때 텐트 지붕에 살짝 비친 나뭇가지 그림자와 새소리. 이거면 됐다 싶었다.
여름과 가을은 캠핑으로, 날이 추운 봄이나 겨울에는 글램핑으로, 아니면 숙소를 예약한 여행으로, 여전히 밖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아이들은 가끔 집에서 텔레비전 충분히 보고, 스타필드에 가서 장난감을 사고 싶어하기도 하지만, 크게 거부하는 일 없이 먼 거리 여행도 잘 따라와주고 있다. 밖에 나가서야 아주아주 잘 놀고.
자연에 감탄하고 자연을 만끽하고 싶어 시작한 캠핑인데, 덕분에 여러 가족들과 어울리는 일이 많아졌다. 밖에 나가면 무조건 일을 거들 손이 많은 게 좋고, 아이들도 친구가 있을때 무조건 더 잘 놀기 때문에 주변 가족들에게 적극적으로 캠핑이나 여행 동반을 권유하게 되어서이다.
아이들 노는 동안 어른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레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생겼다. 최근엔 거의 아이를 통해, 혹은 아이와 함께 대화를 나누던 우리 부부였는데, 어른들 사이에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각자 풀어놓는 모습을 모처럼, 바라보게 되는 거다. 내 남편 여전히 웃기네. 역시나 말발 하나는 끝내주지. 잊고 있던 남편의 모습을 낯선 사람보듯이 새롭게 관찰하게 된다.
어른들의 자리에 술이 빠질 수 없어서 모처럼 같이 술도 마신다. 한번은 같이 놀러간 친구네 부부가, 우리 부부가 갑자기 캠핑에 빠진 이유를 물었나보다. 술에 취한 남편은 본인은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인데 수정이가 좋아하고, 아이들이 좋아해서 캠핑을 하게 됐다고 했다. 수정이가 좋아해서 한다고.
연애 때나 부르던 ‘수정이’라는 호칭을 오랜만에 들어 설렜고, 아이들이 좋아해서와 함께 내가 좋아해서 하는 거라는 말에 감동을 받았다. 남편이 캠핑을 썩 좋아하진 않지만 딱히 주말에 다른 계획도 세우기 어렵고, 내가 이렇게 적극적인데 안가면 다툼이 될까봐 따라온다고 생각했는데, 남편 역시 나름의 적극적인 동기로 캠핑에 참여하고 있던 거였다. 대화가 부족해서 오해가 쌓였던 우리에게, 캠핑은 서로의 마음을 설명해주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무작정 시작한 캠핑으로 얻게 된 어른들만의 지금 이 시간이, 나중에 아이들이 독립하고 어색할지 모르는 우리가, 서로에게 다시 반하게 만드는 지점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