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사람 완성론

by 오전직업

아이를 키우면서 ‘사람’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할 때가 많다.


사람이 태어난 그대로의 자연적인 상태에서 점차 사회화되어 가는 과정을 거의 처음으로 진지하게 지켜보다 보니 그렇다. 그동안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사귐을 갖는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생각이 바탕이 되었다. 나와 잘 맞는 부분이 있다면 가까이서 자주 만나면 좋은 것이고,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대로 멀리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그럴 수가 없다. 어떤 존재가 나의 양육방식이나 생활태도로 인하여 앞으로의 모습이 변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긴장되고도 막중한 책임감으로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엄마가 되고 새롭게 생긴 취미생활 중 하나가 ‘육아서 읽기'였다. 아이가 잠들었을 때나 잠깐 짬이 날 때, 좋은 책이 나왔다는 정보를 접했을 때 숱한 육아서를 읽었다. 언제나 육아는 최대의 관심사이자 고민거리였기에 육아서의 내용은 항상 흥미로웠고, 내용이 크게 어렵지 않아 휘리릭 읽기에도 좋았다. 읽을 때마다 반성하고 새롭게 얻는 좋은 정보들이 많은데, 결국 모든 육아서의 대전제이자 결론은 ‘사랑이 전부’였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오로지 부모의 사랑뿐이므로 최대한 사랑을 주고, 그 외 세세한 지침이나 구체적인 방법론에서 보면 ‘아이가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한두 살이 될 때까지는 자기 몸을 가누는 것부터 시작해 걷는 법, 먹는 법, 잠드는 법 등 살면서 꼭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시기이다. 포도가 태어나서 백일 정도 되었을 무렵, 자기 손가락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아직 손가락은커녕 손을 펴고 팔을 드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지 정확하지 않은 그 시기, 주먹을 쥔 자기 손이 아주 흥미로운 존재였던 것 같다. 먹은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해 우유를 한껏 먹인 다음에는 아이를 세워 안고 등을 살살 쓰다듬어 주어야 했다. 잠이 오는데 잠드는 법을 몰라서 우는 아이를 꼭 안은 채 내 몸을 위아래로 움직여, 아이가 마치 아직 뱃속에 있는 것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스르륵 잠들 수 있도록 했다. 너무 작고 가벼워서 30분을 안고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시기였다.


아이가 두세 돌 무렵이 되면, 웬만한 생존기술은 어느 정도 익힌 상태가 된다. 말귀도 제법 알아듣고 본인의 의사표현도 웬만큼은 할 수 있다. 그 이후론 사실은 부모의 역할이란 게 (여전히 중요하겠지만) 이전과는 많이 다르다. 이 무렵부터는 부모가 아이를 위해 쏟아붓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충분히 상호 주고받는 관계가 된다.


3년이면 사람이 완성형이 된다니. 인간은 정말로 놀랍고도 완벽한 존재가 아닌가(동물은 더 빨리 독립한다고 하지만 육아뽕에 취한 엄마라는 점을 이해해 주세요). 심지어 세 살 무렵의 사람은 내가 본 어떤 사람보다도 훌륭한 면이 많은 것 같다. 아래는 만 세 돌이 지난 4살 현재 파니의 최근 관찰기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7살 첫째와 4살 둘째가 서로의 장난감이 더 많다고 자랑하기 시작했다. 7살짜리가 먼저 논리적으로 주장한다. 내가 더 먼저 태어났고, 동생이 태어나기 전부터 장난감을 사 모았으므로 본인의 장난감이 더 많다고 설명한다. 그러면 4살 둘째는, "나도 장난감 많이 샀어! 누나가 살 때마다 나도 장난감 많이 샀어."라고 응수하며, 엄마인 나에게 "엄마 내 장난감이 더 많지?"하고 물어본다.


둘째는 본인이 논리적으로 누나를 상대하기 어렵다는 걸 잘 알아서,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의 말은 곧 진리이므로. 일단 엄마 말을 신뢰한다는 점에서 사랑스러움을 획득하고 시작한다.


둘이 서로 장난감 많다고 싸우는 게 내키지 않아서, ‘너네 장난감을 너무 많이 사면 지구가 아파한다는 노래 기억 안 나?'하고 화제를 바꿔본다. 지구를 사랑하는 첫째가 아이다운 천진함으로 대안을 생각해 낸다. "그럼 나는 나무를 새로 심어서, 그 나무가 자라면 나무를 베어 장난감을 만들 거야!". 장난감이 없는 건 싫고, 대신 장난감을 만드는데 나무와 같은 자연이 많이 사용된다고 하니 본인이 나무를 심어서 그 나무로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기대한 대답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답변이라는 생각이 들어 좋은 생각이라고 응수해 준다.


