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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는 기함을 토하다

네? 새벽 다섯 시는 잠이 드는 시간 아닌가요?

by Siho

9/30(화)


그러니까...

한 작가님이 "저는 매일 아침 명파 해변에 가서 해 뜨는 걸 봐요"라고 하신 게 화근이었다.


저도 할래요! 저도 할래요!라는 몇몇 작가님들이 있었고, 나는...

나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는 게 가능할 수가 없는, 올빼미 중에서도 제일 나중에 퇴근하는 올빼미 랄까.

애초에 가능한 그림도 아니었다. 다섯 시까지 안 자고 있다가 나가면 모를까.

아니 여러분, 저희 예술가들이잖아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삶이 디폴트 아니었나요! (응 너만 그래)


며칠이나 가겠어 싶었다.

처음엔 다섯 명, 여섯 명이나 아침에 해변에서 모였다고 한다. 대단하다.

사진을 기록하는 작가도 그 바람에 매일 새벽에 일어났다고.

절레절레. 난 못해.

작가들이 매일 일출 사진을 올릴 때도 부럽지만 부럽진 않았다. (무슨 말인지) 난 할 수 없는 일임에 분명했기에.


그런데 어느 날, 한 작곡가님이 새벽 바다 일출 관람 + 바다 수영까지 하시고 있다는 거다.


"네??? 수영요? 새벽 다섯 시에 바다엘 들어간단 건가요??"

"네, 도파민 팡팡 터집니다. 장난 아니에요"

"장난은 아닐 거 알겠는데요... 정말 들어간다고요? 입 to the 수? "

"네."

멀뚱멀뚱 왜 그러냐는 듯 나를 바라보는 눈망울이 더 할 말이 없게 만든다.


"안 추우세요?"

"춥죠. 엄청 추운데. 들어가 있으면 또 괜찮아요"

"오우..."


옆에서 몇몇 작가들이 부추겼다.

"시호님, 인어잖아요!"

"바다 하면 시호님 아니에요??"

아 안돼! 이건 위험하다. 게다가 부추기지 않아도 나는 이미 강한 유혹의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고...

하지만 추운 건 너무 싫은데 어떡하지. 뭔가 명분이 더 있어야 내가 무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그 추운 바닷물에 ‘풍덩’씩이나 할 수가...


"근데 작곡가님, 혼자 수영하는 거예요?" 누군가 물었다.

"그렇죠. 그 시간에 들어가는 사람이 아무래도 저 밖에 없죠."


음.. 그건 좀 위험한데. 바다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인데. 쥐라도 나거나 갑자기 몸이 차가워져서...


"작곡가님, 제가 수영 버디가 될게요!"

"네?"

"혼자 찬 바다에서 수영하면 위험해요. 저도 수영 동참하는 버디가 될게요!"

어안이 벙벙해진 작곡가님이 네.. 네.. 저야 좋죠! 라며 끄덕인다.


"시호님이 가시면 저도 같이 수영 도전 해볼래요!"

해당화 펜션 옆방 이웃인 정 작가님도 거들었다. 오. 이 정도 백업이면 이제 안 하면 안 되는 분위기. 좋았어.

과연 내가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해보자!


1

2

3

4

5 띠디디디디디 알람이 울린다. 아아.. 내가 왜 바다를 간다고 했던가. 왜지 왜 그랬지.

아침잠이 많은 나는 아직도 잠자고 있는 몸을 비비 꼬며, 어떻게 하면 안 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이미 레깅스에 다리를 넣고 있다 (?) 자... 우선 바닷가에 가자. 가서, 추울 거 같으면 안 들어가면 된다. 그럼 된다.

문을 삐이걱 열고 나갔더니 문 앞에 정 작가님이 이미 준비를 마치고 나와있다.

"가시죠!"


우리는 가는 내내 다짐한다. 차가우면 들어가지 말죠. 감기 걸리면 또 큰일이고. 네 맞아요. 발만 담구어보고. 그러니까요. 감기 오면 우리 큰일 나요. 약도 없고. 그렇죠. 아 그런데 보건소는 있는데. 하하하. 그래도. 조심하죠. 네. 아 차가운 거 너무 싫어. 저도요. 작가님 근데 수영 진짜 할 거예요? 해 보죠.


중얼중얼 대화인지 혼잣말인지를 계속 주워섬기며 걷다 보니 어느새 바다에 도착했다. 작곡가님은 진작부터 바다에 입수해서 둥둥 떠있다. 이런!


물에 발을 살짝 담그어 보는데 찌릿! 차갑잖아!!!!!!!

"안 되겠다. 저희 좀 뛰죠??"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두꺼운 점퍼를 입고 뛰고 있다

한참 바닷가 모래 위를 뛰는데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헉헉헉. 운동량이 거의 세 배, 아니 네 배가 되는 느낌이다. 고작 5분 정도 뛴 것 같은데 땀이 찔찔 났다. 이제는 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사실은 너무 더워서 빨리 뛰어들고 싶을 지경이었다. 점퍼를 벗어던졌다.


진짜? 우리 정말 들어가는 거예요? 울먹울먹.

그러거나 말거나 저- 멀리 보이는 작곡가님은 이미 도파민의 파도에서 헤엄치고 계시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FUll로 들어가 버렸다!!!

물은 차가웠지만, 얼음 장 같이 차가웠지만. 뼛속까지 파고드는 그 시림이 너무나 기분 좋았다.


"작곡가님!!! 이거구나!!!!!!!!"

어느새 나는 반말로 외치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쩔~~~~죠~~~!!!!!!"

저 멀리서 머리만 동동 뜬 작곡가님이 소리쳤다.


와! 정말이지 이 기분은, 그래, 도파민! 도파민이다!

정신이 번쩍 들다 못해 영혼마저 얼음물에 풍덩 담긴 듯한 청량감이었다.


"온다~~~~~~~~~~~~~~~"


찬 물에 적응이 되자 그다음은 파도였다.

파도는 절대 거칠지 않았다. 아주 부드럽고도 다정하게, 그러나 적당히 신날 정도로 우리 머리 위를 지났다.



"온다!!!! 큰 거 온다!!!"



점 점 커지는 파도가 우리를 두웅~실 띄울 때마다, 우리는 신나서 꺄악 꺄악 소리를 질렀다.

마치 바다라는 거대한 존재가 우리를 크디 큰 융단천에 담아 자장- 자장- 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차가운데, 이렇게 따뜻할 수가 있을까

이렇게 거친데, 이렇게 다정할 수가 있을까

이렇게 무서운데, 이렇게 편안할 수가 있을까


바다, 바다.

아아 나는 오늘 그냥 그 안에서 녹아 사라져 버려도 좋으리라.

이 날의 차가움을, 따뜻함을, 바람을, 소리를, 모래를, 내음을 계속 이 마음 한편에 품고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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