웃긴 건 둘째의 반응이다. 방금 전까지 '누나가 장난감이 더 많대~'라며 서럽게 울던 아이가 이 얘기를 듣더니 “누나 방법 엄청 좋다! " 하면서 크게 소리 내어 감탄한다. 표정엔 설렘이 가득하다. "나는 그러면 사과나무를 심을 거야!" 사과 열매를 따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 보인다. 눈이 마주친 첫째와 나는 서로 눈짓하며 웃는다. "엄마 얘 웃기지 않아?" 방금 전까지 싸웠던 사이인데 둘째의 반응 덕분에 첫째도 기분이 좋아졌다. 화기애애하게 하원길을 마무리한다.




파니는 엄마, 아빠나 누나, 선생님 등의 말이라면 금방 믿고 따르며, 작은 일에도 크게 감탄한다. 현재를 만끽한다.


자기 전에 이 닦기를 싫어해서 ‘지금 이를 닦지 않으면 아까 먹은 초코 벌레들이 파니 이빨을 갉아먹는대 ‘라고 말하면, 금방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덜 익은 파인애플을 먹고 입 안이 따가웠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파인애플 먹을 때마다 ‘잘 익었어?’하고 묻는데, ‘응, 잘 익었지’하고 말하면 ‘그래?’ 하고 입에 쏙 넣어 맛본 뒤 "엄마! 잘 익었다! 파인애플 잘 익었어!"하고 얘기해 준다. ‘그렇지? 엄마가 미리 먹어봤지 ‘하고 대꾸해 주면 "나는 잘 익었는지 몰랐어. 내가 잘 몰라가지고.."라고 말하며 웃는다.


아무래도 아이이다 보니 어른의 입장에서는 실수하는 일이 잦은데, 컵에 물을 가득 따르다가 실수로 물을 쏟은 뒤엔 '미안해'라고 말하기도 주저하지 않는다. 언제든 실수할 수 있다는 걸 본인이 잘 알고 있고, 그러니 사과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직 잘 모른다는 걸 쉽게 인정하고, 겉으로 표현하고, 엄마의 말을 귀담아듣는다. 다시 봐도 이렇게 훌륭할 수가.


심지어 파니는 지금 순간순간에 매번 최선을 다한다. ‘준비 시작~!’이라는 말만 떨어지면, 언제 어떤 상황이건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한다. 나 잡아봐라~하고 장난을 걸길래, 뛰어가는 척만 해도 벌써 저만치 도망가며 깔깔깔깔 웃는다. 움직이기 귀찮은 어른이 한 발짝 두 발짝 움직이며 워! 하고 입으로 놀아주면, 파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뛰어다닌다.


우리끼리 하는 모든 얘기에 관심을 보이고, "그래?"하고 대꾸해 준다. 귀찮아 뭉개는 일 없이 모든 의견에 열정적으로 호응한다. 길에서 주운 작은 벚꽃열매도 소중한 보물이 되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엄마가 안아주면 쉽게 마음이 풀린다. "엄마 씻고 나올 테니 고구마 먹고 물 한번 마시고 나서 티비봐"하고 말하면, 이유를 묻지도 않고 그대로 따른다. 엄마가 하라고 했으니까.




아이의 순진함의 이유는 뭘까. 아직 연약한 존재가 부모의 사랑을 받고 부모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한 나름의 방어책일까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나이를 불문하고 이런 삶의 태도야 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계를 지켜주는 근원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나 가리지 않고 믿는다면 그건 흔히 말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친구’이겠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는 것이야말로 진짜 사랑이 아닐까 싶다. 가까운 사람의 말도 믿지 않고 의심한다면, 그 관계를 사랑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사랑을 줄 수 있겠는가. 내가 믿음을 가졌는데 결국 상대방으로부터 속임을 당한 것이라면, 그건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될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것이므로, 그 관계에서 나는 충실했던 것이고, 결국 관계가 깨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믿음은 순진함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하고, 순전함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싶다.


내 실수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믿으려면, 나에 대한 확신과 고집을 내려놓아야 가능하다.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향하는 목적지는 사랑이 될 것이다.


이미 주관과 고집으로 똘똘 뭉친 사십 대 변호사가 되었지만, 세 돌 아이를 보며 예전의 나도 그렇게 순전했던 시절이 있었으니 다시 돌아갈 수도 있을 거라고 희망을 가져본다. 나에게는 완성형 사람이 바로 곁에 있고, 매일매일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할 기회까지 있으니, 일단 노력해 보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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